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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사건과 한국 기독교"

[‘기독교 사상’ 2013년 9월호, 188~193 쪽]

서울의소리 | 기사입력 2013/09/15 [02:21]

"국정원 사건과 한국 기독교"

[‘기독교 사상’ 2013년 9월호, 188~193 쪽]

서울의소리 | 입력 : 2013/09/15 [02:21]
[권력과 예수]

고대 이집트와 로마의 전제왕정이 지배하던 시대, 권력은 세상을 주물렀고 개인과 가정을 마음대로 유린했다. 혹여 왕권에 도전하는 자가 있을까 두려웠던 권력은 사람을 풀어 경쟁세력을 감시하고 민심동향을 파악하는 한편, 소문과 괴담을 만들어 유포함으로써 반발과 반대세력을 무력화했다.
 
자신들의 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잡신과 우상을 내세우던 권력은 지나친 향락과 사치, 비리와 부패 그리고 수탈 행각에 문제를 제기하고 비판하는 자에게는 ‘신의 뜻’이라며 참혹한 벌을 내렸다. 당시 전제왕권에 가장 두려운 존재가 기독교였다. 전가의 보도와 같은 통치도구인 ‘공포’에 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만 믿는다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던 기독교도들의 증가는 이들에겐 두려움 그 자체였다.
 
로마제국의 식민 지배하에 있던 유대의 제사장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에게는 민중들로부터 ‘하나님의 아들’이자 ‘진정한 왕’으로 추앙받는 예수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걸인과 노동자, 몸파는 여성과 도둑을 보듬고 이들의 회개에 하나님의 용서로 답하고 자신의 피와 살로 굶주린 자들을 먹이는 예수의 행적은 실로 ‘혁명’이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 세속적 권세를 추구하는 그들에게 던지는 예수의 경고는 바늘방석처럼 따가웠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양심과 민중의 자각을 이끌어 내는 예수의 존재가 ‘눈엣 가시’같아 더이상 견딜 수 없어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예수를 죽여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예수가 로마 황제 가이사(시저, Caesar)에 반기를 든 ‘반역자’이며, 백성들로 하여금 가이사에게 바치는 세금을 내지 말라고 ‘선동’하고, 스스로를 ‘왕’이라 칭하는 ‘반란 수괴’라고 고발한 것이다.
 
결국 식민지 유대인 제사장들의 고발이 비합리적이고 탐탁치 않았지만, 로마 총독 빌라도는 이들 유대 제사장들의 선동에 동원된 우매한 민중들이 예수의 처단을 소리높여 외치고 로마 황제에 맞선 혐의로 고발된 예수를 옹호할 경우 황제의 눈밖에 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예수를 유대인들에게 넘기며 ‘마음대로 하라’고 처분을 맡긴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의 가시면류관에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목이 적혀 있었다.

[종북 덧씌우기와 매카시즘]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국정원 불법 정치개입, 대선개입 의혹 사건’은 여러가지 의미에서 고대 전제왕권과 유대 제사장들의 횡포와 닮아 있다. 우선, 권력과 돈의 힘으로 권력에 비판적인 사람들을 ‘반역자(종북, 좌빨)’로 매도하며 우매한 군중을 선동하는 측면에서 그렇다. 경찰과 검찰의 수사결과에 따르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재임한 4년간 국정원의 ‘심리전단’은 70여 명의 정예 요원들과 그들이 고용 혹은 동원한 ‘민간인 협력자’들을 통해 인터넷 공간에서 소위 ‘댓글 공작’을 벌였다.
 
그 ‘댓글 공작’의 출발은 4대강, 한미FTA 등 이명박 정권의 주요 정책 홍보와 이명박 대통령 개인에 대한 찬양이었다. 하지만, 광우병 반대 촛불집회 이후 정부와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들과 단체들을 ‘내부의 적’으로 규정하고 이들을 북한의 지령에 따르고 북한 정권을 추종하는 ‘종북’세력이라고 칭하며 공격하기 시작한다.
 
특히,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원장님 말씀 및 지시사항’이라는 내부 자료를 통해 이들 ‘내부의 적’들이 국회에도 진출해 있다고 주장하며 이들을 ‘제도권에서 몰아내고, 제도권에 진입하지 못하게 해야’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대학생 등 젊은이들이 비판적인 태도를 갖기 쉽다는 사실에 기반해 이들을 ‘친정부’ 세력으로 만드는 ‘우군화’ 전략을 시행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국정원 정예요원들과 그들의 민간인 협력자들이 교묘하게 고안해 인터넷에 퍼트린 ‘심리전’ 전략과 전술의 내용은 보수적인 논객과 보수적인 사이트 회원들을 통해 복사, 전파, 재전송되며 기하급수적으로 퍼져나가 인터넷 공간을 물들여 나갔다. ‘정보화 시대’, ‘인터넷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인터넷 여론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이러한 ‘종북 좌빨’ 색깔론은 인터넷 공간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주요 보수 언론과 방송을 통해 보도되면서 실생활 여론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상황은 이미 1950년대 미국에서 발생한 적이 있다. 1950년 보수적인 공화당 상원의원 조시프 매카시가 ‘미국에서 활동하는 공산주의자 250명의 명단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시작된 ‘매카시즘’ 열풍이 4년간 미국 전체를 ‘빨갱이 사냥’ 색깔론으로 물들였던 것이다.
 
결국 그의 주장은 모두 허구임이 드러났고, 같은 공화당 소속 의원들 조차 양심선언을 통해 “자유는 결코 독재의 방법으로 지킬 수 없다”며 매카시즘을 규탄하기에 이르렀다. 미국의 유수한 철학자들과 인문학자들은 “매카시즘이 미국 지성사에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며 한탄했다. 미국의 매카시즘과 한국의 ‘종북 좌빨’ 색깔론 광풍은 예수와 기독교도들이 ‘반역자’, ‘이교도’로 몰려 박해를 받던 상황과 유사하다.

[국정원 사건과 워터게이트 사건]

국정원 사건은 또한, 마치 유대 제사장들이 로마 총독 빌라도의 합리적인 사법절차에 부당한 압력을 넣어 왜곡하고 조작해 결국 아무 죄없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히게 한 것 처럼, 국정원 직원의 대통령 선거 불법 여론조작 혐의에 대한 경찰수사에 권력의 외압이 작용해 왜곡되고 조작된다.
 
검찰의 수사결과 및 국회 국정조사에서 제시된 증거들에 따르면, 경찰이 이미 대선 사흘 전인 지난 해 12월 16일 오전에 국정원 직원 김씨의 컴퓨터와 인터넷에서 불법 정치개입 및 선거개입 댓글과 찬반 클릭 증거들을 다량 확보했으면서도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압력과 지시에 의해, 대통령 후보 양자간 마지막 TV토론이 끝난 지 1시간 후인 그날 밤 11시에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해 “댓글을 발견하지못했다”는 허위  중간수사결과 발표를 했다.
 
김용판 전 청장은 국정원 박원동 전 국장과 전화통화를 하는 등 다른 권력 관계자들과 연락 및 모의한 정황이 포착되기도 했다. 역시 1970년대 미국에서도 유사한 일이 발생한 적이 있다. 재선을 노리던 공화당 소속 닉슨 대통령이 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적발된 민간인 5명과의 관계를 의심받던 ‘워터게이트’ 사건이 그것이다.
 
닉슨과 그의 선거운동본부 및 백악관은 ‘전혀 관련없다’며 강하게 의혹을 부정했고 대통령에 당선되지만, 경찰과 FBI의 수사를 조작하고 왜곡하기 위해 돈을 모으고 압력을 넣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결국 탄핵 위기에 몰리고 대통령 자리에서 사임하게 된다. 2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정상적인 수사와 사법절차만 지켜졌더라면 ‘진실’이 드러나고 ‘정의’가 구현되었을 터 이지만 부당한 권력의 외압이 작용해 조작과 왜곡이 이루어지면서 불의와 허위가 판을 치게 된 것이다. 

[국정원 사건 앞에 선 한국 기독교]

2천년 전에는 예수가 부활하면서 하나님께서 ‘진실이 거짓을 이기고’, ‘정의가 불의를 이긴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셨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교회와 기독교인들은 과연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고 어떤 일을 해야 할까? 모든 것을 ‘주님의 뜻’이라 여기고 가만히 지켜보는 것이 옳은 일일까? 예수는 자신의 몸과 생명을 던져 진리를 전파하고 정의를 지키고 인류에게 ‘사랑의 참 의미’를 가르쳐 주셨다. 거짓과 불의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권력을 휘두르는 악한 자들을 준엄히 꾸짖으셨으며 핍박받는 약자들과 함께 하셨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불의에 맞서 정의를 지켜내라고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악마의 간계에 맞설 수 있도록, 하나님이 주시는 온몸을 덮는 갑옷을 입으십시오. 우리의 싸움은 인간을 적대자로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들과 권세자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을 상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무기로 완전히 무장하십시오. 그래야만 여러분이 악한 날에 이 적대자들을 대항할 수 있으며 모든 일을 끝낸 뒤에 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진리의 허리띠로 허리를 동이고 정의의 가슴막이로 가슴을 가리고 버티어 서십시오. 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전할 차비를 하십시오. 이 모든 것에 더하여 믿음의 방패를 손에 드십시오. 그것으로써 여러분은 악한 자가 쏘는 모든 불화살을 막아 꺼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엡 6:11-17)”

우리 근현대사 속 기독교의 역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절대권력의 악한 지배자 일제에 대항해 싸우는 독립투사들을 보호하고 지원했던 것도 교회였으며 독재에 맞서 싸우는 민주 열사들을 지키고 그들 옆에 함께 서 있었던 것도 교회였다. 그런데, 최근 대한민국 기독교와 교회는 예수가 배척했던 ‘가이사의 것’인 돈과 권력을 지나치게 탐한다는 매서운 비판에 직면해 있다. ‘통치자들과 권세자들과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맞서 싸우기는 커녕 그들과 한통속이 되어 ‘악한 자의 불화살’ 노릇을 하고 있다는 통탄의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진실과 정의의 승리를 바라며]

필자는 교회 밖에서, 한편으로 권력의 총애를 듬뿍 받으며 다른 한편으로 서민과 약자들에게 조롱받고 배척되는 기독교를 바라보며 심한 안타까움을 느낀다. 이번 국정원 사건의 핵심 관계자들 다수도 이명박 전 대통령 및 그 측근들과 ‘교회’를 통해 연결된 사람들이라는 지적에 고통마저 느낀다. 교회가 이들을 감싸고 이들 편에 서 있다는 주장에는 비애마저 치오른다.
 
권력과 강자와 악한 자들 편에 서 있는 교회의 모습은 2천년 전 전제 왕권의 시녀 역할을 하던 무당들과 유대 제사장들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예수와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고 박해했던 이들과 어떤 차이가 있단 말인가? 교회와 목사들은 말한다. 기독교의 적은 ‘빨갱이’라고. 그 무서운 ‘빨갱이’와 싸우고 ‘빨갱이’들을 몰아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고. 그들에게 1954년 미국 공화당 의원들의 자성적인 양심선언을 다시 들려주고 싶다. “자유는 결코 독재의 방법으로 지킬 수 없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과 기독교를 지키는 방법은 전제 군주와 유대 제사장들, 그리고 중세 종교재판이 사용하던 ‘마녀사냥’, ‘색깔론’, ‘여론 조작’이 아니다. 자유와 민주, 진실과 정의, 그리고 사랑의 실천이다.  

2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서민들과 약자들은 고통 속에 분노하고 있다. 통치자와 권세자들은 갖은 술수와 전략을 동원해 불의와 허위를 퍼트리고 있다. 이들의 권력과 돈이 만든 헛소문에 세뇌당한 일부 군중은 악을 쓰며 ‘반역자(종북, 좌빨)들을 처단하라’고 외치고 있다. 세상은 교회가 예수와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따르길 바라고 있다.
 
통치자와 권세자들에 협력한 대가로 주어지는 바벨탑처럼 치솟은 거대 교회 건물과 주변 도로를 가득 메우는 신도들의 차량과 그들이 바치는 십일조가 주는 달콤함의 중독에서 벗어나 예수가 마굿간과 광야와 들판에서 처음 시작할 때 그 정신과 자세로 돌아가 주길 소원하며 기대하고 있다. 2013년 대한민국, 2천년 전 ‘예수 부활’같은 ‘진실과 정의의 승리’라는 ‘기적’이 일어날 수 있을까? 기독교와 교회가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따라준다면 가능할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이것 하나만은 분명하다. 기독교와 교회의 선도와 동참이 없어도, 아니 기독교와 교회가 통치자와 권세자들의 편에 서서 방해를 한다고 해도, 입으로 예수 찬미를 외치지 않는 시민과 서민들 그리고 사회의 약자들은 불편과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진실’을 찾고 이땅에 ‘정의’가 구현될 때 까지 결코 물러서지 않고 싸우고 버틸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마치 ‘착한 사마리아 인들’처럼.  <표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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