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속담에 ‘모난 돌이 정 맞는다’란 말이 있다. 이 속담은 어떤 집단에서 튀는 행동을 해 구성원들에게 눈엣가시가 된 사람을 이를 때 흔히 하는 말이다. 이 속담엔 지나친 언행은 하지 말라는 교훈과 함께 튀는 사람을 못 마땅해 하는 지배 세력의 경고가 동시에 들어 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산다’란 속담 역시 분수에 맞게 살라는 뜻도 있지만, 백성은 정치에 관심 두지 말고 흙이나 파며 살라는 뜻도 있다.
이렇듯 속담 중엔 긍정적 의미와 부정적 의미가 동시에 함축되어 있는 것이 많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 ‘형만 한 아우 없다’ 등에도 두 가지 의미가 동시에 들어 있다. 인간 본연의 시기심과 유교적 서열이라는 언어의 바늘이 그 속에 숨어 있다. 우리나라만큼 가족 간에 소송이 많이 벌어지고, 사법고시 몇 기, 해병대 몇 기 운운하며 ‘기수’를 따지는 나라도 드물다.
윤석열 선대위 대변인을 하다가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한 김은혜가 최근 위기에 빠졌다. “청년의 다른 이름은 공정”, “경기맘” 운운하던 그녀가 정작 자녀, 남편, 본인은 정반대의 행동을 한 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김은혜는 MBC에서 앵커로 근무하다가 이명박 정부시절 청와대 대변인으로 발탁되어 활동했는데 알 수 없는 이유로 그만 두고 갑자기 KT전무로 갔다. 당시에도 특혜라는 말이 끊이지 않았는데, 드디어 충격적인 사건이 터졌다. 민주당 이원욱 의원이 공개한 것에 따르면 김은혜는 KT전무로 재직 시 지인의 자녀가 KT에 취업할 수 있도록 청탁을 했다.
이 사건의 심각성은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터져 나온 폭로가 아니라, 그 사실이 김성태 자녀의 KT 특혜 입사 판결문에 명시되어 있다는 점이다. 김성태는 그 사건으로 이미 유죄를 선고받았다. 보도에 따르면 김은혜 지인의 자녀는 서류 심사에서 떨어졌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합격했다고 한다. 판결문에는 당시 채용 청탁을 한 다른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바로 김은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김성태만 처벌했다.
김성태와 필자는 악연도 있다. 김성태는 필자와 같은 58년 개띠인데, 자신은 원내대표를 할 때 할 말 다 하면서 네티즌이 뭐라 비판하면 보좌관을 통해 고발해 필자 역시 대전 경찰서에 출두해 조사를 받았다. 김성태가 필자를 고발한 이유는 필자가 김성태를 ‘혼수성태’라 비하했기 때문이었다. 네티즌의 언어유희도 고발한 것이다. 필자는 그런 식의 고소, 고발로 여러 번 경찰서를 들락거렸고, 치통까지 생겨 절치까지 했다. 아이디 영구 정지를 받아 한동안 인터넷에 글을 올릴 수도 없었다. 물론 모두 무혐의를 받았다.
바로 그 김성태의 판결문에 김은혜가 명시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당시 KT는 비리 복마전이라 불릴 정도로 특혜 채용이 다반사로 이루어졌고, 이책익 회장도 그 건으로 법정에 서야 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이루어진 각종 비리와 채용 특혜는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김은혜는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초대 외신담당 제1부대변인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고, 2009년 4월부터 2010년 7월까지 제2대변인을 역임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대변인을 그만 두고 KT 전무로 발령이 나 당시에도 ‘낙하산 인사’라는 비판이 무성했다. KT가 김은혜를 위해 없는 자리까지 만들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김은혜는 KT커뮤니케이션 전무라는 자리를 차지했는데 그 전엔 없는 자리였다.
이명박 정부 시절, 서울시청이나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사람들 중 상당수는 대기업 임원으로 재취업해 고액 연봉을 받으며 살고 있다. 필자의 대학 후배도 00그룹 상무로 있는데,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운동권이었다. 엄혹한 80년대 초반, 같이 민주화 운동을 했던 선후배들이 이명박근혜 정부에서 일하고 있는 것을 보면 피가 솟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이를 어쩌랴. 다시 김은혜로 돌아가보자. 김은혜는 “경기맘‘이 되겠다며 유독 교육 공약을 많이 내놓았다. 하지만 자신의 자녀는 정작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고, 남편은 미국 변호사로 한국이 아닌 미국 방사관련 변호를 하고 있었다. 글로벌 시대에 자녀가 미국에서 공부한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항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국민정서이지 법이 아니다.
환언하면, 국산품을 사용하자고 해놓고 정작 자신의 집엔 비싼 해외 제품이 가득하다면 어떤 국민이 이를 호의적으로 보겠는가? 선거 땐 법적 구성요건보다 국민정서가 더 중요하다는 것은 김은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선거 때 유권자들에게 가장 소구되는 것이 소위 ‘상대적 박탈감’이다. 대부분의 서민 자녀들은 미국은커녕 동네 학원도 못 다니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의 자녀는 거액을 들여 미국에서 공부하고, 각종 스펙을 쌓아 미국 명문대에 입학한다. 그 자체가 죄일 수는 없으나 상대적 박탈감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후보가 한 말이 모순될 때 상대적 박탈감은 분노로 변하기 마련이다. “경기맘”이 되어 교육 격차를 해소하겠다던 김은혜의 공약은 그것 하나로 공염불이 되어버렸다. 거기에다 KT 채용 청탁까지 연루되었으니 국민들이 느낄 분노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보도된 것이 사실이라면 김은혜는 변명할 게 아니라, 수사를 받아야 한다. 김성태가 이미 유죄를 받았고, 조국 자녀를 생각하면 변명할 계제가 되지도 못한다. 조국 장관 가족에 대해 국힘당, 윤석열, 김은혜가 한 말을 모두 모아놓으면 책 한 권은 될 것이다. 조국 딸을 표창장 하나로 고졸로 만들어버린 것은 정당하고, 한동훈 자녀처럼 온갖 부모찬스로 스펙을 쌓는 것은 괜찮다는 말인가?
거기에다 김건희는 국민대 박사학위 표절, 20가지나 넘은 각종 허위 학력 및 경력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하지만 국민대는 이를 처벌하지 않았고, 도이츠모터스 주가 조작이 드러났음에도 검찰은 김건희를 소환조차 못하고 있다. 이것이 윤석열이 대선 때 외친 공정과 상식인가?
공정과 상식이라는 기만적 구호로 대통령이 된 윤석열은 장관, 비서관 대부분을 검찰 출신으로 채우고 각종 비리 혐의에도 불구하고 장관 임명을 강행했다. 한동훈은 법무부 장관이 되자마자 수사의 칼을 뽑아들었다. 본부장 비리에 칼을 뽑아든 게 아니라 전 정부 장관 집을 압수수색한 것이다.
윤석열이 한동훈을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한 것은 앞으로 있을 ‘본부장 비리 특검’에 대응하기 위한 포석으로 읽힌다. 아울러 그동안 민정수석이 하던 인사 검증을 법무부가 하도록 해 비리 혐의를 캐비닛에 넣어두고 활용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그것이 아니라면 민정수석을 없애고 법무부에 인사 검증을 맡길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것은 성잔에 든 독일 뿐, 윤석열 정권의 몰락만 자초하게 될 것이다.
‘경기맘’을 자청하며 공약으로 교육격차 해소를 내건 김은혜가 자신의 자녀는 정작 미국에서도 최상위층이 다니는 기숙학교에 보내고, 거기에다 KT 채용 청탁까지 터져 나오자 경기도 민심이 흉흉해지고 있다. 어떻게 하든지 경기도에서 이겨보려던 국힘당과 윤석열 정권도 난감한 처지가 되었다.
다시 강조하지만 선거는 법이 아니라 국민정서가 더 중요하다. 김은혜가 자녀를 미국에서도 최상위층이 다닌다는 기숙학교에 보내거나, 일 년 경비가 1억 가까이 든 것은 하등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문제는 김은혜가 경기맘이 되어 교육 격차를 해소하겠다고 말한 점이다. 이것은 부동시로 군대도 안 간 윤석열이 선제타격 운운하며 안보를 강조한 것과 같다. 한동훈의 자녀는 평가할 가치도 없다. 한동훈의 처 역시 미국 변호사다.
김은혜가 사실상 ‘미국맘’이 되어 어떻게 경기도 교육 격차를 해소할 수 있을지 그 결과는 6월 1일 저녁쯤 나타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김은혜에게 불리한 경기도 민심이 어디로 흐를지는 명약관화하다. 다 속여도 민심은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
아직도 국민 절반은 TV보기를 꺼려하고 있다. 윤석열, 한동훈, 원희룡 같은 가증스러운 얼굴을 보기 싫어서다. 거기에 김은혜가 추가되었다. 고속도로 배수구에서 주운 서류 뭉치를 들고 설칠 때부터 김은혜의 정치적 운명을 예감했다. 그 잘난 나경원이 지금 어디에 있는가? 세상엔 인과응보란 게 있다. 상대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하면 자신도 언젠가 피눈물을 흘리게 된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요, 진리다. <저작권자 ⓒ 서울의 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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