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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세 천수를 누린 이근안의 죽음과 공포의 고문

서울의소리 | 기사입력 2026/03/28 [16:50]

88세 천수를 누린 이근안의 죽음과 공포의 고문

서울의소리 | 입력 : 2026/03/28 [16:50]

-김필성 변호사-

이근안이 죽었다는 소식은 다들 들으셨을 겁니다. 과거사사건을 하면서 알게 된 이야기를 써보겠습니다. 박정희 정권도 세계적으로 악명을 떨친 독재정권이었습니다만, 잔학함이라는 기준으로 신군부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제가 70년대부터 90년대 초까지 간첩조작 등을 저지른 기술자 사건을 한 일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신군부는 더 잔인한 고문을 하기 위해, 고문 기술자들을 육성하고,기술을 연구했습니다. 제가 했던 사건 중 고문기술자가 진술한 내용이 들어있는 게 있었는데, 그 기술자가 이렇게 말했더군요. 피해자들이 말하는 고문기술은 피해자들을 고문할 당시에는 사용하지 않았다, 그 고문 기술은 나중에 개발되었고, 처음 사용된 건 김근태를 고문할 때였다고 말이죠.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진술을 한 것을 보고 치를 떨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저도 고문이 어떤 것인지 모릅니다. 고문을 두려워하던 세대는 아니니까요. 그러나 과거사 재심 사건 등을 여럿 하면서, 그 옛날 군사정권과 싸웠던 선배 인권변호사님들의 이야기를 들은 것에 따르면, 고문은 말 그대로 사람의 정신을 파괴한다더군요. 

 

사실 그런 이야기를 피해자들로부터 듣기는 어렵습니다. 지금도 제가 하는 과거사 사건이 있는데, 고문을 당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은 서로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 피해자들과 가족들이 어떻게 정신이 망가지고, 이후의 삶이 비참해졌는지 알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는 할 수가 없죠, 그래서 고문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어르신 변호사님들에게 들었습니다. 

 

그분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당시 인권변호사를이 가장 충격을 받았던 것은 고문을 이겨낸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었다고 합니다. 아무도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도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않겠습니다만, 지금 모든 국민들에게 존경받는 민주화 지도자들도, 고문의 절망 앞에서 모두 무너졌다고 합니다. 고문기술자들은 고문을 통해 자술서, 전향서 등을 쓰도록 강제했는데, 고문 끝에 쓰여진 자술서 등을 보면 정말 기가 막혔다는군요. 모두가 존경하는 불굴의 민주화 운동가들도 정신이 나가서, 고문기술자들이 요구하는 대로 삶을 구걸하면서 살려달라는 내용의 반성문 등을 썼다고 합니다. 변호인들이 그 글을 받아보고 할 말이 없었다는군요.

 

제가 그런 사건들을 여러번 해서 더 그렇게 느끼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고문 피해자들에게 고문의 공포는 지금도 현실입니다. 많은 민주화 운동가들이 정신적 트라무마로 문제가 있고, 가정도 파괴되었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는 그런 분들이 자신의 삶을 모두 바쳐서 쟁취한 겁니다.

 

요즘 민주화 운동한 사람들을 무시하는 게 유행이더군요. 신군부에게 끌려가 고문을 버티지 못했다고 특정인을 비웃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윤석열 내란 과정에서 군이 직접 투입된 언론인이 딱 한명인데, 그 사람이 무장한 군인들을 피해 숨었다고 비웃는 사람들도 꽤나 보입니다.

민주화 운동을 한 사람들을 폄훼하는 것, 무장한 군인 앞에서 비무장 민간인이 도망치는 것, 모두 자기 평가니 그 취향은 존중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사람들 중 고문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자신을 죽이기 위해 완전무장하고 투입된 군인들의 총구 앞에서 숨지 않을 사람이 몇 명이나 될지는 좀 궁금합니다.

 

그러고보니 전두환도 이근안도 침대에서 편하게 죽었군요. 역시 인과응보따위는 없나봅니다.

 

독재치하 고문의 강도는 어느 정도였을까?

 -김주완 전 경남도민일보 기자-

 


고문경찰 이근안이 88세까지 천수를 누리며 살다 죽었다. 그에게 고문을 당했던 사람은 어땠을까?

 

“몸이 으스러지고 만신창이가 되었지. 어느 정도였냐면, 고문 후유증으로 위아래 이가 다 빠져버렸고, 쩍 하고 벌어져버린 항문이 도무지 닫히지 않는 거야. 항문이 풀렸다는 건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는 얘기지. 몇 개월 동안 아내는 내 곁에 붙어 똥오줌을 받아내야 했어.” 

 

90대 노인은 아래 위 의치(틀니)를 꺼내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40대부터 이렇게 의치로 살아왔어.”

 

'시라소니 이후 최고의 주먹'으로 불렸던 협객 방배추(동규) 선생의 말이다. 그는 1986년 전두환 치하에서 ‘보도지침’을 폭로한 김태홍의 도피를 도왔다는 이유로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고문기술자 이근안으로부터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나도 치아가 좋지 않다. 하지만 지금 나는 60대 초반이다. 잇몸이 아리거나 치과에 갈 때마다 방배추 어른을 떠올리며 위로를 받는다. 우리는 모두 그분들에게 빚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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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그네 2026/03/29 [02:23] 수정 | 삭제
  • 민주화 운동을 하다 고문당하신 분들을 폄훼하는 쓰레기들을 보면 피꺼솟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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