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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옥의 발품일기(8) -소금꽃 그 사람을 만났습니다.

  진숙씨, 살아 내려와 줘서 고맙습니다.

이명옥 | 기사입력 2011/12/21 [02:40]

이명옥의 발품일기(8) -소금꽃 그 사람을 만났습니다.

  진숙씨, 살아 내려와 줘서 고맙습니다.

이명옥 | 입력 : 2011/12/21 [02:40]

▲ 성공회데 강연 중인 김진숙 지도위원     © 이명옥

누가 감히 남의 목숨을 내 놓으라 말할 수 있으랴.

 " 80년대에 운동을 하셨던 분 같다. 내게 쪽지를 보내왔다. '지금은 누군가가 목숨을 바쳐야 할 때다. 70년대를 연 것은 전태일이었고 80년대를 연 것은 박종철이었다. 지금 이 엄혹한 세상을 누가 열어야 할 것인지 생각해봐라. 세계가 당신을 주목하고 있다 잘 생각해 봐라. “ 

김진숙 지도위원에게 노골적으로 희생을 요구하는 쪽지를 보내 희생적 죽음을 은근히 종용하는 사람, 새벽에 전화를 걸어 노조원이라며 김진숙 지도위원이 죽어야 일이 해결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김진숙 지도는 '그런 너나 죽어라' 라고 답장을 보냈다.고 말하며 웃었지만 곧 덧붙였다. 만일  희망버스가 없었다면 아마 엄청 고민했을 것이라고. 

사실 나도 노조원이라던 어떤 사람이 “김진숙이 죽었으면 좋겠다. 그런 방법이 아니고는 한진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말하는 소리를 직접  얼굴을 대면하고  들은 적이 있다. 나는 " 그렇게 말하는 당신이   김진숙 대신 크레인 위에 올라가  대신 죽으라“고  펄펄뛰며 화를 냈다. 이제나 저제나 그저 김진숙이 크레인에서 살아 내려와 땅을 밟을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나였기에 끓어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히기 힘들었다. 

하물며 당사자인  35미터 고공 고립된 크레인 위에서 죽음을 부르는 주문처럼 129와 60이란 숫자를 머리에서 털어내지 못하던 김지도가 죽음을 종용하는 쪽지와 전화를 받으면서   어떤 심정이었을까. 얼마나 마음이 복잡하고 힘이 들었을까.

▲ 저 밝고 환한 미소는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의 행복한 모습이다.     © 이명옥
 
운동을 한답시고 해고노동자들을 제 일자리로 돌려주려고 35미터 크레인 위에 올라 하루 하루 사투를 벌이고 있던 김진숙 지도위원의 목숨을 담보삼아 무언가를 얻어내거나 돌파구를 찾으려헸던 인간의 탈을 쓴  이기적이고 맹목적인 사고를 지닌  누군가의 모습이야말로  화석화된 노동운동의 단면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도대체 운동을 왜 하는가? 죽기 위해서? 아니다. 더 사람답게,더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해서 운동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의 생명을 담보삼고 남의 행복을 저당잡아  어떤 조직이나  그 어떤 목적을 이루려한다면 이미  운동의 본질에서 변질된 것이다

129와 60이라는 숫자를 지울 수 없었다던 김진숙. 129는 2003년 노동 3권을 외치며 85호 크레인에 올랐던 김주익 지회장이 크레인에서 목을 맨 날이다.  크레인에 오른지 129일째되던 날이었다. 60은 김주익이 마지막으로 보고 간 남은 노조원의 숫자였다고 한다. 
 
죽음의 숫자 129일은 넘겼지만 매일처럼 뭉텅뭉텅 무더기로  줄어드는 노조원들의 빈자리를 크레인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나는 언제 60명 남은 노조원을 보게 될까 생각했다던 김진숙이 맛보았던  절망이 느껴지는가. 그이는 김주익의 절망감이 고스란히 느껴지더라고 했다. 아무런 내려올 기약도, 그  어떤   실날같은 희망도 없이 크레인에 올라서 그저 매일  줄어드는 노조원을 보는 절망감과 죽음을 강요하는 쪽지와 전화,  용역이 휘젓는 음식을 받아먹으며  고립감과  자신의  어지러운 마음과 싸워야 했던 김진숙 동지.

▲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     © 이명옥

크레인 157일차가 되던 날 우리는 1차 희망버스를 탔다. 사실 1차 희망버스를 탈 때의 마음과 시작은 너무나 단순했다.
 
당시 매주 화요일 보신각 앞에서 쌍차를 비롯한 해고노동자 문제 해결을 위한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언제나  열댓 명에서 수십 명을 넘지 못하는 조촐한 행사였다. 어느 날, 송 시인이 언제 함께 모여 전세버스를 타고 크레인 위의 김진숙 지도를 만나러 가면 어떨까 의견을 냈고 함께 버스를 탔다. 그것이 1차 희망버스였다.
 
희망버스가 갔을때 용역을 앞세워 길을 막아 얼결에 담을 넘은 희망버스 탑승자를  언론이  폭도와 파렴치한 범법자로 몰아대는 바람에 2차 희망버스가 앞당겨 만들어졌다.  분노한 시민들이 대거 몰려 1만 여명의 시민이 2차 희망버스를 탔다. 3차, 4차,  5차. 그렇게 희망버스는 새로운 연대의 대안으로 스스로 진화되어 갔다.

김지도는 희망버스 1차를 통해 막연하게 희망을 품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희망버스는 버스를 탔던 사람과 버스를 맞이한 사람 모두에게 희망을 싹틔우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내가 혁명가이며 아나키스트인 엠마 골드만을 좋아하는 이유는 “춤을 출 수 없는 혁명은 진짜 혁명이 아니다.”라는  그이 자신의 말처럼 '혁명은 일상을 따뜻하고 행복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해준  말과 실천 때문이다. 모든 정치적 사회적 억압과 관습으로부터 자유롭고 행복하고자 헸던 엠마 골드만의 생각은 춤을 출 수 있는 자유. 와인을 마실 자유. 사랑할 수 있는 자유“를 주장햇고 실제   그녀의 삶에 잘 드러나 있다. 

"어떤 형태든 폭력에 의존하는 정부는 불필요할 뿐 아니라 부적절하고 해롭다"고 생각했던  진정한 아나키스트 엠마 골드만, 그러나 해로운 것이 어디 정부 뿐이겠는가 폭력에 의존하거나 개인의 희생을 담보로 단체의 이익을 구하는 노조와 단체라면 그것이 무엇이건 이미 존속할 가치를 잃어버린 것이다.

빗속을 뚫고 행진을 이어가고 물대포를 맞고 나서도  밤새워  문화난장을 벌이던 이들이 바로 은 자유로운 사고와  순전한 자유 의지로 버스를 탔던 시민들이다. 희망버스 탑승자들이 자발적 시민의 연대였기에 희망버스는  더 자유롭고 더 기발한 방식으로  5차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희망버스가 만들어 낸 새로운 노동운동의 방식이며 희망버스가  끝없이 달려야 하는 이유이다.   그것은 또한 송경동 정진우를  아무리 감옥에 가둔다 한들  희망버스가 만들어 낸 거대한 희망의 뿌리는 결단코  잘라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 사람이 희망이다 연대가 힘이다.     © 이명옥
 
지금 나는 소금꽃나무 김진숙 지도위원이 두발로 크레인을 걸어 내려와 그이의 밝고 환한  미소를 눈앞에서 볼 수 있어 고맙고 행복하다. 연대와 관심이 그이를 땅에서 다시 만나 손을 잡고 목소리를 들을 날을 앞당겼다.
 
물론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만 한다. 한진도 쌍차도 재능도 콜트콜텍도 유성도 90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멍든 가슴의 상처도 우리가 새로운 희망버스로  함께 치유해 가야만 한다. 그러나 . 소금꽃나무  김진숙 지도위원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낀다. 크레인위의 김진숙이  희망버스가 태어나게 한 동인이 되었고 시민들에게 진정한 연대의 힘이 있음과 연대가 이뤄낸  승리를 맛보게 해 주었으니 말이다.

  
 희망을 찾아라 

만약 그대가 절망에 빠져 있다면 그럴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

끊어진 희망을 다시 이어야 한다

잃어버린 희망을 다시 찾아야 한다

무엇인가를 소망해야 하고 무엇인가 희망해야 한다

생각하면 가슴 떨려 설레이는

그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 ~~

희망이 없는가 ? 소망이 없는가 ? 꿈이 없는가 ?

그러면 만들어야 한다

반듯시 만들어야 한다

꼭 만들어야 한다

너무 절망스러워 도저히 희망과

소망이 없어 보일지라도 ~

찾아보고 또 찾아야 한다

그래도 없다면 억지로라도 만들어야 한다

왜냐 하면 더 이상 꿈을 꿀수 없음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엠마 골드만: 희망을 찾아라 -

 
인간은  누구나 꿈 꿀 자유가 있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고,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 그레서 우리는 희망버스를 타고 달리고 또 달린다.  신자유주의라는  괴물과 자기만 아는  거인  자본가가  만들어 놓은 거대한 절망의 담을 넘어  함께  행복과 희망을 꽃피우는  세상을 향하여~~ 
기자 사진
여성과 장애 사회문제에 관심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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