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란 늘 변한다. 시대 흐름에 따라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도 있고, 원래 있던 말인데 그 뜻이 변하기도 한다. 네티즌들이 쉽게 주고받는 것으로 알았던 ‘댓글’이 “고도의 정치적 의도를 띤 행위”가 된 것도, 삼국지에서나 나오던 ‘십상시’가 보편적으로 쓰는 단어가 된 것도 다 시대의 흐름이 반영된 결과다.
‘말’을 ‘살아있는 생물’이라고 하는 것도 그런 이유인데, 시시각각 변하는 단어를 잘 파악하지 않으면 망신을 당할 수가 있다.
예를 들어 딸을 달라고 할 목적에 장인어른을 만났다고 해보자. 장인: 그래, 자네 하는 일이 뭔가? 예비사위: 네, 저는 댓글을 답니다. 보통 사람은 저 대답에 “아, 국정원 다니는구나”라고 알아듣지만, 외국에 살다 귀국한 지 얼마 안됐거나, 일등신문만 보고 산 분이라면 “그래 가지고 어떻게 내 딸을 먹여 살리겠나? 당장 나가!”라며 불같이 화를 내지 않겠는가?
지난 몇 년간 그 뜻이 변한 용어들을 총정리해주는 이유는 거기에 있으니, 이걸 가지고 “저런 좌파 같으니라고!”라고 욕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비선< 뻔히 눈에 보이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사회적으로 합의한 그 어떤 것. 예를 들어 동물원에 가서 코끼리를 봤다고 하자. 남자: 저 코끼리 보여? 여자: 당연히 보이지. 저기 있잖아. 남자: 저 코끼리, 사실은 비선이야. 여자: 앗! 코끼리가 어디 갔지? 도대체 보이질 않네?
서민정책< 재벌과 부유층으로부터 깎은 세금을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것의 가격을 올림으로써 충당하고자 하는 정책. 남자1: 새해에는 대통령이 서민정책을 더 열심히 추진한다고 하네. 남자2: 아이고, 지금도 힘든데 내년엔 더 죽어나겠군. 담배부터 끊어야지.
땅콩< 절체절명의 순간에 나타나 높은 분을 구하는 음식. 비서: 지금 여론이 좋지 않습니다. 사과라도 함이 어떨지요. 높은 분: 어디서 땅콩이라도 구해 봐!
진실된 눈물< 눈을 깜빡이지 않으면 나오는 액체. 여자: 흑흑흑. 오빠 나한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흑흑. 남자: 너의 눈물은 진실되지 않았어. 눈을 깜빡였잖아.
어버이< 테러를 불사하며 이 나라를 지키는 수호대를 일컫는 말. 최근 어버이들이 한 일은 다음과 같다. “통합진보당 해체 촉구 혈서 및 삭발” “문재인 의원 화형 퍼포먼스” “세월호 유족 농성장 난입” 등등. 아이1: 우리 아버지는 사장이다. 너희 아버지는 뭐하시니? 아이2: 우리 아버지는 그냥 어버이야. 아이1: 내, 내가 잘못했어. 우리 친하게 지내자.
유가족의 종류 1) 불순한 유가족: 사고로 가족을 잃고 그것에 대해 슬퍼하는 사람들. 2) 순수한 유가족: 사고와는 상관이 없지만 높은 분이 오면 조문장에 나타나 높은 분을 따뜻이 맞아주는 분.
민주주의< 마음에 안드는 세력을 얼마든지 손봐줄 수 있는 체제. 아이1: 야, 저기 저 아이 헤어스타일이 마음에 안들지 않냐? 우리가 혼 좀 내줄까? 아이1, 아이2, 아이3, 우르르 달려가 아이4를 두들겨 팬다. 이를 지켜보는 아이5: 민주주의가 잘 지켜지고 있구나.
국기문란< 대통령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행위. 예를 들어 대통령이 자장면을 먹다가 맛이 없으면, 그 요리사는 ‘국기문란’을 저지른 것이다.
검찰수사< 대통령이 여기까지 와, 라고 하면 딱 거기까지만 가는 것. 검사1: 이번 사건 어떻게 수사할 거야? 검사2: 난들 모르지. 곧 가이드라인을 주시겠지.
수첩< 자신이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가 적혀 있는 지침서. 선생: 너 왜 지각했어? 아이: 수첩에 나와 있어요. 선생: 아, 그래? 그럼 할 수 없군.
찌라시< 사실이긴 하지만 높은 분의 마음에 들지 않는 내용을 담고 있는 문건.
자작극< 위에서 시킨 일을 충실히 수행하다 걸렸을 때 쓰는 용어. 경찰: 너 왜 그런 짓을 했어? 범인: 그분이 시켜서 한 거예요. 경찰: 이거 완전히 자작극이구만.
대충 생각나는 것만 적어 봤는데, 이것 말고도 정리를 해야 할 용어가 훨씬 많을 거다. 우리가 평생교육을 받아야 하는 이유다.
기생충박사, 서민교수 http://seomin.khan.kr/206 <저작권자 ⓒ 서울의 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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