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어느 책에서 Toynbee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는 걸 읽었는데, 요즈음의 우리 상황과 대비되어 너무나 심금을 울린다는 느낌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정확한 출처를 밝히지 않고 있어 나 역시 그의 말을 전하기만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어떤 문명사회가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더 이상 그 사회의 일부라고 느끼지 않을 때 바로 위기가 온다는 말입니다.
(어떤 의견을 갖고 있어도 사회가 그냥 무시해 버려 "난 이 사회에서 아무 것도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 때 그는 사회의 일부가 아니라고 느끼게 될 테지요.)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아무런 영향력도 없도 아무런 역할도 없다는 무력감에 빠진다는 것이 Toynbee의 지적입니다. 그 결과 사회에는 대규모의 소외와 심각한 분열이 발생해 그 문명은 위기를 맞게 된다는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나 자신 이런 무력감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저들은 언론과 경찰, 검찰, 정보조직을 모두 장악해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 입에 철저하게 재갈을 물리고 있습니다.
자기 눈에 들지 않는 사람은 철저하게 망신을 주고, 자기들에게 유리한 행동을 한 사람은 아무리 나쁜 짓을 했어도 철저하게 감싸줍니다. 우리가 그게 아니라고 아무리 목이 터져라 외쳐도 공허한 메아리만이 들릴 뿐입니다.
4대강과 관련해서도 그랬지만, 우리가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사회는 우리를 철저히 외면했습니다. 탐욕에 눈이 어두워진 사악한 무리들이 날뛰면서 진실은 파묻혀 버리고 지록위마(指鹿爲馬)의 허위만이 온 사회를 휩쓸었습니다.
국정원 댓글사건의 중대 범죄행위조차 이제는 거의 땅에 파묻혀 버리려고 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증거 조작 사건도 중국정부의 진실 규명이 없었던들 그냥 파묻혀 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댓글사건처럼 증거를 은폐하고 조작하는 방식으로 피해 갈 수 없음이 분명해지니까 뒤늦게 진실을 철저히 규명하겠다고 난리를 치고 있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요즈음 나는 두 개의 한국이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까지 갖습니다.
똑같은 사안인데도 저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어찌 그렇게 판이하게 다를 수 있는지 혀를 내두를 때가 많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정의(正義)와 저들이 생각하는 정의. 사이의 간극이 그렇게 클 수가 없습니다. 저들이 사는 한국과 내가 사는 한국이 다르지 않다면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이런 좌절감과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 나 혼자뿐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과연 이것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큰 위기요인으로 작용하게 될지는 앞으로 두고 보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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