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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치100년! 충무공탄신 465주년 - 이순신의 눈으로 보는 오늘

남북합의를 위반한 아키히로 정부를 반민족 정부로 단죄하면서 아키히로 하야촉구와 남북합의이행을 요구할 것이다.

윤복현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0/04/28 [17:50]

국치100년! 충무공탄신 465주년 - 이순신의 눈으로 보는 오늘

남북합의를 위반한 아키히로 정부를 반민족 정부로 단죄하면서 아키히로 하야촉구와 남북합의이행을 요구할 것이다.

윤복현 칼럼니스트 | 입력 : 2010/04/28 [17:50]
▲ 충무공탄신 465주년에 우리는 지금 무엇을 어떻게하고 있는지 우리들의 유전에 있는 이순신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윤복현 칼럼니스트가  이순신의 눈으로보는 오늘은 우리가 바른 역사회복과 실천적 삶의 모습을 ..©자주신보 편집부

오늘 4월 28일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 탄신 465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순신(李舜臣)은 1545년(인종 원년) 음력 3월 8일(양력 4월 28일)에 출생하여 1598년(선조 31년) 음력 11월 19일(양력 12월 16일)에 생을 마감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추정한다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이유는 이순신에 대한 죽음에 의혹이 많기 때문이다.
 
보통 노량해전에서 일본군의 총탄을 맞고 순국(선조와의 충돌을 회피하기위해 자살)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어떤 이들은 노량해전에서 죽음을 가장하고 대마도로 이주하여 일본조정을 움직여 조선포로들을 조선으로 돌려 보내는데 노력하였고 이순신의 후손들이 이순신 사후 일본조정의 실세들이 되었으며, 그 후손들이 남해바다에 와서 이순신장군에게 제사를 지낸다는 내용들 때문이다.

부패하기 쉬운 시신을 80일간 당시 조선수군통제사령부가 있던 고금도(전남 완도)에 이순신장군의 시신을 방치했다는 것도 의혹이고 아산에 장사지냈다는 이순신의 묘가 가묘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때문이다.이 모든 의혹들과 의구심은 바로 임진란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에게 조선의 민심이 집중되자, 권좌에 위협을 느낀 선조가 이순신이 자신을 반드시 죽일 것이라는 심리적 불안감속에서 이순신의 선택과 관련된 사항들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이순신은 조선 중기의 무관이다. 본관은 덕수, 자는 여해(汝諧), 시호는 충무(忠武)이다. 본인 스스로에게 엄격한 생활을 행하고 효심을 가진 선비의 모범으로 평가된다. 장수로서는 임진왜란 때 조선의 3도수군통제사가 되어 부하들을 잘 통솔하는 지도력과 능수능란한 전술로 일본수군과의 해전에서 23전23승이라는 불패신화로 연전연승하여 나라를 구한 민족의 성웅(聖雄)으로 추앙받고 있다. 고려 왕조 때 중랑장(中郞將) 이돈수(李敦守)의 12대손 이며, 조선초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이변(李邊)의 후손이다.

이순신 생가터 표지석 이순신은 1545년 한성 건천동(인현동)에서 이정(李貞)과 초계 변씨(草溪 邊氏)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건천동에서 자랐고, 청소년기는 외가인 아산에서 성장하였다. 할아버지인 이백록(楓巖公)은 1522년(중종 17년)에 생원 2등에 합격을 하고 참봉, 봉사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고 그 뒤 평시서 봉사를 역임하였다. 한편, 정암 조광조(趙光祖)가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사약을 받아 죽고 주위인물들도 참형을 받자 한양에 살던 이백록은 조광조의 묘소가 있는 용인 심곡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고기리에서 모든 것을 버리고 은거를 하다 사망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부친인 이정(李貞)은 벼슬을 단념한 채 43세쯤 외가이자 처가 근처인 충남 아산 음봉으로 이사하였고, 이후에 이순신이 상주 방씨와 혼인하여 외가 근처인 지금의 현충사 자리에 정착했다고 덕수이씨 집안의 구전은 전한다. 한편, KBS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 역적 및 가난한 시절을 보낸 줄거리는 거짓이며 어머니 변씨(卞氏)의 문기(文記, 땅이나 집의 소유권을 증명하는 문서)에는 이순신이 형 요신(堯臣)과 함께 어머니으로부터 외거노비 6 ~ 8명씩을 증여 받았으며, 충남 은진(恩津) 지방의 가옥과 토지도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1588년, (선조 22년)에 아내인 상주 방씨가 4형제에게 준 분재기 기록도 남아있다. 한편, 할아버지 이백록은 사놓은 현충사 경내 고택을 이순신에게 주기도 하였다.
▲ 나대용의 창의성을 인정하여 거북철갑선으로 7년전쟁애서 승리를 거머쥔 충무공 이순신은 사람마다  갖고있는 장점을 인정하고 그장점을 소통케하여 세계해전사에서 볼 수없는 전과를 남김. © 편집부
이순신 장군은 일본제국주의에 개나 말처럼 충성을 다하겠다고 혈서까지 썼던 일본장교 박정희군사독재에 의해서도 권력유지를 위한 이데올로기로 악용되었다.한국인들이면 누구나 추앙하는 이순신장군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순신을 추앙한다는 자들이 스스로 이순신을 모함하는 짓들을 서슴없이 한다면 이순신을 모독하는 일이 된다.

최근 난중일기의 서체를 통한 인간분석에서 이순신의 성격과 기질은 섬세하고 예민하며 강직하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전라좌수사로 임명되었을 때 문란한 수군의 상황을 엄정한 지휘통솔로 단번에 군기강을 바로 잡아 일본의 침략에 대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평소 원칙준수를 기반으로 군율을 위반하면 처벌을 가하고 유능한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한데 있었다.또한 호남민중의 신뢰와 도움도 절대적이었다. 이순신 장군이 "호남이 없으면 국가(조선)도 없다."라고 단적으로 말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할 것이다. 거북선 제작도 나주사람 나대용이 설계하고 제작하였듯이 이순신장군의 참모들은 대부분 호남출신들로 채워져 임진란 승리의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이순신은"나라와 백성을 구하는 길이라면 죽음도 불사하지 않겠다!"라는 소신으로 죽음직전까지 생을 치열하게 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오로지 풍전등화의 조선의 운명이 이순신에게 맡겨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자주성 부재로 자주국방이 부실하여 일본으로 하여금 침략의 명분을 제공한 사대주의 조선조정의 간신배들과 소인배들에게 온갖 음해와 누명을 뒤집어 쓰고,7년간의 전쟁기간에도 잦은 병치레를 이겨내면서 조.일전쟁을 지휘한 이순신이라는 존재는 한없이 안스럽고 존경하고 사랑스러운 우리의 영원한 님이라 할 수 있다.

이순신 장군의 기질은 당시 조선백성들을 한없이 아끼고 사랑한 애민정신에 투철했으며(전쟁기간에도 조선민중의 정보에 크게 의지하여 군작전과 전쟁승리의 토대가 되었다), 옳지 않다면 왕이라도 문제제기를 하고 저항할 줄 아는 다혈질적인 열혈남아였다 본다.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배부를 것이다!이순신의 이러한 의로운 기상은이 불의한 반대파들이나 시기질투로 가득한 소인배들이나 간신배들에게는 가시같은 존재로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느꼈을 것이고.오늘날에도 이순신같은 기질을 가진 의로운 사람들과 애국애족적인 사람들이 사대주의로 찌든 반대파들에게 음해와 누명을 당하고 있는 현실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이순신의 애민의식과 저항의식이 필요한 나라의 현실이기도 하다.

이순신이 오늘날 대한민국에 살아 있다해도 이순신이 죽은 후에 이순신을 자신들의 권력이나 기득권력을 유지하려는 추악한 세력들에 의해서서 음해와 모함을 당하여 핍박을 받을 것이다.이순신은 육체가 사라졌을 뿐 혼은 죽지 않고 지금도 수 많은 이순신으로 살아 있다.그래서 불멸의 이순신이다.

오늘날 이순신이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면 이 나라와 민족을 어떻게 보고 어떠한 행동을 취하실까? 우선 청산되지 않는 친일청산에 적극 앞장설 것이고, 독도영유권을 일본에 넘기고 이순신 장군을 권력유지에 악용해 먹은 일본장교 박정희를 단죄할 것이며, 이순신이 생각하고 있던 국가의 기반인 호남을 빨갱이 지역으로 매도한 우리가남이가 정치세력의 지역분열주의에 맞서 항거할 것이며, 남북합의를 위반한 아키히로 정부를 반민족 정부로 단죄하면서 아키히로 하야촉구와 남북합의이행을 요구할 것이다.

또한 군지휘권도 없는 군대의 처참한 상황을 개탄하면서 미국의 용병으로 악용되고 있는 군대를 자주군대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남북한 군대의 통합을 위해 하나의 민족자주군대로 만들기 위해서 헌신할 것이다. 또한 외세에 기생하는 사대매국세력과 사대매국세력을 이롭게 하는 사이비세력에 맞서 항거할 것이다. 그것이 자주주권을 가진 나라의 국민이라면 당연한 의무와 권리이기 때문이다. 이순신탄생일을 맞아 이순신정신을 현실상황에서 적극적으로 실천할 것을 우리 모두가 영원한 우리의 님에게 다짐해 보는 날이 되었으면 한다.
 

출처:http://kookminnews.com/news/service/article/mess_03.asp?P_Index=716&flag=
원본 기사 보기:hinews.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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