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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겨울은 유난히도 추운 거리의 풍산노동자들...

회사와 함께 해온 우리도 살 수 있게 해달라!

서울의소리 | 기사입력 2013/01/14 [18:39]

올 겨울은 유난히도 추운 거리의 풍산노동자들...

회사와 함께 해온 우리도 살 수 있게 해달라!

서울의소리 | 입력 : 2013/01/14 [18:39]
모진 찬바람이 불던 12월 여의도 산업은행 부근.
서울의소리 기자는 또 다시 서울로 상경하여 복직투쟁을 하고 있는
부산 풍산마이크로텍(PSMC)노동자들을 다시 만났다.
 
참조기사: 
http://amn.kr/sub_read.html?uid=5721&section=sc7&section2=
                   사채업자에 기습매각..부산 풍산 노사분규 현장
▲ 연고지 부산을 떠나 왜 객지 서울에서 겨울을...     © 서울의소리

 
 
 
 
 
 
 
 
 
 
 
 
 
 
 
 
 
 
 
 

 

 
 
따뜻한 남쪽 부산이 연고지인 그들은 서울의 겨울은 유난히도 춥다하며 거처는 여의도에서 투쟁하는
다른 업체의 천막에서 함께 지내고 있으며, 종종 휴식은 금속노조의 봉고차량에서 취하고 있었다.
인터뷰를 진행한 해당 천막도 다른 업체의 호의로 잠시 머물고 있는 곳이었다.

▲ 난방비 절약을 위해 천막안에 쌓여있던 연탄들..     © 서울의소리


 

 
 
 
 
 
 
 
 
 
 
 
 
 
 
 
 
 
 
 

 
 
부산 풍산 마이크로텍 노동자들은 한겨울 객지 서울에서 복직투쟁하는 신산한 심정과 상황을 전했다.
 
20년을 넘게 풍산의 역사를 함께 했다는 한 근로자는 "선대 회장님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아들인 류진 회장은
너무하다며 왜 '사원을 가족처럼'이라고 하신 선대 회장님의 유지를 따르지 않는지 안타깝다" 고 한탄했다. 

류찬우 선대회장은 누구?
비철금속 한우물 30년, 사원을 가족처럼 모토로..
 
현재 류진회장은 풍산 노동자들과 분쟁을 빚고 있지만 그의 선천이자 창업자 故 류찬우 풍산 회장은 어떤 인물일까? 

고 류 회장의 얼굴이 새겨진 기념메달에 포함된 자료내용을 참조하면 다음과 같다.

▲ 조폐공사 발행 기념메달 속의 류찬우 회장     © 서울의소리

 
 
 
 
 
 
 
 
 
 
 
 

 
고 류찬우 풍산 선대회장은 1923년 5월19일 경북의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1959년 일본으로 건너가 무역업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1967년 '조국발전에 이바지 해달라'라는 국가의 부름에 일본에서의 사업을 접고 전격 귀국,  국가산업발전에 이바지할
방법을 고민하던 그는 당시 산업의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에서 모든 산업의 기초가 되는 소재인 비철산업을 선택했다.
 
방위산업의 선구자로서 총알 등을 생산하고 소전산업(무늬가 새겨지지 않은 상태의 동전)과 동파이프 등의 사업을 일궈
대한민국의 산업의 기초를 이뤄냈다는 평을 얻었다.

한국 정부는 그의 한국산업발전과 수출에 이바지한 공로에 대해 동탑·은탑·금탑 산업훈장과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여하였고, 1999년 11월 24일 세상을 떠날 때 그가 한국산업과 경제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기려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추서하였다.

류찬우 회장은 비철산업에 대한 열정을 드러내며 이런 말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진정한 기업인이라면 국가를 위해 꼭 해야만 하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
심지어 '다른거 하고 싶은 것이 있느냐' 묻는 박정희 앞에서 조차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

사업을 하는 것은 아니다"고 대답했다 한다. 
 
그 말대로 류 회장은 소위말하는 사업다각화 대신 오로지 비철금속 산업에만 죽을 때까지 매진하였다.

그런 그가 회사를 경영하며 사훈으로 삼은 말은 '사원을 가족처럼' 이었다.
당시 여느 회사처럼 종종 노사분규는 있었지만 류 회장은 자신은 회사의 대표자 대신 '대표사원' 이기를 자청했으며,
사원들 또한 창업주인 류회장을 믿고 묵묵히 내 회사라는 믿음으로 근속해 왔다 했다.

류진 회장이 그 아버지의 아들다워졌으면..
선대회장님의 '사원을 가족처럼'을 우리는 추억한다
 
본지 서울의소리 기자와 인터뷰를 가진 근속 20년이 넘는다는 노조원은 "개발 자체를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라며 말을 이었다.
 
"사측 입장에서는 공장 부지가 개발되면 땅값도 뛰고 이익이 되겠지요. 주택사업을 하려 한다고 들었습니다. 
공장 돌리는 것보다도 더 큰 이익이 생길겁니다. 그린벨트 해제되고 하면 수조원의 개발 차익이 생긴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선대 회장님께서는 참으로 존경받는 분이셨습니다. 한우물 파시고  건물지을 돈이면 기계를 하나 더사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회장님을 기억하는 사원들입니다.
 
우리가 무조건 개발을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선대회장님이 살아계시다면 과연 이렇게 까지 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회장님이 일구신 회사와 함께 해온 사원들도 살 수 있게 해달라 이 말입니다." 
▲ 추운 비닐 천막안에 쌓여있던 이불들..     © 서울의소리

 




 
 
 
 
 
 
 
 
 
 
 
 
 
 
 


 
 
그 노동자는 또다시 말을 이어갔다.
"저희 노동자들이 사측하고 상근자 임금 소송이랑 근로자 지위보전 임금가처분, 정리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심판을 넘게 해서
올해 승소한 것만 8번입니다.
 
아마 사측도 괴로울겁니다. 이런것만 봐도 명분이 없는 싸움이고 그냥 쉽게 사원들 돈안주고 쫓아내려다 오히려 더 힘들어진것이니까요.
 
저는 류진 회장이 전 선대회장님이었으면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선대회장님 같으셨으면 저희를 이렇게 추운데 객지로 오랫동안 내몰지는 않으셨을 겁니다."
 
추운데 서울 객지에서 고생한다고 부산 가족들이 걱정이 많겠다는 기자의 질문에 인터뷰를 지켜보고 있던 다른 풍산 노조원들도
모두 한숨을 쉬었다.

                                                                                       서울의 소리. 정의롭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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