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줄 알았지만 씁쓸했다. 1000차 수요시위에 우르르 몰려와 다투어 앞자리를 차지하고 카메라의 줄 세례를 받던 정치인들이 처음엔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활동가와 학생들 몇 십 명이 빨간 산타 고깔모자를 쓴 할머니 두 분을 가운데 모시고 서 있을 뿐이었다. 1000번의 시위를 넘기고 일주일 뒤인 2011년 12월 21일 정오, 1001차 일본대사관 앞 수요시위 풍경이다. 아마 다른 수요시위 날과 별로 다르지 않은 풍경이었을 것이다. 다만 1000회 수요시위를 기점으로 일본대사관 앞에 평화비가 세워졌고 1000회에 한나라당 의원까지 나와 마치 정치인 모두가 관심과 연대 적극적인 문제 해결에 나설 것처럼 떠벌였던 것과 여전히 일본 정부는 대사관을 통해서 철거를 종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생각나 혼자 씁쓸했는지도 모른다.
뒤늦게 민주당 정세균. 최영희.의원이 와 자리에 함께 헸고 더 늦게서야 원혜영 민주통합당 대표가 와서는 " 관심을 가지겠다. 해결을 촉구하겠다 일본은 사과하라 " 등을 요지로 인사말을 남기곤, 자리를 끝까지 지키지도 않은 채 성급히 돌아갔다. 시민들이 정치인들 말을 전혀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그들은 자신들의 말과 행동의 불일치를 통해 단적으로 드러내 보여준다.
정치인들과 달리 풋풋한 학생들이 전국에서 달려와 연대 발언을 했으며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할머니들을 챙기니 그들의 모습이 미더울 수 밖에 없다. 미디어 몽구가 평화시장에 가서 사왔다는 빨강 모자와 머플러, 무릎 덮개를 덮은 평화비 소녀상은 따뜻해 보였다. 소녀상의 발 주위엔 작은 크리스마스트리와 불빛이 반짝이는 곰 인형, 작은 강아지 인형이 소녀상의 친구가 되어 준다. 여느 가정의 행복한 소녀 모습, 소녀의 방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여 다행이다.
성탄일이 가까워서인지 교회 단체에서 함께 했고 선한 사마리아인에 대한 이야기로 죽어가는 이를 살린 사마리아인의 마음은 '깊은 관심과 안간에 대한 연민' 이라는 이야기에 연대와 관심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는다. 신나는 타악기 연주가 이어지고 목관악기 연주도 이어진다. 몇 곡의 캐롤도 함께 부른다. 아다시피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상대적 약자들인 여성과 아이들이다. 끔찍한 전쟁과 폭력의 직접 피해자들인 할머니 두 분은 평화를 열망하는 간절한 바람때문인지 가장 열심히 노래를 따라 부르신다. 창밖을 보라 멜로디에 맞춰 개사한 전쟁은 안된다. 평화가 넘치는 세상을 만들자는 노래 가사에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십 년의 한과 바람이 그대로 담겨 있다. - 창밖을 보라 곡에 맞춰서- 전쟁은 안돼 전쟁은 안돼 평화는 소중해 전쟁은 안돼 전쟁은 안돼 여성들이 왔다 전쟁 부르는 바보짓들을 무서운 줄도 모르고 국민들 목숨 담보로 잡고 함부로 날린다 전쟁 노래 부르면 전쟁이 오고 평화노래 넘치면 한반도에는 평화가~~ 우리 모두가 손에 손잡고 마음껏 외치자 평화통일 꿈 우리 맘 속에 사라지기 전에
집회가 끝날 무렵, 할머니 두 분이 깜짝 산타 할머니가 되어 준비된 수면 양말을 참석한 사람들에게 일일이 나눠준다. 나비가 그려진 노란 띠지에 ' 여러분에게 평화‘라고 쓰여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끌려갈 당시 13살, 15살의 풋풋한 소녀였던 그분들은 어느덧 84세, 86세 할머니가 됐다. 잃어버린 70년 눈물의 세월, 그들의 꽃다운 청춘과 꿈을 누가 되돌려 줄 수 있을 것인가.
어떤 크리스마스 선물보다 값진 선물을 건네받고는 갑자기 코끝이 찡해온다. 산타할머니가 되어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을 양말에 담아 선물로 건네는 저 고운 분들께 그분들이 20년간 한결같이 바라던 가장 큰 선물을 올해 안에 전할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날까? 사실 일본의 진심어린 공식 사과와 배상, 그리고 다시는 같은 비극이 발생하지 않을 대책을 마련하는 일은 '기적'이나 '선물'이어선 안 되는 '당연히 이루어져야 할 일'들일 뿐이다.
셰헤라자드가 이야기를 통해 왕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고 죽음을 면하고 살아남게 됐다는 <천일 야화> 가 사실은 1001일 밤의 이야기라는 것을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일본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한지 어언 1001회다. 매일이 아니라 일주일에 한 번씩이니 강산이 두 번 변하고 세 번째 변할 시점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여전히 반성이나 사과를 할 줄 모르는 일본 정부. 그 긴 세월동안 국가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할머니들을 인격적으로 두 번 죽음에 이르게 한 한국 정부, 두 정부 모두 진심 어린 사죄를 하길 바란다. 1001일의 진심도 살인마 왕의 마음을 녹여냈다는데 1001일의 7배나 되는 20년의 세월동안 한결 같이 외친 외침이 아직도 가슴에 가닿지 않는다면 저들은 인간이기를 포기했다고 볼 수 밖 에 없질 않겠는가. 84세, 86세 할머니들이 손수 써서 건넨 "여러분에게 평화'가 주는 메세지를 부디 간과하지 말라. 일본 정부의 부도덕과 몰염치를 규탄한다. 제 1001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 성명서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하루빨리 사죄하고 배상하라! -한국 정부와 국회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실질적인 대책을 수립하라! -우리는 일본정부 사죄와 할머니들의 명예회복이 이뤄질 때까지 함께 연대할 것을 결의한다! <저작권자 ⓒ 서울의 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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