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스트(Lobbyist)는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하기 위해 조금 과장되게 말하는 버릇이 있다. 그래 상대가 자신의 존재감을 높이 여겨 대가를 많이 주기 때문이다. 한동훈이 연일 공개한 ‘김승원 식약처장 로비' 의혹 사건도 로비를 담당한 양 씨가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해 사실과 다른 말을 한 게 녹취록 곳곳에 드러났다.
웃기는 것은 한동훈이 양 씨와 강 씨(제약회사 대표)가 나눈 통화 내용만으로 김승원 의원이 양씨가 받을 돈 액수를 알았다고 단정했다는 점이다. 한동훈은 9일 "김 후보자는 자기가 식약처장에 로비해주면 브로커 양모 씨가 제넨셀 (대표) 강모 씨로부터 전환사채(CB) 투자 방식 등으로 수억 원의 대가를 받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한동훈은 "실제로 양씨는 수억 원을 받았다. 김 후보자 본인이 제3자뇌물 등 뇌물죄로 수사받고 처벌받아야 한다. 특검 수사가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동훈은 두 사람의 녹취록만 공개했을 뿐, 김승원 의원이 당시 양씨가 수억원의 대가를 받을 거라는 걸 알았다는 구체적인 증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따라서 이는 법정에 가도 증거로 채택될 수 없다. 두 사람의 일방적인 대화일 뿐, 정작 당사자인 김승원은 돈을 받았는지 몰랐다고 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또한 양씨가 김승원 의원에게 어떤 대가를 주었다는 정황도 나오지 않았으므로 제3자 뇌물죄도 성립하지 않는다. 형사사건에서는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말'과 '그 말이 실제로 입증하는 사실'을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
따라서 이 사건은 ‘제2의 돈봉투 부스럭’ 사건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 사건은 나중에 무죄가 선고되었다. 하지만 식약청 로비 의혹 사건은 검찰이, 더구나 윤석열 정권 시절 검찰이 기소유예(불기소) 처분한 것으로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동훈이 이제 와서 녹취록을 공개하며 유죄라고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그 녹취록은 이미 검찰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15억도 강씨가 양씨에게 일방적으로 말한 것
강씨는 통화에서 양씨에게 "나는 1년간 어차피 보호예수가 묶여. 그렇게 해도 만약에 그쪽에서 300억원을 구주야, 신주야, 뭐 여러 가지 방법은 나중에 논의를 하겠지만, 한다 하면 구주 만드는 거야 같이 만들면 되는 거니까"라며 "예를 들어서 300개의 투자 유치를 하잖아, 니가 소개했잖아. 그러면 변호사법에 의거해서 너한테 5% 줄 수가 있어"라고 말한다.
이 녹취록 역시 강씨가 양씨에게 일방적으로 말한 것으로 양씨가 액수를 원한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 액수를 김승원 의원이 알았을 거라는 어떤 증거도 없다. 로비스트와 회사 대표가 나눈 대화는 서로 과장할 수밖에 없다. 서로 이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녹취록 조작 폭로한 봉지욱 기자 고소도 못하는 한동훈
9일 봉지욱 전 뉴스타파 기자는 한동훈이 공개한 녹취록이 원본 녹취록과 다르다며 그 증거를 제시했다. 관련 영상을 보니 녹취록 원본에 있는 김승원 의원에게 유리한 말은 누군가 모두 삭제했다. 한동훈이 조작된 녹취록을 받았는지 아니면 한동훈 자신이 조작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것은 수사를 통해 밝혀야 한다.
만약 녹취록이 조작되지 않았다면 한동훈은 봉지욱 기자를 여지없이 고소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동훈이 공개한 녹취록과 실제 녹취록에서 김승원 의원이 무죄가 나올 가능성이 있는 말은 뺐다는 게 드러난 이상 한동훈은 수사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 조작된 녹취록을 누구에게서 받았는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한동훈은 9일 그 녹취록을 검찰에서 받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런 수사 자료는 검찰이 아니면 유출할 수 없다. 한동훈은 혹시 법무부 장관 시절 그 녹취록을 가지고 있다가 지금에 와서 터트린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그것 역시 위법하다. 한동훈이 녹취록 유출 경로를 밝히지 않으면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양씨와 최재성 전 의원과의 대화가 왜 김승원 후보에게 적용?
한동훈은 "김 후보자는 자기가 식약처에 로비해 주면 브로커 양씨가 CB 투자 형식으로 8억∼10억을 받아 가는 것을 알고 로비해 준 것"이라며 2021년 10월 양씨와 최재성 전 정무수석 간 통화 녹취도 제시했다. 녹취에는 양씨가 최 전 수석에게 "김 후보자에게 '만약 투자 유치가 되면 우리 회사도 교수님(강씨)께서 CB 발행해서 8억에서 10억 정도 투자를 해주신다고 했다. 그러니 좀 도와달라'고 말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양씨가 김승원 당시 의원에게 “내가 식약처 승인이 끝나면 8~10억을 받기로 했다”는 말은 어떤 녹취에도 없다. 그 말을 최재성 전 의원에게 했다면, 최재성 전 의원의 역할이 중요한데, 당시 최재성 의원은 국회의원도 아니어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 최재성 전 의원이 김승원 의원과 나눈 녹취록도 없다. 따라서 이것도 혐의를 입증하는 증거가 될 수 없다.
후배 소개한 게 죄?
한동훈은 김 후보자가 훗날 강씨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정모 부장판사를 브로커 양씨에게 연결해준 정황이 담긴 2021년 9월 6일 통화 내역도 추가로 공개했다. 이 통화에서 김 후보자는 양씨에게 "내가 가장 친한 내 아우, 동생 정○○ 부장판사 기억나?"라고 묻고, 양씨는 "완전 기억나지"라고 답한다. 이에 김 후보자가 정 부장판사에게 전화를 넘겨주자, 정 부장판사는 양씨에게 "우리가 한 3년 전에 한번 봤잖아요"라고 말한다. 이에 양씨는 "맞아요", "진짜 반갑다"라고 화답한다.
이게 유죄가 되려면 김승원 당시 의원이 그 재판관에게 “잘 봐주라”는 말이 담긴 녹취가 나와야 한다. 단지 양씨와 통화할 수 있게 해준 것만으론 유죄가 되지 않아 당시 검찰도 기소유예 처분을 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식으로 하면 과거 나경원이 한동훈에게 국회선진화법 위반에 대해 공소 취소 부탁을 했는데도 이를 묵인한 한동훈도 유죄다.
수사 당시 법무부 장관이 한동훈, 누가 외압을 가했나?
한동훈은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대표가 '검찰과의 협력이 의심된다'고 비판한 데 대해 "검찰로부터 자료 비슷한 것도 받은 적 없으니 김 대표의 근거 없는 거짓말에 엄정한 책임을 묻겠다"며 "김 대표를 허위사실 유포로 형사조치 한다"고 받아쳤다. 그렇다면 그 녹취록을 검찰이 아닌 다른 곳에서 받았다고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해야 된다. 그런데 수사 자료를 유출할 수 있는 곳이 검찰 아니면 어디가 있을까?
당시는 윤석열 정권 시대였고 법무부 장관이 한동훈, 박성재였는데 누가 검찰에 외압을 가했다는 말인가? 기소유예 결정도 내란 3개월 전에 논의되었다. 따라서 내란으로 정권이 바뀔 것 같으니까 누군가 압력을 넣어 검찰이 기소유예 처분을 했다는 식의 한동훈 주장도 잘못되었다. 한동훈은 지금 자승자박(自繩自縛)하고 있다. 되로 주고 말로 받은 셈이다. 한동훈은 항상 그랬다. 그가 제기한 소송에서 대부분 패한 이유가 뭐겠는가? <저작권자 ⓒ 서울의 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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