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잘못을 제대로 청산하지 않았을 때 그 대가가 얼마나 오래 이어지는지 보여줍니다. 동시에 과격한 보복이 어떤 비극을 낳는지도 보여줍니다.
프랑스 혁명 당시에는 혁명재판과 대규모 처형, 폭력적인 권력투쟁이 벌어졌습니다. 개혁의 열기가 공포정치로 변하면서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고, 결국 중도층의 이탈과 거센 반동을 불러왔습니다.
그렇다고 프랑스 혁명의 교훈을 오늘날 대한민국의 내란 청산에 그대로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우리가 요구하는 내란 청산은 보복이 아닙니다. 헌법과 법률에 따라 내란을 기획하고 실행한 사람들의 책임을 묻고, 다시는 국가기관이 권력자의 사병처럼 움직이지 못하도록 제도를 바로 세우자는 것입니다.
우리 역사를 돌아보면 과도하게 청산해서 문제가 된 적보다, 제대로 청산하지 못해 더 큰 대가를 치른 경우가 많았습니다.
해방 후 국회는 친일 반민족 행위자를 처벌하기 위해 반민특위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과 친일 경찰의 방해로 반민특위는 무너졌습니다. 독립운동가를 탄압하고 고문했던 친일 경찰과 관료들은 해방된 나라에서도 다시 권력을 잡았습니다.
친일 반민족 행위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한 일은 몇 사람에게 죗값을 묻지 못한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나라와 국민을 배신했어도 힘 있는 권력자에게 충성하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나쁜 선례를 남겼습니다. 국민보다 권력자를 먼저 바라보는 국가기관의 잘못된 관행도 끊어내지 못했습니다.
그 뒤 대한민국에서는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났고, 12·12 군사반란이 이어졌으며, 마침내 12·3 내란까지 벌어졌습니다.
친일 반민족 행위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한 것은 이후 군사쿠데타와 내란이 반복된 직접적인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헌정질서를 무너뜨린 내란 세력에게 끝까지 책임을 묻지 않으면 비슷한 일이 되풀이된다는 사실을 우리 현대사는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두환과 신군부 세력에 대한 단죄도 끝까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국민 통합을 명분으로 사면됐고, 군사반란과 광주 학살의 책임자들은 추종 세력을 남겼습니다. 시간이 흐르자 전두환을 영웅으로 떠받들고 군사독재를 미화하는 사람들까지 다시 등장했습니다.
저 역시 12·3 내란 현장을 지켜본 사람으로서 그날의 긴박함을 잊을 수 없습니다. 내란이 성공했다면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범한 일상과 민주주의가 어떻게 됐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진상을 철저히 밝히고 책임을 분명하게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내란 청산도 법과 절차에 따라 이루어져야 합니다. 확실한 증거로 책임을 가리고,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신중해야 합니다. 그러나 신중하게 처리하는 것과 책임 규명을 흐지부지 끝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절차는 신중하게 밟되 원칙은 분명해야 합니다.
그러나 국민 통합을 이유로 헌정질서를 파괴한 책임까지 모호하게 한다면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기 어렵습니다. 무엇이 헌법을 지킨 행동이었고 무엇이 헌법을 짓밟은 행동이었는지 먼저 분명히 밝혀야 합니다. 그래야 그 위에서 진정한 화해와 통합도 가능할 것입니다.
프랑스 혁명에서는 폭력과 독선이 반동을 불렀다는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역사에서는 청산하지 못한 과거가 또 다른 쿠데타와 내란의 씨앗이 됐다는 교훈을 배워야 합니다. 두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경고는 서로 다릅니다.
개혁의 방법에는 절제가 필요합니다. 국민을 충분히 설득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렇다고 내란의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묻는 일까지 느슨해져서는 안 됩니다.
과격한 보복은 경계해야 합니다. 그러나 헌법과 법률에 따른 내란 청산까지 정치보복으로 몰아서는 안 됩니다.
대한민국은 군사쿠데타와 군사반란, 그리고 12·3 내란을 겪었습니다. 이번에도 청산을 미완으로 남긴다면 그 틈에서 또 다른 반동이 자라날 수 있습니다.
이번만큼은 내란의 악순환을 끊어야 합니다. 그것이 민주주의를 지킨 국민에 대한 국가의 의무이며, 다음 세대에게 안전한 대한민국을 물려주는 길입니다. <저작권자 ⓒ 서울의 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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