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을 말하는 정치인은 많다. 그러나 노무현이 평생 이루려 했던 정치가 무엇이었는지를 제대로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생 80주년을 맞아 출간된 첫 공식 평전은 ‘노무현 정치’의 시작과 끝에 국민통합이 있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킨다.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이 기획하고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이 집필한 ‘노무현 평전’은 928쪽에 달한다. 윤 작가는 노 전 대통령이 남긴 구술과 연설문, 참여정부 참모들의 메모와 녹취록, 자신이 기록한 포켓수첩 600여 권을 토대로 10년에 걸쳐 평전을 완성했다.
노 전 대통령이 윤 작가에게 남긴 주문은 간단했다.
“나를 본 대로, 들은 대로 써라.”
잘한 일은 잘한 대로, 실패한 일은 실패한 대로 남겨 후대가 본보기와 반면교사로 삼게 하려는 뜻이었다. 자신을 미화하는 영웅담이 아니라 다음 세대가 참고할 수 있는 정치의 기록을 남기고 싶었던 것이다.
윤 작가는 한겨레 인터뷰에서 노무현 정치의 핵심을 ‘국민통합’이라고 설명했다.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노사모’가 모일 때마다 외쳤던 구호도 국민통합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당선으로 국민통합의 절반이 이뤄졌다고 생각했다. 지역주의의 벽을 허물고 영남과 호남의 민주진영이 함께하는 전국정당을 만드는 것이 나머지 절반이었다.
그가 안정적으로 재선과 3선을 할 수 있었던 부산 종로를 떠나 낙선이 뻔한 부산에 계속 출마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정치적 계산으로는 어리석은 선택이었지만 지역주의를 깨야 한다는 원칙만큼은 포기하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이 말한 통합은 서로의 잘못을 덮고 적당히 타협하는 무원칙한 봉합이 아니었다. 민주주의와 상식이라는 원칙 위에서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도 대화하고 함께 길을 찾는 정치였다.
2007년 당내 갈등이 극심해졌을 때 노 전 대통령은 지지자들과 무등산에 올라 이렇게 말했다.
“부족한 대로 동지가 됩시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동지를 적으로 돌리고, 작은 차이를 배신으로 몰아붙이는 정치는 결국 민주진영 전체를 무너뜨린다는 절박한 호소였다.
노 전 대통령은 정당을 민주주의의 근간으로 생각했다. 당에 대한 불만이 아무리 커도 갈등과 이견을 이유로 쉽게 당을 떠나는 행동에는 비판적이었다. 무소속의 유명 인사보다 정당에서 검증받은 후보에게 더 높은 점수를 줬던 것도 같은 이유였다.
그러나 평전은 노무현의 성공만을 기록하지 않는다.
노 전 대통령은 지역구도 타파를 위해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했지만, 국민은 물론 지지자와 참모들까지 설득하지 못해 실패했다. 대통령 권력을 내려놓겠다며 추진한 당정 분리도 당과 정부의 갈등을 키우는 결과를 낳았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실패를 감추지 않았다. 대연정 제안에 대해서는 수류탄을 던졌지만 멀리 가지 못하고 아군 참호 안에서 터졌다고 자평했다. 당정 분리에 대해서도 예상하지 못했던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했다고 인정했다.
실패를 인정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것 역시 노무현 정치의 중요한 모습이었다.
노무현의 상식은 여의도 정치의 상식과 달랐다. 여의도 정치가 당장의 유불리와 권력 획득을 먼저 계산했다면 노무현은 손해를 보더라도 원칙을 선택했다. 권력을 가지면 독점하지 않고 내려놓거나 주변과 나누려 했다. 당장은 패배하더라도 원칙을 지키는 길이 결국 승리한다는 믿음이었다.
검찰과 언론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였다. 검찰에 수사를 부탁하거나 거래하지 않았고, 언론과 유착해 권력을 보호하려 하지 않았다. 검찰과 언론이 독립된 권력으로 서로 견제하도록 만드는 것이 민주주의의 전진이라고 믿었다.
서울의소리 백은종 대표 역시 노사모 출신이다.
백 대표는 노무현 탄핵 당시 국회 앞에서 분신으로 항거할 정도로 탄핵의 부당성을 알리는 데 온몸을 던졌다. 그는 과거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노무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개인 노무현보다 그 사람의 정신을 좋아한다. 지역감정을 타파하고 불의에 분노하는 그 용기와 의지가 좋다.”
이는 노무현을 무조건 추종한다는 뜻이 아니다. 노무현이라는 이름을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손해와 패배를 감수하면서도 지키려 했던 원칙을 오늘의 현실에서 실천하겠다는 뜻이다.
노무현 탄생 80주년에 나온 평전은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에도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개혁과 국민통합은 서로 반대되는 가치가 아니다. 민주주의를 파괴한 세력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은 통합이 아니며, 작은 차이를 이유로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을 적으로 돌리는 것 역시 개혁이 아니다.
청산해야 할 불의에는 단호하게 맞서되, 민주주의와 개혁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가진 사람들은 차이를 넘어 함께해야 한다.
“부족한 대로 동지가 됩시다.”
17년이 지난 지금도 이 말이 절실한 이유다. 노무현의 국민통합은 끝난 과거가 아니라, 오늘의 민주진영이 완성해야 할 현재진행형의 과제다. <저작권자 ⓒ 서울의 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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