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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구파 백정기의사 순국 제80주기 추모기념식 열려

6월 5일은 백의사가 일본 나가사키 형무소에서 순국한 날

서울의소리 | 기사입력 2014/06/06 [14:27]

5일, 구파 백정기의사 순국 제80주기 추모기념식 열려

6월 5일은 백의사가 일본 나가사키 형무소에서 순국한 날

서울의소리 | 입력 : 2014/06/06 [14:27]
6월 5일은 구파 백정기 의사가 일본 나가사키 형무소에서 순국한 날로 올해는 80주기가 되는 해이다.  정읍 출신 항일 애국투사 백정기 의사 추모기념식이 백정기 의사 기념관에서 열렸다.
 
 백정기 의사
백정기 의사는 1896년 1월 19일 전북 부안군 동진면에서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19세 때 큰 뜻을 품고 서울로 올라왔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독립선언문과 전단을 가지고 고향에 내려가 항일운동을 이끌었다. 그 후 동지들과 경인간의 일본 군사시설 파괴를 공작하다가 경찰에 체포되었으나 본적지와 행적을 속여 나올 수 있었다.

그 후 각지를 몰래 다니며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하여 중국 베이징으로 망명, 일본 군사시설 파괴에 전력하였으며, 1924년 일본왕을 암살하려고 도쿄에 갔으나 실패하였다.

1932년 상하이에서 자유혁명자연맹을 조직하여 흑색공포단(BTP)으로 개칭하고, 조직을 강화하여 대일투쟁을 전개하였다.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 공원 폭탄투척 사건 당시에 구파 의사도 동일한 시도를 준비했었으나 입장권을 구하지 못해 실패하였다.

1933년 3월 상하이 훙커우에서 정현섭, 원심창, 이강훈 등과 중국 주재 일본 공사 아리요시 아키라를 암살하려고 모의하다가 육삼정에서 체포되었다. 이후 나가사키로 이송되어 나가사키 법원에서 백정기 의사와 원심창은 무기징역을, 이강훈은 징역 15년 형을 언도받았다. 백정기 의사는 이시하야 감옥에서 복역하던 중 옥사하였다.

1946년 박열, 이강훈 등 독립 운동가들이 3의사 유골 수습을 촉구하여 '3의사국민장봉장위원회'를 발족하고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세 의사의 유골을 일본으로부터 회수하여 7월 6일 국민장을 실시하였고, 현재 효창원 3의사 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일간전북에 따르면 구파백정기의사 기념사업회가 주관한 이번 추모 기념식에는 김생기시장, 유성엽 국회의원, 김승범 정읍시의회 의장, 전홍범 광주지방보훈청장, 박행병 익산보훈지청장, 기념사업회 회원, 수원백씨 종친회 등 일반인 250여명과 정읍지역 초.중.고등학생 250여명 등 총 50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행사는 1부 백의사 독립운동약사 낭독 등이 이어진 추모기념식을 시작으로 2부 다양한 장르의 노래와 한풀이 춤을 선보인 문화공연으로 이어졌고, 3부 행사로 제2회 전국 추모 글짓기대회 공모전 시상식 및 정읍시 초․중․고생 글짓기․사생대회도 함께 열렸다.
 
이날 김생기시장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백정기의사의 숭고한 정신을 이어받아 '시민이 행복한, 자랑스러운 정읍'을 건설하는데 힘을 모아 그 분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 하자.”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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