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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릴 듯 호기를 부리던 대한민국 검찰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 살인 사건 하나가 썩은 동아줄이라도 되는 듯 붙잡아보려는 신세가 가련하다. 이미 대한국민으로부터 사망을 선고받았음에도 살인 사건 하나가 생명을 불어넣어 줄 듯 호들갑을 떠는 전직 검사와 붙어먹던 방가조선일보가 더욱 비루해 보인다. 아직도 자신들이 저지른 죄과를 돌아보기는커녕 억울하다며 핏대를 올리고 있으니 더욱 한심하다. 그들은 아직도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윤석열 내란 수괴 일당을 무찌른 대한국민을 한낱 장기판의 졸(卒)로 보는 듯하다.
‘민주당은 살인범 장윤기 편에 서고 있다’ 방가조선일보 7월 8일 자 사설 제목이다. 악의적인 가짜 뉴스에 대한 처벌 강화를 위해 7월 7일부터 시행되는 정보통신망법을 무색하게 하는 제목이다. 개정 정보통신망법은 타인에게 손해를 끼치거나 부당한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허위·조작 정보를 고의로 유포하여 실제 피해를 준 경우에는 가중 손해배상의 대상이 된다. 방가조선일보가 이를 모를 리 없지만 사실을 왜곡한 것이 아니라 단순한 의견 진술이라며 이른바 표현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셈이다. 하긴 이렇게 한풀이라도 하지 않으면 그들이 휘두르는 펜을 가장한 살인 무기가 얼마나 많은 애꿎은 생명을 앗아갈지 모른다.
같은 날 참으로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한동훈, 보완 수사권 폐지 비판... , 살인자 편에 설 거냐"’라는 제목의 방가조선일보의 기사다. 검사 출신인 한 씨야 검사 출신이니 정의 구현과 인권 보호를 위한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를 반대할 수 있다고 치자. 그래도 ‘민주당. 살인자 편에 설 거냐?’라는 물음과 방가조선일보의 사설 제목이 놀라울 정도로 닮아있음이 차라리 흥미롭다. 한씨를 ‘새로운 피’라며 추켜세운 방가조선일보라도 미리 서로 입을 맞췄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우연의 일치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비슷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이상동몽(異床同夢)이라고나 할까?
한 씨는 2020년 검언유착 수사 과정에서 자신이 소유한 휴대폰 비밀번호 제공을 거부한 끝에 무혐의 처분을 받은 당사자다. 그는 내란으로 종말을 맞은 윤석열 정권에서 법무부 장관을 지냈다. 한 씨가 장관 재직 시에 모든 피의자가 자신이 불리한 경우 휴대폰 제출을 거부해도 된다고 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다만 헌법 제12조 제2항은 “모든 국민은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라는 규정은 알고 있다. 하필 이런 사람이 나서 살인 사건의 증거가 제대로 수집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먹이며 검찰의 보완수사권을 말하는 것은 수긍하기 어렵다. 엄연히 존재하는 수사권조차 무산시킨 장본인이 하는 보완수사권이 필요하다는 말의 진정성을 받아들이는 대한국민이 대체 얼마나 될까?
보완수사권은 국민이 줄기차게 요구해 온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라는 요구를 근본적으로 허물려는 꼼수일 뿐이다. ‘보완’이라는 허울을 쓰고 있지만 여전히 부패 정치 검찰이 수사권을 쥐고 흔들려는 검은 속내일 뿐이다. 한 씨와 방가조선일보는 살인 피의자 장 씨 사건을 들먹이며 죽어가는 검찰의 수사권을 되살리려 하고 있다. 한때 ‘조선제일검’과 ‘밤의 대통령’이 합체가 되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한 것일까? 내란을 평정한 대한국민이 건재하는 한 방가조선일보와 한 씨가 살아갈 세상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한 씨는 조선제일검이라 불리며 굵직한 사건을 해결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가 윤석열 정권에서 법무부 장관으로 재직하며 보인 처신은 ‘조선제일검’이 무슨 뜻인지 짐작하기에 충분했다. 온갖 범죄 의혹에 휩싸여있던 김건희의 남편인 윤석열에게 90도로 깍듯하게 인사를 바치는 이가 한때 ‘조선제일검’이었다면 그의 칼끝이 향하는 곳은 뻔할 뻔 자였다. 방가조선일보 사장이 ‘밤의 대통령’으로 불린 적이 있다. 밤이 상징하는 불법과 비리, 부정부패, 도덕적 타락은 아랑곳하지 않고 대통령이라는 말에만 도취해 온 집단이 방가조선일보다. 언론이 가지는 사회적 책무는 외면한 채 펜과 카메라를 동원해 인격 살인 행위를 서슴지 않는 집단도 바로 방가조선일보다. 이 둘이 검찰의 보완수사권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 살인자’를 외치며 일심동체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방가조선일보와 전직 검사인 한동훈 씨가 한목소리로 나서는 이유는 간단하다. 방가조선일보가 부패 정치검찰의 수족으로 그들이 던져주는 먹이를 열심히 받아 퍼뜨려 자신의 배를 불리며 오늘날의 검찰을 만드는 데 일등 공신이 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 씨 또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검찰의 목을 조르는데 빛나는 공을 세웠다. 정치 편향적 수사에 최정예 선수로 뛴 것도 모자라 자신이 수사받게 되자 검찰을 단박에 무력화시키는 신통한 재주를 발휘했으니 말이다. 휴대전화 비밀번호 제공 거부로 자신을 구하는 일은 제 식구 감싸기라는 검찰의 행태를 일거에 무색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들은 검찰의 추한 모습을 여지없이 드러내며 저들에게 어떤 형태의 수사권도 주지 말아야 한다는 국민 인식을 견고하게 해준 공로자로 손색이 없다.
보완수사권을 구걸하는 검사들이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언론 탄압이라고 핏대를 올리는 방가조선일보에게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다. 이런 상황을 자초한 것이 자신들이 저질러온 만행이라는 점을 애써 무시한다는 점이다. 원인에 대한 분석이 없으니 대안을 제시하거나 논리적으로 항변하는 것은 애초 꿈도 꾸지 못하게 된다. 단말마(斷末摩)적인 비명은 난무해도 차분한 해결책이 나올 리 만무하다. 자정 능력을 상실한 집단의 종말을 지켜보는 마음이 착잡하다.
이번 광주 여고생 살인 사건 수사와 관련하여 경찰이 보인 행태는 비난받아 마땅하며 철저한 수사를 통해 처벌해야 한다. 일부 경찰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대한국민의 기대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었다. 지금까지 부패 정치검찰이 보여왔던 행태에 비하면 새 발의 피라는 안일한 사고방식이라면 대한국민은 용서하지 않는다. 부패 정치검찰이 보여주었던 인권 침해 사례를 경찰이 반복하지 않도록 감시할 수 있는 제도를 확립해야 한다. ‘그놈이 그놈이었다’라는 자조를 내뱉을 만큼 한가하지 않다. 부패 정치검찰의 상징 윤석열 일당이 저지른 내란을 끝장낸 대한국민의 수준에 맞는 국가 공권력을 반드시 바로 세워야 한다. 온전한 수사권을 넘겨받는 경찰이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한다. 언제나 경찰은 무도하고 부패한 정치검찰 정권을 무너뜨린 대한국민이 살아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방가조선일보가 아직도 화가 덜 풀린 듯하다. ‘힘센 범죄자만 꺼리는 보완 수사권, 민주당은 뭐가 켕기나’. 7월 11일 자 사설 제목이다. 힘센 범죄자는 방가조선일보 자신을 가리키는 듯하여 묘한 느낌이 든다. 사설은 노골적인 거짓으로 가득 차 있다.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 독점을 ‘견제와 균형’이라는 식으로 표현한 대목에는 이들의 정신상태조차 의심할 수밖에 없게 된다.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언론을 가장한 범죄 집단 방가조선일보는 당장 언어도단(言語道斷) 유희를 멈춰야 한다.
“불난 끝은 있어도 물난 끝은 없다”는 속담이 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쥐고 갖은 불장난을 일삼던 부패 정치검찰에게 이제라도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불장난에 홀딱 빠진 자들이 민심이라는 노도가 닥치리라 생각했을 리 없다. 불은 타다 꺼지면 재라도 남지만, 홍수는 모든 것을 휩쓸어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다. 보완수사권을 두고 애걸복걸하는 검찰의 모습은 참으로 가련하기만 하다. 대한민국 검찰은 있을 때 잘하고 좋은 친구를 사귀어야 했다.
결론적으로 방가조선일보의 간교한 꼬임에 부패 정치검찰은 해체라는 수모를 당하게 되었다. 보완수사권을 빌미로 마지막 발악을 하지만 결과는 불 보듯 뻔할 것이다. 언론을 빙자해 검찰을 유혹한 방가조선일보는 훨씬 극악한 집단이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국가권력을 희롱하고도 시치미를 떼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청을 해체하고 모든 수사권을 박탈하듯 방가조선일보에게 언론의 자격을 박탈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나마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부패 정치검찰에 대한 마지막 위로가 될 것이다. 사필귀정이라는 말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지 않으면 그 자체로 부정의가 된다.
그리하여 다시 방가조선일보는 폐간만이 답이다. <저작권자 ⓒ 서울의 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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