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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경이 세월호 선내 진입했으면 다 살릴 수 있었다”

학생 카톡 보낸 10시17분까지 선내 이동 가능했던 시간 놓쳐

서울의소리 | 기사입력 2014/05/12 [17:17]

“해경이 세월호 선내 진입했으면 다 살릴 수 있었다”

학생 카톡 보낸 10시17분까지 선내 이동 가능했던 시간 놓쳐

서울의소리 | 입력 : 2014/05/12 [17:17]
세월호 침몰 때 해경이 세월호 선내에서 애타게 구조를 요청하던 승객들을 구조 할 시간이 있었는데도 선내로 진입해 구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인 되었다.

검찰은 '해경이 세월호 침몰 직전 47분 동안이나 선체에 진입해 승객을 구조할 수 있었다는 판단이 나왔다'고 경향신문이 단독 보도했다.

‘해경, 구조 소홀’ 영상 다수 확보

검찰은 또 해경이 배 위에서 깨진 창문으로 세월호 안을 쳐다만 보고 구조활동에 나서지 않는 등 적극적인 구조활동을 외면했던 동영상도 다수 확보했다. 
▲     © 유투브  켑쳐

세월호 침몰사고 검경 합동수사본부(합수부) 관계자는 11일 “해경이 처음 도착한 지난달 16일 오전 9시30분 당시 세월호는 45도가량 기울어져 있었을 뿐”이라며 “해경이 (이때 세월호에) 진입해 구조했으면 (세월호 승객) 전원이 생존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합수부는 전원 구조가 가능한 근거로 대검 디지털포렌식센터(DFC)가 실시한 세월호 침몰 직전 경사도 분석 결과를 제시했다. 분석 결과 오전 9시30분 해경 헬기 B511호가 접근했을 당시 세월호 기울기는 45도였다. 5분 뒤에는 해경 경비정인 123정이 도착했다.

해경은 헬기와 함정을 이용해 가장 먼저 세월호에 접근했지만 이준석 선장 등 선원과 일부 승객만 구조하는 데 그쳤다. 해경은 직접 세월호에 승선해 아직 침몰하지 않은 조타실 등에서 마이크로 승객들에게 탈출을 안내하는 방송을 할 수 있었으나 하지 않았다.

해경은 먼저 구조한 선원들을 통해 탈출 안내방송을 하도록 요구하지도 않았다. 합수부는 해경이 탈출 안내방송을 하기 힘들더라도 선체 안으로 진입해 승객들에게 직접 탈출을 안내하고 구조를 도울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충분히 있었다고 판단했다.
▲   © 경향신문

오전 9시45분. 합수부의 분석을 보면 세월호는 62도가량 옆으로 뉘어진 상황이었다. 합수부 관계자는 “이 정도 기울기라면 (선박에 고정된) 뭐라도 잡고 이동할 수 있는데도 해경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학생 카톡 보낸 10시17분까지 선내 이동 가능했던 시간 놓쳐

해경이 선내 진입을 포기한 채 선원들만 구조하는 사이 세월호 안에 있던 승객들은 전화와 카카오톡 등으로 애타게 구조를 요청했다. 합수부는 세월호에 탔던 단원고 학생이 마지막으로 문자를 보낸 오전 10시17분까지도 해경이 구조활동을 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합수부 분석 결과 마지막 문자가 보내질 당시 세월호는 108.1도 기울어진 상황이었다. 합수부 관계자는 “이 학생은 물이 바로 아래까지 차오른 4층 어디선가 벽에 기대어 이 문자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면서 “10시17분까지 학생이 카톡을 보낼 수 있었던 만큼 당시에 해경 역시 구조가 가능했음에도 구조 조치가 미흡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할 때 배 안에는 무려 302명의 탑승객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구조된 사람은 172명이었고 이 숫자는 26일 동안 변함이 없다. 2명은 사고 직후 숨진 채 발견됐다. 세월호 전체 탑승객(476명)의 63%가 구조를 위해 현장에 출동한 해경이 지켜보는 가운데 배와 함께 바닷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당시 배 안에 있던 탑승객들은 무려 47분 동안 해경의 구조 상황만 지켜봤다. 86% 정도가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지만 선내로 진입해 승객들에게 “바다로 뛰어내리라”고 지시한 해경은 없었다. 검찰이 해경이 ‘부실구조’를 했다고 결론 내린 이유다.

지난달 16일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한다는 신고를 받고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것은 서해지방해양경찰청 소속 헬기 B511호였다. 구조 전문요원인 ‘항공구조사’ 1명도 동승했다. 오전 9시30분 현장에 도착한 헬기는 세월호 오른쪽에서 구조 활동을 시작했다. 검찰 분석에 따르면 세월호는 이때 왼쪽으로 45도 정도 기울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큰 무리 없이 이동이 가능했던 탑승객들은 선체 난간 등을 타고 올라와 헬기에서 내려준 구조 바구니를 탔다. 구조사는 승객들이 바구니에 탈 수 있도록 돕는 데에만 치중했다. 해경의 상황일지에는 B511 헬기가 오전 9시45분에 승선원 6명을 구조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15분 동안 겨우 6명의 목숨을 구한 더딘 구조였다. 세월호가 침몰하기까지 3대의 헬기가 현장에서 구조 활동을 폈지만 구조한 탑승객은 24명인 것으로 상황일지에 나와 있다.

헬기 다음으로 현장에 도착한 목포해경 소속 경비정 123정의 대처도 미흡했다. 해경 14명이 타고 있던 123정은 오전 9시35분쯤 세월호에 도착했다. 당시 경비정이 찍은 동영상에는 갑판에 나와 있는 승객이 1명도 없었다.

하지만 객실이 시작되는 왼쪽 3층 난간은 아직 물에 잠기지 않았고 기관부 선원들이 해경이 도착한 것을 보고 나와 있었다. 오전 9시42분까지 고무보트는 이곳에서 10명을 태웠다. 배가 더 기울기는 했지만 사람의 이동도 가능했다. 사고 해역에 구명뗏목이 펴져 있지 않자 123정 이모 경사는 오전 9시44분 선미 3층 난간을 통해 세월호에 올랐다. 그는 4층 갑판까지 올라간 뒤 난간을 넘어 선수 쪽에 있는 구명뗏목 2개를 발로 차 떨어뜨렸다. 이 시간만 3분 정도 됐다.

승객들이 탈출 안내를 받았다면 주변에 있는 것들을 잡고 이동이 가능했다는 것을 해경 스스로 증명한 셈이다. 일부 승객들은 4층 난간으로 나와 바다로 뛰어내리기도 했다. 검찰도 분석을 통해 오전 9시45분 세월호가 62도 기울었지만 사람 이동은 가능했을 것으로 판단했다.

오전 9시46분쯤 선수에 있는 조타실 쪽으로 가 선원 10명을 태운 123정은 오전 10시6분 조타실 밑 선실에 승객들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도끼와 망치로 유리창을 깼다. 하지만 해경은 승객 7명의 탈출을 도왔을 뿐 이곳을 통해 선내로 들어가지 않았다. 해경 최정예 구조요원인 항공구조사들도 잠수복을 입고 있었지만 배가 완전히 가라앉을 때까지 선체에 진입하지 않았다. 오전 10시8분쯤부터 현장에서 구조작업을 벌인 전남도 어업지도선 단정이 찍은 동영상에는 이들이 오전 10시22분까지 배 밖에서 승객들을 돕는 장면만 나온다.

검찰 관계자는 “47분 동안 해경이 승객 구조에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배 위에서 깨진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만 보는 등 구조가 미흡했다는 사실을 보여줄 영상도 다수 분석하고 있다”며 사실상 해경을 상대로 한 수사 준비를 마쳤다는 점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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