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4월 26일.
학원자주화 투쟁에 참여한 명지대 1학년 강경대 군이 백골단 소속 사복경찰의 쇠파이프에 구타당해 사망해버린 끔찍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전국 대학생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꽃다운 1학년. 풋내가득한 한 새내기. 갓 입학하여 수강신청한 과목들을 들으며 친구들과 좀더 즐거운 캠퍼스의 낭만을 만끽할 새도 없이, 한 젊음이 군사독재 대통령의 악랄한 경찰에 의해 맞아죽은 것이다. 이 날부터 약 한달간, 대학생들의 분신이 이어졌다. 무려 13인의 대학생들이 분신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분신까지 불러온 강한 민주화 열망도 정원식 총리의 계란세례 봉변을 활용한 언론플레이에 덮이고 말았다.
그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하는 한겨레의 최근 칼럼의 일부를 인용해본다. "29일에는 전남대생 박승희 분신, 5월1일 안동대 김영균, 3일 경원대 천세용, 8일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 18일 연대앞 굴다리에서 이정순, 25일 성균관대 김귀정…. 이름을 다 부르기에도 숨이 차다. 그 봄에 모두 11명이 그렇게 스러져 갔다.
문익환 목사는 그 뒤 어느 모임에선가 눈물 속에 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절규하듯 부르고 내려오기도 했다. 한 대학 총장은 이 상황을 두고 정반대로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 사회에는 죽음을 선동하고 이용하려는 반생명적인 죽음의 세력들, 어둠의 세력들이 존재한다.’
분신정국은 6월3일 정원식 국무총리가 한국외국어대학에 갔다가 학생들에게 밀가루를 뒤집어쓰는 것으로 끝이 났다. 판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6월20일 치러진 광역의회의원 선거에서 집권 여당은 의석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대승을 거두었다."
2012년 5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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