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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마 전두환,노태우 때문에 꽃다운 21살에 산화!

군사독재에 항거, 분신한 안동대 김영균 열사 추모 21주기

정찬희 | 기사입력 2012/05/07 [01:06]

살인마 전두환,노태우 때문에 꽃다운 21살에 산화!

군사독재에 항거, 분신한 안동대 김영균 열사 추모 21주기

정찬희 | 입력 : 2012/05/07 [01:06]
1991년 4월 26일.
학원자주화 투쟁에 참여한 명지대 1학년 강경대 군이 백골단 소속 사복경찰의 쇠파이프에 구타당해 사망해버린 끔찍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전국 대학생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꽃다운 1학년. 풋내가득한 한 새내기. 갓 입학하여 수강신청한 과목들을 들으며 친구들과 좀더 즐거운 캠퍼스의 낭만을 만끽할 새도 없이, 한 젊음이 군사독재 대통령의 악랄한 경찰에 의해 맞아죽은 것이다.
 
이 날부터 약 한달간, 대학생들의 분신이 이어졌다. 무려 13인의 대학생들이 분신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분신까지 불러온 강한 민주화 열망도 정원식 총리의 계란세례 봉변을 활용한 언론플레이에 덮이고 말았다. 
 
▲  분신정국 보도기사       © 동아일보

 
 
 
 
 
 
 
 
 
 
 
 
 
 
 
 
그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하는 한겨레의 최근 칼럼의 일부를 인용해본다.
 
"29일에는 전남대생 박승희 분신, 5월1일 안동대 김영균, 3일 경원대 천세용, 8일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 18일 연대앞 굴다리에서 이정순, 25일 성균관대 김귀정…. 이름을 다 부르기에도 숨이 차다. 그 봄에 모두 11명이 그렇게 스러져 갔다.

문익환 목사는 그 뒤 어느 모임에선가 눈물 속에 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절규하듯 부르고 내려오기도 했다. 한 대학 총장은 이 상황을 두고 정반대로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 사회에는 죽음을 선동하고 이용하려는 반생명적인 죽음의 세력들, 어둠의 세력들이 존재한다.’

분신정국은 6월3일 정원식 국무총리가 한국외국어대학에 갔다가 학생들에게 밀가루를 뒤집어쓰는 것으로 끝이 났다. 판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6월20일 치러진 광역의회의원 선거에서 집권 여당은 의석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대승을 거두었다."

▲  이렇게 곱고 고운데.. 김영균 열사가 독재자 때문에 21살의 나이로 분신, 사망했다  © 서울의소리


 
 
 
 
 
 
 
 
 
 
 
 
 
 
 
 
 
 
 
 
 
 
 
 

2012년 5월 6일.
21년전인 1991년 5월 1일, 억울하게 맞아죽은 동지를 안타까워하며 독재타도, 민주화 쟁취를 위해 몸을 불살랐던 안동대 김영균 열사 추모제가 있었다.
 
그를 기억하는 선후배들이 모여 그를 기렸다.
21년이나 지난.. 슬프지만 소중한 추억과 뜻을 되새기는 자리였다.
그들은 아직도 오지못한 민주화 시대를 안타까워했고, 다시 올지도 모르는 독재의 가능성을 안타까워했다.

▲  선배님께 술한잔.      © 서울의소리

  
 
 
 
 
 
 
 
 
 
 
 
 
 
 
 
 
 
 
 
 
 
 
 
 
 한 후배는 자신이 태어났을 즈음 산화한 선배의 무덤에 술을 올렸다.

▲  절을 하고 있다  © 서울의소리


 
 
 
 
 
 
 
 
 
 
 
 
 
 
 
 
 
 
 
 
 
 
 
 
고 김영균 열사를 그리워하는 선후배들은 아직도 그를 추억하며, 그를 아파하며 그의 무덤에 절을 올렸다.

▲   이제는 세월이 지나 아이들도 태어났다        © 서울의소리


 
 
 
 
 
 
 
 
 
 
 
 
 
 
 
 
 
 
 
 
 
 
 
 
만약 김영균 열사가 살아있다면 40살이 넘은 아저씨가 되었을거다.
이 날 그의 선후배들은 자신의 아아들을 데려오기도 했다. 아이들은 소풍이라도 나온듯 이렇게 아리고 흐려지는 기억이 아련한 날에도 마냥 웃고 뛰어놀기 바빴다.

▲   절을 하랬더니 장난치는 아이      © 서울의소리
 
 
비록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 하지만.. 만일 독재정권의 백골단이 아니었다면.. 대통령이 군사독재자가 아니었더라면..
 
그래서 고 강경대 군이 백골단에 맞아죽지 않고 대학생들이 공부와 젊은이의 꿈에 젖어도 좋은 시절이었다면 김영균 열사도 아름다운 21살에 몸에 불을 붙이고 고통스럽게 죽지 않고,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자신을 닮은 아이를 낳고 평범하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   안동대 학생회관 부근의 김영균 열사 기념비  © 서울의소리
 
문득.. 장가도 못가고 그 고운 나이에 돌아가신 그가 철쭉의 무심한 붉은빛만큼이나 시리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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