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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옥의 발품일기(7)- 빼앗긴 13살 소녀의 꿈이 슬프다.

(1000차 수요시위에 설치된 위안부 평화비를 보며)

이명옥 | 기사입력 2011/12/16 [13:11]

이명옥의 발품일기(7)- 빼앗긴 13살 소녀의 꿈이 슬프다.

(1000차 수요시위에 설치된 위안부 평화비를 보며)

이명옥 | 입력 : 2011/12/16 [13:11]
 
▲ 2011년 12월 14일 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진 위안부 평화비     © 이명옥
12월 14일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에서 일본군위안부 피해여성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 1000번 째 집회가 열렸다.

단일 집회로 세계 최고로 기네스북에 올랐단다.

최장 집회가 결코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라 너무나 부끄러운 것은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혹은 속아서 끌려간 많은 소녀들이 일본군위안부가 되어 한 인간으로의 꿈과 삶을 잃어버린 채 가족과 나라로부터 방치된 삶을 살아온 증거에 다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1992년 1월 8일 위안부 10명이 첫 수요시위를 시작한 이래 2011년 12월 14일 1000차의 시위를 하기까지 약5만여 명이 함께 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위안부 피해자의 한 명인 황금자 할머니가 임종을 앞두고 남은 돈 3000만원을 강서구에 내놓갰다며 유언서를 작성했다.

일본군위안부로 전쟁 피해자가 되어 아이를 낳아 기르지도 못하는 몸으로 혼자 살며 자신이 평생에 걸쳐 모은 돈을 사회에 내놓은 황금자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갈 당시 나이는 13살. 초등학교 6학년생의 나이다. 그런 소녀가 하루에 적게는 5명에서 15명의 군인을 상대로 섹스의 방출구로 몸을 내줘야했다.

13살에 일본군 순사에게 끌려가 위안부가 된 황금자(88세 1924년 함경도 출생) 할머니는 홀로 밥집을 하며 모은 돈 1억원을 장학금으로 내놓았고, 임종을 앞두고 폐지를 주워 모아 판 돈과 절핍생활을 하며 모은 돈 3000만원을 강서구에 내놓갰다고 유언서를 작성했다.

대부분 언론이 그런 일에만 잠시 관심을 보일 뿐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문 앞에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와 정대협 활동가 학생과 시민단체들이 1000회 20년에 걸쳐 일본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며 집회를 벌여 온 사실에는 무관심하다.

아니 가족과 나라는 그들의 삶을 지켜주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는 대신, 그분들의 삶을 수치스러운 것으로 폄훼했고, 숨기려했고, 경원시 했으며 그들의 절규와 눈물을 외면했다.

▲ 1000차 수요시위에 참석한 위안부 할머니     © 이명옥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일본군은 짐승에게도 못할 끔찍한 짓을 나이 어린 조선인 처녀들에게 서슴없이 행했음을 알 수 있다. 범죄의 정도를 넘어선 증언들을 보면 아래와 같다.

“ ‘천황폐하를 위해 몸을 바치면 좋은 대우를 받는다’고 했어요. 하루 밤에 10∼15명의 군인을 상대해야 했고 임신을 했는데 치료를 해준다더니 ‘아직 쓸 만한데’하는 생각으로 자궁째 태아를 들어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됐습니다. 혼자 있을 땐 옛 생각이 떠올라 눈물이 납니다.” 

그 해 8월27일, 칼을 찬 군인이 ‘군인 100명을 상대할 수 있는 자가 누군가’하고 물었는데 손을 들지 않은 15명의 여성은 다른 여성에 대한 본보기로 죽였어요. 옷을 발가벗긴 채 군인이 머리와 발을 잡아 못 박은 판자 위에 굴렸지요. 분수처럼 피가 솟고 살덩이가 못판에 너덜거렸고 그때의 기분은 “하늘과 땅이 온통 뒤집어진 것 같았어요. 군인들은 못 판 위에서 죽은 한 여성의 목을 쳐 떨어뜨렸고 울고 있는 우리를 본 중대장이 “위안부들이 고기를 먹고 싶어 운다”고 하며 죽은 여성의 머리를 가마에 넣어 삶았어요. 그리고는 나무칼을 휘두르며 우리에게 억지로 마시도록 했어요. 

1933년 12월1일에는 한 여성의 자궁에 장교가 철봉을 꽂아 죽여 버렸고 다음해 2월4일에는 매독에 걸린 사실을 신고하지 않아서 장교에게 병을 옮겼다는 이유로 일본군이 벌겋게 달군 철막대를 자궁에 넣었고 여자는 즉사했어요. 뽑아낸 막대에는 검게 탄 살점이 달려 있었지요.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아요 “ 

증언을 한 사람은 온몸에 걸쳐 문신이 새겨져 있었는데 군인들은 처음부터 죽일 셈으로 여성들에게 문신을 했다. 마차에 실려 온 여성들을 들에 팽개치는 모습을 멀리서 보고 있던 중국인 남자가 일본인이 사라진 뒤, 숨이 남아 있던 여자 두 명을 옮겨 약 두 달간 간호해줘 살아났고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사람 중 한명인  정씨의 증언이다. 

위안부들은 한사람씩 들어가는 막사 같은 곳에 갇혀 지내며 하루 5명에서 많게는 50명의 군인을 상대로 성적 욕망의 분출구가 되어야 했고 심지어 구덩이에 위안부 여성들을 차례로 뉘어 놓고 여러 명이 한꺼번에 그 짓을 하기도 했다. 아프다 소리도 못하고 씻지도 못하고 생리 중에도 그 짓을 해야만 했다고 증언하고 있으며 성병에 걸리면 치료는 없고 약만 바르고 솜만 대는 경우도 있었고 잦은 병치레하는 여성은 그냥 죽여 구덩이 옆으로 밀어버리기도 했다. 사이판에 있는 재패니즈 터널(Japanese Tunnel)같은 경우는 위안부 여성들의 주거지이자 무덤이었다고 현지 가이드들이 소개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조선 여성들은 마루타로 끔찍한 생체 실험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 중에서 여성들에게 행해진 생체실험은 끔찍하고  잔인하기 이를 데 없다. 여자포로를 대상으로 매독균을 질내에 주입해 진행과정을 살펴보는 실험을 하기도 했고 인공낙태 실험을 한다고 자궁에 벌레나 구더기를 넣고 태아를 얼마나 갉아먹는지 알아보았으며, 이종교배실험으로 외국인과 사람 교배, 나아가 산 여자 자궁에 각종 동물 정자 넣어서 실험을 하기도 했다는 증언과 문서들이 나오고 있다. 

조선인 소녀들을 유린한 일본군은 패망이 가까워지자 위안부 범죄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위안부 여성들을 살해해 현지의 구덩이에 묻었으며( 사이판 : JAPANESE TUNNEL) 극소수만 살아남았다. 강제징용 피해여성 중 근로정신대 235명, 군위안부 155명이 신고하였고 현재까지 대한민국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34명 중 최고령 박서운 할머니의 사망을 필두로 2011년 12월 13일 김요지 할머니 사망으로 이제 63명만이 생존해 있다.

매스컴만 의식하는 정치꾼들에게 묻고 싶다.

▲ 수요시위에 참석한 정치인들이 앞에 앉아 있다.     © 이명옥
 
2011년 12월 14일 100번째 수요시위장엔 정치꾼들이 다투어 앞자리를 치지하고 앉아 있었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1000번의 수요시위가 진행되는 동안 과연 몇 번이나 그 자리에 함께 했는지를. 그리고 또 묻고 싶다. 위안부 피해자의 문제를 진실로 가슴 아파하며 국가적인 문제로 고민해 본 적이 있는지를. 예순 세 분 남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다 돌아가시기 전 그분들의 가슴에 맺힌 한을 풀어줄 준비가 되어있는지를. 

1000회 수요시위 날인 14일에 일본대사관이 마주 보이는 길 위에 세워진 평화비는 청동 소녀상. 한복을 입은 14-15세 소녀는 의자에 앉아 주먹을 쥔 두 손을 무릎위에 올려놓고 대사관 문을 바라보고 있다. 왼쪽 어깨위엔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를 연상시키는 새 한 마리가 앉아 있다. 새처럼 자유로운 영혼이 되고 싶은 갈망을 담은 것일까. 소녀 옆에는 누구든 앉아 소녀의 슬픔과 아픔을 위로하고 대화할 수 있는 자그마한 의자가 마련돼 있다.
 
평화비는 2010년 10월 13일 939회 수요시위 현장에서 모금이 시작돼 1400여명이 십시일반 3천만여원을 모아 조각가 김운성(47)·김서경(46) 부부가 제작했다.  김운성 씨가 기획하고 김서경 씨가 조각을 했다고 한다. 지난 10일 정대협 후원회에서는 작가의  평화비 축소 작품 한점이 경매품으로 기증되기도 했다.

작가는 대사관 앞길을 별 생각 없이 오가는 이들이 평화비를 보면서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픈 과거의 역사를 잊지 않고 역사적 고민을 해 주길 바라는데 일본은 대사관을 통해서 평화비의 철거를 요구하고 있다. 일본은 사과나 반성은커녕 후지무라 오사무 관방장관을 통해 “설치가 강행된 것은 정말 유감”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평화비가 설치된 다음날인 15일 또 한 차례의 기자회견을 통해 무토 마사토시 주한 일본대사가 우리 정부에 평화비 철거를  재차 요구했다. 정부는 “민간단체에서 설치한 것으로, 정부 소관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명확히 한 상태라고 한다. 

일본 정부는 1965년의 청구권 협정에 의해 배상이 끝났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며 대사관 앞에 위안부 평화비가 설치된 것은 품위를 손상시키는 일이라며 거듭 철거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범죄 사실에 대해서는 명백한 범죄의 증거들이 있으며 무엇보다도 확실한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이 있기에 일본은 범죄 사실을 시인하고 공식 사과와 보상, 차후 대책을 마련해애 함은 당연하다.
 
대한민국은 일본에게 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사과와 보상을 논의해야 함에도 침묵과 방관으로 지내왔다. 헌법재판소는 2011년 8월 30일 오후 2시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 제3조 부작위 위헌확인'에서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 배상청구권 관련 구체적 해결 노력하지 않고 있는 것은 피해자의 기본권을 침해해 헌법에 위배" 된다며 위헌 결정을 내린바 있다.
 
헌법재판소에서까지 위헌 판결을 한 위안부 문제, 이제는  정부와 정치인들의 적극적인 대응으로  해결해야 한다.  시민들은 정부와 정치인들의 행동을  예의 주시할 것이다.

1000차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성명서
 
일본정부는 일본군위안부 범죄의 진실을 철저히 규명하고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과하라!

일본정부는 국제법에 따라 피해자들에게 법적 배상하고, 다시는 이같은 범죄가 재발하지 않도록 명확한 조치를 취하라!

일본정부는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교과서에 명확하게 기술하여, 현재와 미래세대가 올바른 역사를 배울 권리를 보장하고 나아가 인권과 평화의 가치를 실현시키는 데 앞장서라!

피해자들이 천회의 거리투쟁을 이어오게 만든 한국정부의 무책임과 방관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한국정부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보다 겸허하게 받아들여 양자협의 성사, 나아가 문제핵셜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다하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정의실현을 외면해 온 각국 정부와 국제사회에도 책임을 묻는다. 전범자 처벌과 전쟁범죄에 대한 방조는 일본군위안부와 같은 끔찍한 범죄의 재발을 유발하는 것이며, 이에 국제사회는 전쟁과 여성폭력 중단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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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장애 사회문제에 관심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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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아리 2012/02/27 [01:49] 수정 | 삭제
  • 힘이 없어서 참으로 많고 많은 억울한 일들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충분한 힘이 있음에도 나 몰라라 한다는건
    도저히 국민의 한 사람으로 용서가 안되는 일입니다.

    과연 사람과 동물의 차이점이 무얼까요?
    양심을 잃어버리면 더 이상 사람이 아닐것이고,
    잘못을 인정조차 못한다면 사이코패스일뿐입니다.

    물론 사건의 당사자가 되면 가끔 현실을 부정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부정할수 없는 증거와 증인들이 있는데도 부정하거나....
    혹은 "나와는 상관 없다"로 일관 할때는 사이코패스임을 스스로 인정하는겁니다.

    박근혜 의원 언제까지 국민들을 속이고 깨끗한척 고상한척 하는지 두고보겠습니다.

    민주어린이님 말씀이 참으로 명언이고 정답이네요.똑소리 나십니다.

  • 민주어린이 2011/12/17 [18:35] 수정 | 삭제
  •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여기에 나와주는 정치인은 다행이지.

    김종필 씨! 박근혜 씨!
    당신들이야 말로 나와서 뭐라고 말을 해야하는거 아닌가요?
    일본이 이거 문제없다고 말하는 한일협정. 김종필씨와 당신의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밀실에서 쇼부보고 퉁치셨으니 말입니다.

    정치인 전부를 까지말고
    딱 찝어서 당사자를 까야 효과적입니다.
    박근혜 의원. 이거부터 답변하고 대선 나오십시요.
    일본과 국교 수교한다고 이 할머님들을 버리셨죠. 부끄럽다고 창피하다고.

    사람이라면..... 사람이라면.....
    일본이 직접 진상조사단 파견하고 당시 가해자였던 인물, 아니면 그 가족이라도 불러서 [유감표명]이 아닌 진짜 직접 사과하게 하십시요.
    일본어라면 저라도 자원봉사 해드리겠습니다.
    통석의 념따위 그런 미사여구 필요없습니다.

    눈똑바로 뜨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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