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의 사표이자 언론인의 스승이신 단재 신채호 선생 '탄신 134주년 기념식'이 단재 신채호 선생 기념사업회 주관으로 8일 오전 11시 충북 청원군 낭성면에 위치한 단재 묘에서 거행되었다.
이날 탄신 기념식에는 남만우 전 광복회장, 신채호선생 기념사업회 김원웅 회장, 광복회 지회장, 독립운동가 후손, 충북 부지사, 청주시의회 의장과 신씨 종친, 단체 회원, 시민등 100여명이 참석해 단재 선생 탄신일을 기념하고 헌화했다.
단재 선생은 1880년 충청도 회덕현에서 출생하여 선조로부터 한학을 배우고 청년시절 당시 최고의 학문기관인 성균관에 입교했던 최고의 지성인이었다.
그러나 단재 선생은 비폭력 만세운동의 한계를 절감하고 무장항일 활동을 했던 '진정한 투쟁가'였다. 일례로 단재를 논하며 빠질 수 없는 것은 일제 관리와 군경의 간담을 서늘케했던 그 이름 '조선의혈단'이다. 조선의혈단은 비폭력을 배격하고 그야말로 언제 어디서건 나타나 일제를 향해 폭탄을 던지고 권총을 들이대던 일제로서는 무서운 존재들이었다.
김원웅(단재 신채호선생 기념사업회)회장은 “미국의 윌슨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기대를 걸고 일으킨 3·1운동이었지만 미국이 일본의 식민지배를 비호한 것에 대한 실망이기도 했다” 따라서 “독립은 피로 얻어지는 것이나 남의 힘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며 “조선의혈단의 현실 인식은 매우 투철했었다”고 말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그야말로 시대를 앞서가는, 지금의 투쟁가도 깜짝 놀랄만한 진보적인 어록을 남기기도 하였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절친한 지인의 '보석금을 내주겠다'는 호소에 '친일하는 자의 도움은 필요없다'며 거절하고 1936년 중국 여순 감옥에서 순국하였다. <저작권자 ⓒ 서울의 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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