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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드레퓌스사건, 유서대필 강기훈 23년만에 무죄

민변, '진실을 영원히 감옥에 가두어 둘 수 없다’는 진리를 재확인해준 것

서울의소리 | 기사입력 2014/02/13 [16:48]

한국판 드레퓌스사건, 유서대필 강기훈 23년만에 무죄

민변, '진실을 영원히 감옥에 가두어 둘 수 없다’는 진리를 재확인해준 것

서울의소리 | 입력 : 2014/02/13 [16:48]
서울고법 제10형사부(재판장 권기훈 부장판사)는 13일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이라고 불리는 이른바 ‘유서대필 사건’ 강기훈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김기설씨의 분신사망 후 강기훈씨가 유서를 대필해 자살을 도왔다는 혐의를 받은 지 23년만이다. 또 2009년 서울고등법원 재심개시결정 이후부터 다시 5년 가까이 지나 무죄 판결이 났다.
 
23년을 끌어온 유서대필사건은 1991년 4월26일 명지대생 강경대씨의 죽음에서 비롯됐다. 강씨가 시위 중 경찰들로부터 집단구타를 당해 사망하자 전국적으로 정권을 규탄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그해 5월8일 오전 6시쯤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씨도 “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서강대 옥상에서 분신했다.

검찰은 “전민련 총무부장이던 강기훈씨가 김씨의 유서를 대신 썼다”며 강씨를 구속기소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유서의 필체와 강씨의 필체가 일치한다”는 감정결과를 내놨다. 강씨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지만 법원은 1992년 7월 강씨에게 유서대필과 자살방조 혐의로 징역 3년과 자격정지 1년6월을 선고했다. 강씨는 1994년 8월 만기 출소했다.

강씨가 재심의 실마리를 찾은 것은 그로부터 13년이 지나서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김씨의 필적이 담긴 ‘전대협 노트’와 ‘낙서장’ 등을 입수해 유서 필적과의 감정을 실시했다. 진실·화해위는 국과수 등의 감정결과를 바탕으로 2007년 11월 “강씨가 김씨의 유서를 대신 쓰지 않았다”며 재심권고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1991년 당시 국과수 감정 결과는 신빙성이 없고 검찰의 다른 증거만으로 강씨가 김씨의 유서를 대신 작성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공소사실은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다만 강씨의 국보법 위반 혐의 부분이 재심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징역 1년에 자격정지 1년의 형을 별도로 선고했다. 강씨는 이미 3년 동안 복역해 재수감되지 않는다. 징역 1년을 초과한 구금일수에 대해 형사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
 
검찰은 절차상 대법원에 상고해 강씨의 유죄를 더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법원은 과거사 재심 사건에서 일단 무죄를 선고한 후 이를 뒤집은 일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환영 논평을 내며 “‘강기훈은 유서를 쓰지 않았다’는 당연한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고 밝혔다.

민변은 “이 사건은 국가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무고한 개인을 범죄자로 만들어 진실을 왜곡한 대표적인 사례로 기억될 것”이라며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영원히 감옥에 가두어 둘 수 없다’는 단순한 진리를 재확인해준 사례”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민변은 “강기훈씨는 지난 최후진술에서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용기’라고 말했다”며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고 진실을 되찾는 과정에서 ‘잘못을 겸허하게 인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시작이라는 점에서, 재판 과정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검찰의 태도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검찰과 국과수를 지적햇다.

민변은 “국과수는 1991년 당시 적극적으로 강기훈씨 필적이 유서 필적과 동일하다는 감정결과를 내놓음으로써 강기훈씨를 유서대필자로 낙인찍는데 큰 역할을 했다”며 “그러나 91년 감정결과는 감정절차와 원칙에 반하는 잘못된 것임이 드러났고, 국과수는 2007년과 2013년 두 번의 필적감정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감정원칙에 충실한 감정결과를 내놓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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