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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 장관 왜곡 남북갈등 이용하는 폭력성, 조선일보는 어째서 이 모양인가!

이득우 조선일보 폐간 시민실천단 단장/언소주 정책위원 | 기사입력 2026/05/04 [02:11]

통일부 장관 왜곡 남북갈등 이용하는 폭력성, 조선일보는 어째서 이 모양인가!

이득우 조선일보 폐간 시민실천단 단장/언소주 정책위원 | 입력 : 2026/05/04 [02:11]

 

‘"통일은 폭력적"이라는 통일부 장관’. 만우절도 아닌 5월 1일 노동절에 방가조선일보가 내건 사설 제목이다. 방가조선일보를 7년째 감시해 오고 있기에 뻔한 거짓말이겠거니 했지만 아무래도 심하다 싶다. 과연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연설을 다 듣기는 했을까? 전후 관계를 모두 듣고도 이런 말을 할 수 있을지 물으려는 것이다. 그들에게 통일부 장관이 오죽하면 이런 말을 했을지를 헤아려보라는 말은 지나치다. 속셈이 딴 곳에 가 있을 그들에게는 객쩍은 소리일 뿐이니 말이다. 

 

방가조선일보가 호들갑을 떠는 내용은 정통일부 장관이 4월 29일에 경기도 파주에 있는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열린 ‘통일부 제3기 2030 청년자문단 발대식’에서 한 연설에서 따온 것이다. 연설 내용 그대로가 아니라 자신들의 입맛에 맞도록 악랄한 편집 과정을 거친 결과다. 정 장관은 다양한 통일 모델을 언급하며 그러한 가능성이 사라진 현재, 통일을 말한다는 것이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점진적인 과정이 아닌 급작스러운 상황 변화로 인한 극심한 혼란을 ‘폭력적’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방가조선일보를 이토록 자극한 것은 ‘폭력적’이라는 낱말일 것이다. 방가조선일보는 2026년에 들어 ‘AI 시대, 문해력 위기’라는 시리즈물을 야심 차게 연재하고 있다. 모처럼 제대로 된 일을 하고 있다 싶었지만 결국 위선적이었음이 드러났다. 그들이 지적하는 문해력의 위기는 진심으로 노력하면 극복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알면서 저지르는 ‘악의적 문맹’에는 마땅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방가조선일보가 편파와 왜곡을 위해 일상으로 자행하는 범죄적인 보도 태도가 바로 그것이다.  

 

방가조선일보가 얼마나 ‘폭력적’인 의도를 가졌는지는 그날 정 장관의 발언 맥락을 보면 쉽게 드러난다. 정장관은 독일식 모델, 베트남 모델, 개성공단 모델 3개가 모두 불가능한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마땅한 출구가 없는 현재 상황에서 마치 통일이 언제라도 가능한 것처럼 말하는 것은 ‘폭력적’이라고 한 듯하다. 그의 말을 그대로 옮겨보면 ‘그런 상황에서 통일이라는 이야기는 한편으로 굉장히 폭력적’이라고 되어 있다. 이런 말을 ‘통일은 폭력적’이라며 떼를 쓰는 방가조선일보는 그야말로 문해력을 전혀 갖추진 못한 언어폭력 집단에 지나지 않는다. 기록을 위해 TV조선도 함께 했음을 밝혀 둔다. 참으로 용감한 폭력 남매다. 

 

방가조선일보가 이렇게 폭력적인 이유를 알 듯도 하다. 그들은 겉으로는 통일과 나눔을 팔면서 북과의 갈등을 끊임없이 조장해 왔다. 그들의 위선이 탄로 날 처지에 이르니 이런 유치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신문이 가지는 공공재로서의 기능을 저버린 지 오래인 그들에게 이 정도의 한풀이는 차라리 점잖은 편에 속한다. 그들에게 자격지심이라는 양심적인 증거가 조금이나마 남아있다는 뜻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민족을 배반하고도 단 한 번 용서를 구하지 않는 후안무치한 집단이다. 

 

방가조선일보가 이토록 터무니없이 정동영 통일부장관을 물어뜯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최근 정장관은 미국의 터무니없는 공격에 대해 당당하게 임하며 자신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런 점이 숭미에 찌든 방가조선일보를 불편하게 했음이 틀림없다. 상전의 눈치 보기에 급급한 그들이 서둘러 심기 경호에 나서고 그 결과 이러한 치졸한 사설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참으로 비루한 매국 세력의 작태가 아닐 수 없다. 

 

방가조선일보가 색깔론을 동원하지 않을 리 없다. 정 장관이 북한이 하자는 대로 한단다. ‘통일은 어렵다’라는 말이 통일을 기피하는 말이라고도 한다. 제대로 된 통일 방식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말로만 통일을 말한 것이 바로 윤석열 정권이었다. 특히 그는 평화를 위한 대화를 시도하기는커녕 무인기 등을 통해 전쟁을 유도한 혐의까지 수사받고 있다. 방가조선일보도 대북 전단이나 대북 방송이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윤석열 일당에 동조해 왔다. 그뿐만 아니라 9.19 군사합의의 파기를 선동한 집단도 다름 아닌 방가조선일보였다. 그야말로 통일을 가장한 폭력적인 집단이 아닐 수 없다.  

 

윤석열 내란 수괴는 2024년 12월 3일 밤에 난데없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망나니짓을 자행했다. 그는 난데없이 ‘북한 공산 세력’을 들먹였고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뇌까렸다. 그가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눌 유일한 핑계는 북이었음을 고백한 셈이다. 북과의 통일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야욕만을 위한 수단이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통일을 팔아대며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방가조선일보의 작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자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극단적인 폭력을 행사하면서 입으로는 통일을 말하는 모습은 보수 세이 보여주는 위선의 극치이다.     

 

 

 

채신머리 없기로 방가조선일보를 당할 신문이 있을까? 군불 때기에 싫증이 나니 노골적으로 반통일이라는 폭력적인 주장을 들고 나섰다. 잠시 접어두었던 이간질 책동에 나선 것이다. 허위로 가득하던 내란범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 긴급 담화를 떠올리게 한다. ‘“라디오 듣고 탈북 결심”, 끊어진 대북 방송 재개해야’. 5월 2일 자 사설 제목이다. 정부가 대북 전단을 막고, 방송을 중단하고, 한미 훈련을 줄이고, 9.19 군사 합의를 선제 복원했다고 물어뜯는다. 방가조선일보가 주워섬긴 4가지 조치가 남북 사이에 갈등과 반목을 줄이기 위한 불가피했음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북에 사는 동포의 인권을 들먹이지만 대북 전단이나 방송이 가하는 신변 위협은 쏙 빼놓는다. 참으로 무책임하고 교활함을 넘어 지극히 폭력적이다.   

 

방가조선일보는 진심으로 이러한 반통일적 조치를 재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믿고 있는 것일까? 남북 사이에 갈등과 분열을 통한 긴장 고조가 통일에 기여한다는 식의 기형적 사고를 고집하는 방가조선일보가 측은하다. TV조선에 탈북민 몇몇을 출연시켜 북의 상황을 희화화하는 것이 북을 이해하고 동질감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자위하는 집단이라면 심각한 질병 수준이다. 윤석열, 트럼프의 정신 상태를 넘어서는 정신 승리의 비극적 현장이다. 정 장관의 통일관을 비판하던 허울을 벗어던지고 속내를 드러내는 방가조선일보가 민망하다. 

 

2024년 11월 28일 천주교 사제단이 윤석열을 꾸짖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어째서 사람이 이 모양인가’가 제목이었다. 윤석열이 제 발등을 찍는 내란을 일으키기 닷새 전의 일이었다. 이제 방가조선일보에게도 같은 말을 해야겠다. ‘어째서 신문이 이 모양인가!’ 생각해 보면 방가조선일보가 이 땅의 평화를 위해 이바지한 적은 없었기에 새삼스럽기조차 하다. 천주교 사제단의 준엄한 나무람이 윤석열 내란 정권의 종말을 가져왔듯 전쟁선동세력 방가조선일보를 향한 이 물음이 방가조선일보의 조종이 될 것이다. 

‘어째서 신문이라는 것이 이 모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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