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통신 기업 SK브로드밴드 남대구센터에서 일하는 손종현(33) 씨는 아내가 출산했다는 소식을 듣고, 출산휴가를 요청했다. 대기업 SK의 정규직 직원은 아니었기에, 장기간 출산휴가는 기대하지 않았다. 동료들의 축하 속에 며칠간 휴가 정도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 기대는 금방 무너졌다.
아빠가 된 기쁨도 잠시...회사는 출산휴가 대체인력 비용 책임 요구
회사는 축하는커녕 출산휴가를 요청한 손 씨와 동료들에게 ‘너희는 센터 직영이 아니므로 한 명 빠지게 되면 대체인력에 대한 임금을 너희가 해결하라’고 말했다. 얼마 전 SK본사에서 3일간 교육집합 때와 같았다. 본사에서 하는 교육을 받으러 가는데도 대체인력에 대한 임금을 책임지라고 했었다. 그래서 교육을 안 가고 말았지만, 출산휴가에도 똑같이 적용할 줄은 몰랐다. 그래서 동료 3명은 대체인력에 돈을 쓰는 대신 4명이 하던 일을 하기로 했다. 그러던 와중에 1명이 업무과중으로 병원에 실려갔다. 회사에 이야기하니, 얼른 출산휴가자를 복귀시키라는 말뿐이었다. 인간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들은 노조에 문을 두드린다.
인간답게 일하고 싶어 노조(희망연대노조 SK브로브밴드비정규직지부 남대구지회)에 가입한 정동철(32) 지회장, 김규동(37) 부지회장, 손종현 사무차장은 지난 8월 1일부터 장애(A/S)업무에서 신규 개통 업무로 바뀌었다.
“노조에 가입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4대보험이 해지됐다. 그러다가 센터가 폐업하면서 다른 센터로 넘어갔다. 이전 센터장은 ‘너희가 노조를 만들어서 경영이 어려워졌다. 알아서 하라’며 사라졌다. 새로 들어온 센터장에게 장애업무를 계속 하고 싶다고 했지만, 묵살됐다. 그러면서 노조를 탈퇴하면 급여를 맞춰주고, 1:1외주식으로 일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이들은 특별한 교육도 없이 개통 업무를 시작했다. 달라진 점은 무엇이 있을까. 당장 월급이 얼마인지 예측할 수 없게 됐다. 장애 업무는 고정급여가 있었지만, 개통 업무는 기본급 0원에서 시작해 한 건 당 수수료를 받는 식이다. 개통 신청이 얼마나 들어오는지 예측이 안 된다. 개통업무를 시작한 이후 하루 한 건도 일이 없는 날도 있다고 한다.
월급이 대략 얼마인지, 월급을 주는 업체가 어디인지 묻기 시작할 때 이들은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작업복에 새겨진 SK브로드밴드에 숨은 5단계 하청
노조원들은 ‘UbiNS’와 SK브로드밴드 사이에 한 업체가 더 있는 걸로 알고 있다고 했지만, 정확히 알지 못했다. 이렇게 다단계 하청구조를 거치고 나면 또 한 단계를 더 거친다. 센터는 A/S 또는 개통 업무를 하는 노동자들은 노동자가 아닌 ‘개인 사업자’라고 말한다. 개통 건 당 수수료를 받는. 그래서 기본급도 없다.
복잡하다. 다시 한 번 정리하면 SK브로드밴드-UbiNS-센터운영업체(중앙ENC)-윤넷-노동자다. 그런데 센터운영업체도 수수료를 알 수 없다고 말한다. 노동자들 임금은 대체 어떻게 책정되는 것일까.
손종현 사무차장은 “오랜 기간 개통 기사 일을 해온 분들에게 물어봐도 건당 수수료는 모른다더라. 처음에는 항의도 해보고, 책정해달라고 요구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러려니 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올해 4월 노조가 결성되고 불법파견 문제가 불거지자 회사(협력업체)는 이들의 4대보험을 넣어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지 않아 4대보험은 모두 해지됐다. 노조 가입 사실을 알게 되면서였다. 4대보험 해지 사유는 ‘개인 사유로 인한 퇴사’였다.
정동철 지회장은 “협력업체 쪽으로 4대보험을 넣어서 불법파견 문제를 무마시키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노조 가입 사실이 알려지자 다 빼버렸다. 알아서 나가게 하겠다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월급이 얼마인지도, 월급 책정 기준도 모른 채 불안정한 이들의 바람은 고정급여가 있는 익숙한 업무를 그대로 하는 것, 한가지였다. 그렇지만 지금은 바람이 하나 더 추가됐다. 인간다운 대우를 받고 일하는 노동자가 되는 것.
차량,공구,기름값, 식대까지 모조리 A/S기사 몫 저녁 먹다가 연락받고 뛰쳐나가기도...
센터에 지회 조합원은 4명뿐이었지만, 이들은 센터의 일방적인 폐업과 업무 이전에 항의하기 시작했다. SK대구지사 앞에서 매일 1인 시위를 벌였고, 도심에서 집회도 열었다. 다단계 하청 구조를 만든 SK가 책임져야 한다는 요구였다. 그러면서 그동안 얼마나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고 일했는지 알게 됐다.
정동철 지회장의 일화다.
김규동 부지회장이 들려준 이야기는 더 서글프다. “주택은 전신주 따라 회선이 설치돼 있다. 한전 전신주가 안 들어가는 곳도 있는데 어떻게든 선을 당겨서 가야 한다. 사다리, 안전화, 안전모 다 우리 돈으로 사야 한다. 지급이 안 되니까...안전모를 안 쓰고 작업을 하다 떨어졌다. 그런데 안전화, 안전모 착용을 안 하면 산재가 안 된다더라. 그래서 떨어지고 나서 기어서 차에 가 안전모를 쓰고 119를 불렀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업체에서 교육하지만, 산업 안전 교육은 없다. 영업과 실적만 강조하지, 안전에 대해서는 어떤 이야기도 없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안전장비를 미착용했다고 해서 산재 승인이 불가능하지 않다. 다만, 산재 승인 이후 노동자 과실에 대한 부분을 따라 적용한다. 그렇지만 안전장비를 미지급하거나, 산업안전교육을 하지 않는 회사는 처벌받는다. 물론, 교육 미실시 과태료는 500만원 미만에 불과하다. 현행법은 원청사에 대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 부족한 부분이 많다. 그럼에도 이마저도 지켜지지 않는 모습은 통신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열악한 처우를 확인할 수 있는 단적인 사례다.
회사가 안전보다 강조한 실적, 당일 접수된 장애 업무를 수행한 CSI점수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기도 한다. 2시간 안에 처리를 다 해야 한다. 남구가입자가 1만 7천명인데, 장애기사는 고작 4명뿐이었다. 저녁 8시 이후 들어오는 장애접수는 다음날 오전 9시로 넘어간다. 당초 오전 9시에 배정된 장애접수와 중복되더라도 모두 처리해야 한다. 처리하지 못하면 CSI점수가 깎인다.
“점수가 깎이면 월급이 차감되는 것 때문에 기사들은 고객집에 방문하면 개인 연락처를 먼저 준다. 재장애 접수를 106번 콜센터로 하지 말고, 직접 연락을 달라고 한다. 그래야 점수가 깎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새벽에 전화가 오기도 한다. 그러면 달래고 나서 오전 일찍 방문해 처리한다”
고가의 장비를 제외한 나머지 공구, 안전장비들은 직접 구입한다. 회사에서 지급되는 소모성 재료는 광랜선 뿐이다. 개인 차량으로 움직이고, 기름값, 통신비 지원도 없다. 심지어 휴대전화 회선이 SK텔레콤이 아니면 업무접수프로그램이 설치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들은 SK노동자가 아니다. 유령 같은 존재. 이들의 이달 월급이 얼마로 책정될까. 노동청에 부당노동행임금, 신분 모두 불안한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오늘도 지사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저작권자 ⓒ 서울의 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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