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서울의소리 백은종 편집인은 서울중앙지법에서 502호 재판정(재판장 이범균)에서 마지막 피고인 진술을 하였다.
이날 담당 검사는 백 편집인에게 집시법, 명예훼손, 도로교통방해로 징역 4년, 공직선거법위반 징역 2년에 재산몰수, 총 징역 6년형과 재산몰수를 구형하였고 오는 12월24일 오전 11시 최종선고를 하기로 하였다. (사건번호 중앙지법 2011고합183 등 7건 병합사건)
백 편집인은 2008년 이명박의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만들어진 '안티 이명박'의 운영자이기도 하고 한국독립유공자협회 대외협력위원장으로서 생존 항일운동가들의 목소리를 전하였고, 지난 2013년 고 장준하 선생 겨레장 때는 국민상주를 맡는 등 모두가 해야함을 알지만 외면하는 문제들과 투쟁의 선봉에 서있었다.
특히 이명박근혜의 실정(失政)에 언론사 서울의소리를 통해 누구보다 강하게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였고,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고 진실을 보도하기 위해 고군분투 해왔다.
그는 법정에서 자신이 피소된 사안에 대해 신념에찬 목소리로 조목조목 자신의 입장을 진술하며 검찰의 구형에 대해 반박했다.
백 편집인이 법정에서 했던 피고인 최후 진술을 싣는다.
1, 2008년 광우병 집회
2008년 이명박 당선이 확정되는 12월19일 저녁 안티이명박 카페가 누구인가 의해서 만들어 지고, 3일후인 21일부터 이명박 탄핵 촛불집회를 하였습니다.
이는 이명박에 대한 어떠한 개인적 악감정도 아니였고 '과거를 보고 미래를 예측한다'고 하듯이 BBK 동영상에서 드러난 거짓말, 세금탈루, 건축법위반 등등 전과가 14범이나 되는 당선자 이명박의 과거 불법 탈법행위를 보고 선각한 국민들이 이명박 정권의 페헤를 막기위해 나섰던 것입니다.
그 결과 대운하가 사대강이 되었고, 의료 민영화, 철도 민영화, 전기,수도 민영화등을 막아내 국민의 피해를 줄이는 성과도 있었습니다. 만약 2008년도 이명박 정권을 견제하지 않았다면 충청도와 경상도 사이에 굴을 파서 운하를 연결한다는 대운하 사업을 시작하였다면 사대강 피해도 이정도 인데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가고 얼마나 많은 환경파괴가 되었겠습니까.
4대강부실공사, 무너져가는 경제, 어림잡아 100조가된다는 국세낭비 등 오늘날 드러나고 있는 어마어마한 사건들은 안티이명박의 활동이 결코 역사에 부끄럽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래서 그 당시 저희가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섰던 것에 대해 다행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당시 안티이명박 운영자들은 어떠한 대가도 없이 직장도 가족도 저버리고 뛰어든 순수한 국민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희생을 전제로 봉사해서 오로지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안티이명박 운영자를 거친 사람중에 죽거나 병에 걸리고, 재산을 탕진한 사람이 대다수 라는 것도 말씀 드립니다.
제가 5월2일 야간 촛불집회를 시작으로 안티 이명박이 주최한 집회는 5월30일 서울광장 집회가 마지막 이었습니다. 주간 집회는 모두 신고된 합법 집회였고 12시 이전가지 진행된 야간 촛불문화제가 불법집회라 하여 수배되었다가 구속되어 3개월 옥살이를 하였으나 헌재의 위헌 판결로 무죄를 주장 합니다
2, 노무현 대통령 서거(테러수괴 서정갑과의 분쟁)
2009년 노무현 대통령 서거는 저에게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으로 다가 왔습니다. '제 눈의 대들보는 못보고 남의 눈에 티끌만 본다'는 속담같이 이명박이 털고 씌워서 죽음으로 몰아간 그 원망이 하늘을 찌를 것 같았습니다. 그 분함에 국장 7일간 10여시간 자면서 대한문 분향소에서 그 슬픔을 국민들과 함께 나누었습니다.
국장이 끝나는 날 죽으려고 경찰 방패에 달려가서 머리를 박아 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자 안티 이명박 운영자 한판이 이러다가 초심님이 돌아가시겠다고 운영자 회의를 소집하여 대한문에서 49제까지 분향소를 운영하기로 하였던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의 불법체증 등 과잉대응으로 마찰이 있었고 정보과 형사가 문제없다 곧 풀어준다 하면서 저를 1시간 이상 경찰 벽속에 감금 하더니 운영자 한사람을 더 체포하여 연행 한뒤 중부 경찰서에 가두었고 서정갑 일당이 분향소를 침탈하여 부쉈다는 소식을 유치장 TV에서 보면서 분함을 이기지 못하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운영자들의 의견은 두 사람을 연행 후 서정갑 일당의 대한문 침탈 테러는 사전에 계획된 범행 아니겠는냐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검찰은 서정갑의 조직된 특수폭력행위와 총포 화약류 담속법 위반에 대해 1년 동안 수사도 하지 않다가 저희 피해 당사자가 직접 체포해서 경찰에 넘기겠다고 지명수배를 하자 달랑 백만원 약식기소로 재판에 넘겼고 보다못한 정의로운 중앙지법 판사님이 오백만원의 벌금형에 처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 후 이명박 퇴임때 서정갑의 벌금전과에 대해 사면복권을 해주는 것을 보며 그때 대한문 분향소 사건은 개인적이 아닌 누군가의 사주가 있지 않았나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3, 한미 FTA
2010~2011년 저는 한미FTA 반대 운동에 적극적으로 앞장서며 여러번 위법을 저질렀다고 기소 당했습니다. 그 이유는 정부가 국제간 협상을 할때는 먼저 국민을 생각하고, 국익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기 계시는 판사님의 동료들 수백명이 한미 FTA는 노예로 종속되는 계약이라고 반대를 하며 대법원에 건의문을 제출하기도 한 사실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또 한가지 이유는 국제간 협상에서는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대중 시위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한가지 예로 박정희 정권때 국회국방위원장을 하던 박정희의 오른팔 차지철이 월남 파병 반대를 주도하여 박 정권이 월남 파병때 더 많은 실익을 얻도록 공작을 한 사실도 있습니다. (영상: 물대포를 맞으며 한미FTA를 반대하는 시민들과 백 편집인의 모습)
이명박 정권이 한미FTA 협상때 반대 시위를 이용해서 유리한 협상으로 국익을 얻으려 하기는 커녕 미국에 굴복하며 독소조항을 그대로 받아드리는 국익보다 집단이나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대수구 행태는 우리를 더욱 분노하게 한 바가 있습니다.
그 외에도 독도 기다려 달라 발언을 보도한 요미우리 신문에 대해 국민 소송단을 꾸려 제가 대표 소송인으로 고발하여 재판을 하였으나 이명박 정권의 무책임한 태도로 패소한 바도 있습니다.
4, 대학생 반값등록금
2012년 대학생 반값등록금 시위대 부터는 언론안으로 취재를 나갔으나 서울 경찰청은 끊임없이 취재중인 본인의 채증 사진을 증거로 십여차레나 소환장을 보내왔습니다.
올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집회 생중계 및 취재중 사진을 채증하여 3차례나 전화를 통한 소환을 하였으나 언론사 허가증과 기자증을 보내며 해명한 바가 있는데 어떻게 처리를 했는지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이같이 이명박 정권에 이은 박근혜 정권의 저에 대한 위법행위 덮어 씌우기는 대한문 분향소부터 시작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후 안티이명박 카페 횡령혐의, 정치자금법위반, 기부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여 서울경찰청에서 이레적으로 기자회견을 하고 전 언론에 보도되어 활동에 타격을 입히며, 구속영장까지 청구하였으나 기각 되었고, 현재 1심 및 고법에서도 무죄가 선고되었고 검찰의 상고로 대법원에서 일년 넘게 계류되고 있습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 대한문 분향소 테러범 서정갑이 저를 음해하려고, 사기죄와 도로교통방해로 고소한 사건을 수사하던 검찰이 서정갑에 대해서는 무고죄를 포함 모두 혐의없음으로 처리 하더니 그 와중에 원고 박근혜 명예훼손 사건을 수사하였던 백상열 검사가 6년이나 지나 대한문 분향소 설치가 도로법 위반이라며 고발인도 없는데 기소하여 6개월 구형을 하고 또 재판장은 벌금 200만원 판결을 한것은 서정갑 무고죄 면해주기와 저 개인에 대한 보복성 기소와 판결이라고 믿을 수 밖에 없기에 이 자리를 빌어 유감을 표명 합니다.
5, 박근혜, 지만 명예훼손 고소(5촌 살인사건 보도)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저는 주로 서울의소리 편집과 생존 애국지사 모임 독립유공자협회 지사님을 도와드리고 있었습니다.
이 당시 애국지사님들은 "나라가 외침을 당한후 애국과 매국을 가려 후한 상과 엄한 벌을 내리는 첫 번째 이유는 다음 또 외침이 있을 때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키라는 것인데 충일군인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어 떵떵거린다면 외침때 누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겠느냐"시며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 독립정신이 무너진다"고 걱정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연세 90이 넘은 생존 애국지사님들을 모시고 야당후보 유세현장을 찾기도 하였습니다.
언론의 사명은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하는데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더구나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의 검증은 잔혹하리 만큼 파헤쳐서 국민들이 바로 알고 투표를 하게 해야된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기사를 찾아 검증 보도를 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어려운 재정 형편상 유급기자 한명이 없는 서울의소리를 운영하다 보니 직접 취재가 어렵고 대부분이 외신을 포함 다른 언론의 기사를 인용하여 보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창간 30년이 넘고 박정희,전두환,이명박 정권의 치부를 낱낱이 까발린 미국 선데이 저널 연훈 발행인을 알게 되었고, 이명박 BBK 특종 보도가 모두 사실로 드어나는 등의 정황이 있어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매주 발행되는 기사를 전문 인용보도를 하며 주소를 링크 하였습니다.
특히 선데이 저널 리차드 윤, 김현철 기자의 보도가 검증이 매섭고 철저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100% 전문을 실었습니다. 원고 박근혜, 박지만 고소건 모두가 선데이 저널 원문 보도를 문제 삼은 것입니다. 특히 원고 박근혜 고소건 김종필 발언 보도는 인용 보도 후 연훈 발행인이 편집회의 때 실수가 있어 기사를 내려달라는 연락이 와서 한나절만에 삭제한 기사입니다.
많은 제보도 있습니다. 대선을 앞두고 원고 박근혜에 대한 제보가 많았습니다. 한 두가지 말씀 드리면 산삼협회 회장이라는 사람이 수억원치 산삼을 측근 모씨를 통해 원고 박근혜에게 상납했다고 제보해 오기도 하였으며 허위사실 유포로 구속되었던 조웅 목사는 박근혜 김정일 관계 운운하며 반년동안 수차례 사무실을 방문하였고 기사화를 부탁하였으나 제가 검증하기는 무리한 사안이기에 한번도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만 검증 능력이 있다고 믿어지는 믿을 만한 다른 언론의 보도를 인용한 것입니다. 제가 원고 박근혜,박지만 남매에 대해 대선 검증이 아닌 감정적 보도를 했다면 이러한 제보도 기사화 했을 것입니다.
앞서 말씀 드렸듯이 언론의 사명은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하는 것입니다. 과거 박정희 전두환 시절의 유죄가 무죄로 바뀌는 판결이 수없이 나오고 경악 할만한 루머가 사실로 드러나는 경우가 허다 합니다.
더구나 대선을 4개월 앞둔 2012년 8월 한나절 올렸다 내린 외신 기사에 대해 정정보도 요청도 없이 갑작스레 구속영장까지 신청한 검찰의 태도는 당시 박근혜 후보의 언론 검증을 방해하려는 처사로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박근혜 정권은 얼마전 남북간 포탄이 오가는 위기 상황까지 불러왔고, 이로인해 국민들이 전쟁의 두려움으로 대다수가 적극 반대하는 탈북자 박상학 등의 대북 풍선 날리기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하기 때문에 막을 수 없다고 방치하면서도 원고 박근혜가 언론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명예훼손 고소를 취하하지 않는 것은 사안마다 다른 이중적 행태가 아닌가 생각 합니다.
양친이 광복군 출신 독립운동가 이시고 전 국회 외교통상위 위원장이었던, 단재 신채호 기념사업회 김원웅 회장께서 "역사를 두려워하지 않는 판결은 불의다"는 이런 말씀을 하셔서 감명깊게 들었습니다.
법은 상식을 기반으로 만들어지고, 상식은 역사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힘없는 범부일 뿐입니다. 그저 역사의 판단에 몸을 맡길 뿐입니다.
지금까지 말씀 경청에 감사 드립니다. <저작권자 ⓒ 서울의 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백은종 관련기사목록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