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민 X파일 처음 등장…작년 10월 인도네시아 순방으로 재부상
‘정윤회-문고리 3인방 VS 박지만-조응천’구도 본격적 권력투쟁
박근혜 정부가 3년차로 접어드는 시점에 최대 악재가 터졌다. 다름 아닌 박의 남자로 알려진 정윤회다. 또한 정윤회는 지난 2007년 박근혜 X파일에 등장했던 고 최태민 목사의 사위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로 알려진 정윤회 씨는 본지가 지난 대선을 전후해 꾸준히 보도해왔던 인물이기도 하다.
정 씨의 존재는 그동안 꾸준히 정치권 주변에서 이름이 오갔고, 본지는 그의 움직임을 끊임없이 보도해왔다. 본지가 그를 주목해 온 이유는 그의 실체가 있든 없든 간에 그의 이름이 정치권에서 끊임없이 오고가는 것 자체가 현 정권의 폐쇄성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체가 있다면 비선에 의해서 국정이 농락당하는 현 정권의 비정상성을 보여주는 것이고, 실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집권 3년차가 되도록 그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은 ‘죽은 공명에게 사마위가 놀아나는 것’과 똑같은 모양새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본지가 정윤회의 행적과 소문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고, 본국의 언론이나 SNS에서 본지의 기사가 수없이 언급됐다. 특히 본지가 지난해 보도했던 정윤회 씨의 인도네시아행 보도는 당시는 주목도가 떨어졌지만, 이번 사건인 터지면서 YTN과 연합뉴스 등을 비롯한 본국 언론들이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는 이러한 ‘시그널’을 무시한 채 ‘우리만 깨끗하면 된다’는 식의 대응을 해왔다. 결국 정윤회씨는 박근혜 정부 중반 정권의 치명상을 입힐 최고 악재로 떠올랐다. 이에 <선데이저널>은 그동안 보도를 되짚어보며 정윤회 게이트의 본질이 무엇인지 추적해봤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2007년 x파일에 처음 등장
2007년 여당의 대선 후보를 결정하는 한나라당 대선에서 박근혜와 이명박은 치열하게 맞붙었다. 이 때 당시 박근혜 후보와 관련되어 돌아다닌 문건이 바로 박근혜 x파일이다.
이 파일에 등장하는 주요한 내용은 박 대통령의 영애 시절 그의 측근이었던 고 최태민 목사와 관련된 것들이었는데 이 때 함께 등장한 인물이 최태민의 사위였던 정윤회였다. 정 씨의 부인이었던 최순실은 최태민 목사의 다섯 번 째 딸이었다. 최순실은 박근혜 대통령과 20대 때 말동무로 지낸 것으로 알려진다.
여러 기록을 되짚어보면 박 대통령은 최태민에게 정서적으로 의존했던 것으로 보인다. 최태민은 박 대통령이 설립한 구국봉사단에서 명예총재로 행세하면서 기업인들을 운영위원으로 위촉해 찬조비나 운영비 명목으로 돈을 뜯어냈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다. 1977년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최태민을 불러다 '친국'을 한 사실도 기록에 남아있다. 박 대통령이 "내가 그간 최태민 보고가 올라올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듯 아팠네"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본인이 결행한 10ㆍ26 혁명의 동기 가운데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 한 가지는, 총재 최태민, 명예총재 박근혜양으로 되어 있는 구국여성봉사단 문제이며, 본인은 최 목사의 부정행위를 상세히 조사해 박대통령에게 보고했지만 박 대통령은 근혜양을 그 단체에서 손을 떼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근혜양을 총재로 최태민 목사를 명예총재로 올려놓았다."
박근혜는 서울신문과 인터뷰에서 최태민과의 관계를 밝힌 적 있다.
"내가 누구에게 조종을 받는다는 것은 내 인격에 대한 모독이다. 최 목사는 88년 박정희 기념사업회를 만들 때 내가 도움을 청해 몇 개월 동안 나를 도와주었을 뿐 아무런 관계가 없다."
최태민을 끝까지 싸고도는 의혹
2004년 조선일보 인터뷰에서는 "그분이 저를 많이 도와주셨다"면서 "저에게는 고마운 분이고 그래서 음해도 많이 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 "돌아가신 지가 벌써 10년 가까이 됐다"면서 "정권이 몇번이나 바뀌는 동안 친척까지 이 잡듯이 뒤지고 조사도 많이 했지만 아무 것도 드러난 것이 없지 않느냐"고 옹호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1991년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최태민이) 우리 사회를 걱정하는 사람으로 느껴서 그분과 같이 일하게 됐다"고 말한 적 있다. 조선일보 2002년 인터뷰에서는 "사이비 종교 지도자가 아니라 정식 기독교 목사였고 그렇게 이상한 사람이면 상대도 안 했을 것"이라며 "나도 알아볼 것 다 알아보고 했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최태민은 12ㆍ12 직후 사기 및 횡령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돼 징역 1년6개월을 선고 받는다.
박 대통령이 정치를 시작하자 정 씨는 ‘정치신인 박근혜’의 보좌관으로 합류하며 최측근 역할을 했다. 그는 1998년부터 2004년까지 보좌관으로 활동했고, 특히 2002년 박 후보가 한나라당을 탈당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 총재로 취임했을 때는 총재비서실장을 맡았다. 그러다가 2004년부터는 공식적인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이 대선 후보에서 떨어지면서 그와 관련한 소문 역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2012년 대선에서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 후보로 결정되면서 그와 관련한 소문이 다시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박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그에 대한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2013년 인도네시아 순방 때 다시 수면 위로
박 씨가 다시 정치권에 본격적으로 이름이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1월이다. 당시 본보는 정 씨가 2013년 10월 박 대통령의 인도네시아 순방 기간에 따로 인도네시아로 건너가 청와대 주변인사들을 만났다고 보도했다. 다음은 당시 본보 보도 내용의 일부다.
<한 때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활동하다 2007년 대선을 전후해 종적을 감춘 정윤회 씨가 최근 활동을 재개한 사실이 <선데이저널>의 취재 결과 드러났다. 한 한국 유력 정치인은 <선데이저널>과의 통화에서 “정윤회 씨가 지난 10월 박근혜 대통령의 인도네시아 순방 기간 중 인도네시아에 방문해 청와대 내 몇몇 인사들을 접촉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정 씨가 인도네시아에서 청와대 인사들을 접촉했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지난 2008년 이후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그가 박근혜 정부 출범 후에도 여전히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현재 청와대 내에 있는 박 대통령의 측근은 대부분 정 씨가 추천한 인물들이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감사원장 인선을 두고 김희욱 동국대 총장과 성낙인 서울대 교수 등을 저울질했지만 박 대통령이 인도네시아 순방을 마치고 돌아와 갑작스럽게 황찬현 전 대법관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여전히 황 후보자를 누가 추천했는지 의아해하고 있으며 김 실장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정 씨가 감사원장 인선에 관여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본지는 그 시점에 인도네시아에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여권이나 기타 문서로 확인해준다면 이를 정정하겠다고 했으나 그는 이후 별다른 연락을 취해오지 않았다. 본지는 그가 인도네시아에 갔다는 말이 정치권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봤다. 정권 초반 이런 소문 자체가 외부로 나오는 것이 향후 국정운영에 어려움이 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당시에는 이 기사는 SNS를 통해 인터넷 상에서 화제가 됐지만, 언론에서는 이를 주목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정 씨가 화제의 중심에 떠오르자 뒤늦게 본국 기자들이 본지에 전화를 걸어 당시 취재에 대해 확인해오고 있다.
수면위로 부상한 권력투쟁
본지가 청와대 막후에서 벌어지는 권력투쟁과 관련해 주목한 또 하나의 인물이 최근 언론에 등장하고 있는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다.
본지는 지난해 9월 조 전 비서관이 박지만 EG회장의 마약 사건 당시 수사검사라는 사실을 단독으로 보도했다. 조 전 비서관이 언론의 주목을 처음 받게 된 것은 지난해 8월이다.
조 비서관은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과 관련해 자신의 직속상관이었던 곽상도 전 민정수석이 경질될 때도 자리를 지킴으로써 주목을 받앗다. 그래서 수석은 경질되고, 비서관은 유임돼 수석보다 비서관이 센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왔던 바 있다.
당시 청와대 내에서는 ‘조 비서관이 박지만 라인이기 때문에 유임됐다’는 말이 파다했지만 조 비서관이 대구 출신이라는 것 이외에 박지만 씨와 이렇다 할 인연이 밝혀진 바 없어 이내 소문은 사그라졌다. 하지만 본보의 보도로 두 사람의 인연이 밝혀졌다.
본보 이후 정윤회와 문고리 3인방 VS 박지만과 조응천의 구도가 된 권력투쟁에 주목했다. 이러한 권력투쟁이 수면 위로 부각된 것은 지난 3월 본국 시사주간지 ‘시사저널’의 보도였다. 다른 사람들이 소설과 같다던 두 사람 간의 권력암투설은 본보가 꾸준히 보도했고, 결국 시사저널 보도로 드러난 미행사건이 그 결정판이었던 셈이다.
해괴한 풍문들의 근원지는?
청와대는 두 사람 간 권력암투를 부인하고 있지만 공교롭게도 두 사람과 관련한 소문들은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대표적인 것이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당시 정 씨와 7시간 동안 같이 있었다는 루머다. 검찰 수사로 이러한 소문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지만, 정 씨의 존재가 다시 수면 위로 부각됐다. 그리고 이러한 소문은 조선일보를 거쳐 산케이신문에서 보도됐고, 이는 대한민국의 국격을 땅으로 떨어뜨리는 결과로 나타났다.
세월호와 관련해 권력투쟁의 두 축이었던 사람의 소문이 앞다투어 돈 것은 우연의 일치였을까. 본보가 두 사람의 권력투쟁을 다시 한 번 보도한 것은 지난 10월이다. 당시 본보가 뽑았던 제목은 마치 지금의 상황을 꿰뚫는 듯한 제목이다. <국정원 2인자 사표 파문 뒤에 ‘박지만 VS 정윤회’ 갈등... 문고리 3인방 전횡 ‘朴만 모르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 일어나는 사건의 중요성을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본보를 비롯해 국내 일부 언론은 정윤회, 박지만으로 대표되는 권력투쟁 가능성을 끊임없이 제기해왔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소설같은 얘기’ ‘악의적 음해’ 등으로 치부해버렸다.
왜 그랬을까. 권력 투쟁의 한 축인 문고리 3인방이 박 대통령으로 통하는 언로를 모두 막아버렸는데 과연 그게 가능할까라고 질문해본다면 궁금증이 해소된다. 결국 밖에서는 모두 심각하게 생각하는 문제를 본인만 모르고 있다 결국 레임덕이 시작된 것이다.
정 씨는 최근 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께 누가 되지 않기 위해 '토사구팽'의 사냥개가 돼 스스로 숨어 지냈지만, 이제는 진돗개가 돼야겠다"면서 법적 조치는 물론 추가적인 폭로전을 예고했다. 이 때문에 조 전 비서관 역시 정 씨가 관련 공세를 이어갈 경우, 반격 차원에서 추가적인 인터뷰 등 해명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국정관계 심지어 재계에서는 박근혜는 낯의 대통령, 정윤회는 밤의 대통령, 그리고 박지만은 새벽 대통령이라고 칭할 정도로 세 사람이 제각기 권력을 둘러싼 피비린내 나는 암투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선데이 저널 USA 리차드 윤 기자 http://www.sundayjournalusa.com/ <저작권자 ⓒ 서울의 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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