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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옥의 발품일기(23)-쌍용자동차 구조적 살인에 ‘2080’의 강고한 사회적 연대로 맞선다.

쌍용자동차 범국민 추모연대를 결성하며

이명옥 | 기사입력 2012/04/16 [12:06]

이명옥의 발품일기(23)-쌍용자동차 구조적 살인에 ‘2080’의 강고한 사회적 연대로 맞선다.

쌍용자동차 범국민 추모연대를 결성하며

이명옥 | 입력 : 2012/04/16 [12:06]

▲ 대한문 앞 분향소 모습-박재동 화백 그림.     ©이명옥
▲ 시민사회와 사회원로들이 쌍용자동차 사회적 타살을 규탄하고 있다.     © 이명옥


이것은 진보와 보수가 아니라 야만과 문명의 싸움이다.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이에 저항하는 이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고 약속도 이행하지 않고, 22명의 노동자들을 학살하고도 사과조차 하지 않는 일련의 행위를 '야만'이 아니라 그 어떤 낱말로 표현하겠는가. 상식과 정의에서 벗어난 야만에 저항하지 않는 것도 야만이다. 하여 우리 모두는 오늘 야만과 불의에 저항하고, 사회적 약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눈부처 주체'로 거듭날 것임을 천명한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절실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이 땅의 정의를 사랑하고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모든 시민들이 함께 일어나 야만에 맞선 연대 투쟁을 끝까지 전개할 것을 선언한다. - 기자회견문 가운데.. 

●80대 : 팔순 노옹의 분노와 눈물

  “야 너 힘차게 얘기 하라우. 더 씩씩하게 이야기 하라우.”

▲ 김정우 지부장과 백기완 선생님을 박재동 화백이 담았다.     © 이명옥

울먹이는 김정우 지부장에게 그렇게 소리치는 백기완 선생 자신은 두 주먹을 꼭 쥔 채 울고 계셨다. 시대의 아픔이 가져다 준 분노의 눈물일까. 열세 살 설렁탕집 심부름꾼 노릇하다 밥 많이 먹었다고 잘린 오래된 비정규직이며 평생 재야 운동으로 살아 온 백기완 선생. 후배들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 어른을 찾아가 투쟁의 맨 앞에서 총대를 메어 주실 것을 부탁드렸고 선생은 단 한 번도 거절하지 않았다. 한겨울 내내 차가운 청계 광장과 서울 광장, 대한문 앞 길바닥과 폭설이 덮인 영하 10도의 강추위 속에 평택 공장 앞 길거리에 서길 주저하지 않았다. 

선생의 분노의 포효 앞에 누구나 부끄러워지는 이유는 선생 자신이 지금까지 현장에서 실천의 삶을 살기 때문이다. 노동자 민중이 역사의 참주인임을 아는 백기완 선생의 분노가 노동자를 일깨워 역사의 매듭을 만들어 낼 새로운 희망으로 빛날 수 있을까.

▲ 눈물을 흘리는 백기완 선생님.     © 이명옥

3년 동안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22명이 목숨을 내려놓았다. 지난 3년 간 해고노동자들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찾아 ‘생명을 구해 달라, 살려 달라’는 구조 신호를 보냈다. 희망뚜벅이. 희망광장, 희망텐트, 무려 1,000일 동안 끊임없이 문을 두드렸지만 냉담한 사측과 사회 앞에 22명이 목숨을 내려놓아야 했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 사회는 해고노동자들의 절규와 피눈물에 누구 하나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움직임과 각성은 22명이 목숨을 잃고서야 일어났다. 더 이상 이 병든 사회가 공멸의 길로 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 우리 모두가 사회적 상주로 나서 이 문제를 해결하자며 사회 각층 지도자와 재야 원로들이 먼저 팔을 걷어 부치고 연대 투쟁에 나설 것을 선언했다.

4월 13일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사회적 타살과 전원복직을 위한 기자회견 자리에서 백기완 선생은 울분을 토하며 이렇게 말했다.

▲ 두 주먹을 꽉 쥔 백기완 선생님의 모습을 박재동 화백이 담음.     © 이명옥



“여러분, 아침에 여러분이 여기에 모인다고 해서 부지런히 여기를 오는 길에요. 이 옆에 환하게 진달래가 피고 개나리가 피고 군데군데 벚꽃이 폈더라고요. 아, 때만 되면 꽃은 피고 또 때만 되면 열매도 맺는데 우리 사람들, 그중에서도 피땀으로 사는 노동자들은 어째서 때가 되도 열매를 못 맺나, 거짓말만 하는 사람들의 선거가 지나도 우리 노동자들은 열매를 맺기는커녕 죽어야만 되는가. 아. 이 늙은 사람 오기가 좀 가슴 아팠습니다. 

그러나 피눈물로 사시는 노동자 여러분, 여러분들의 열매는 딱 한번 맺는 겁니다. 역사의 열매로 맺는 거예요. 그런데 그건 피눈물의 노동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겁니다. 여러분들의 목숨을 뺏으려고 하는 놈들하고 싸워서 쟁취할 때에 역사의 매듭으로 여러분들의 결과는 빛난다고 하는 것을 믿고 살자 그러면서 이 자리에 왔습니다.

여러분, 이게 뭡니까? 나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그리고 요새는 이명박과 일생을 싸웠수. 그리고 내 인생은 다 갔수. 그런데 어쩌자고 지긋지긋한 박정희 딸이 큰소리치는 세상이 됐수. 아무리 우리가 피눈물로 싸워야만 우리의 열매가 역사의 열매로 매듭짓는다고 믿고자 하더라도 두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수. 그러니까요. 이런 자리가 있을 때 나를 좀 빼주쇼. 송경동, 나를 이런데서 좀 빼줘. 아무것도 못한 늙은이를 왜 나이만 많다고 밤낮 나를 앞에 앉혀. 다신 하지 말어. 

여기 기자들 몇 명 안온 거 같아. 우리가 아는 신문사 인터넷 방송에서 안 온 놈들 다 이름 좀 대. 내가 늙었지만 아직도 이거 (주먹을 들어 보이며) 있어. 이놈의 자식들 선거 결과나 보도하고 우리들이 싸우는 건 안 알리려고 하고. 왜 이런 애기를 하느냐. 이제부터 선거잔치에 침이나 갤갤 흘리지 말고, 사람 죽인 놈들하고 좀 싸우자고요. 싸워서 우리도 좀 이기자고요.”

  ●60대 :  매일 ‘빵’ 사오는 남자

▲ 전태삼 씨가 22명을 죽음을 추모하며 위해 매일 '빵'을 사오고 있다.     © 이명옥


4월 5일에 대한문 앞에 차려진 분향소에 매일매일 빵을 사가지고 찾아오는 남자가 있다. 전태일 열사의 동생인 전태삼씨다. 전태삼씨는 하루 종일 경찰의 폭력과 싸우며 분향소를 설치하던 4월 5일 밤과 4월 6일 아침까지 대한문 앞 길거리에서 밤을 새웠다. 기억하는가.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분신항거로 죽어가며 이소선 어머니에게 마지막 남긴 말은 “엄마. 배가 고프다” 였다. 막힌 기도를 칼로 뚫어가며 ’자신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말고 노동자 학생 모두 하나 되어 나이 어린 공장의 여공들을 지켜 달라. 그 일을 어머니가 해 달라’며 확답을 받은 뒤에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 남긴 말이다.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열다섯 살, 열여섯 살 소녀들이 배고픔과 폐병으로 시들어 갈 때 시다들에게 풀빵을 사 먹이고 차비가 없어 먼 길을 밤새 걸어와야 했던 이는 전태일만이 아니었다. 당시 형과 함께 청계천 피복 공장서 형과 같이 일했던 전태삼씨도 형의 권유로 차비를 내놔야했던 것이다. 골이 잔뜩 나서 입이 삐죽 나온 상태로 지쳐 돌아오면서도 형과의 약속 때문에 차비로 여공들 풀빵을 사주고 걸어 다닌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고 이소선 어머니가 말 한 적이 있다.

배고픔과 ‘빵’ 한조각의 가치, 노동의 참가치를 아는 노동자 전태삼씨, 그는 분향소를 지키며 앉아 있는 이들과 문화제에 참석하는 이들이 ‘빵’을 나눠먹도록 하는 것을 죽은 자와 산자 모두를 위한 일종의 “제의‘라고 표현했다. 그는 ’다시는 누군가 죽어서도 안 되며, 죽임을 당해서도 안 된다. 그 문제를 풀 수 있는 것은 결국 ’빵‘의 문제다’ 라고 이야기 한다. 그렇다. 스물세 살 전태일이 분신까지 하며 항거했던 ‘근로기준법 준수’와 ‘노동의 문제’는 직접적으로는 인간의 생명을 이어주는 ’빵‘의 문제인 것이다. 

지금 ‘빵’의 문제로 생명을 져버리는 이 땅의 노동자, 무역 개방으로 땅을 갈던 농부가 흘리는 피눈물의 고통을 전태일 열사 가족만큼 잘 아는 이들이 있을까. 매일 새로 구운 ‘빵’ 한 봉지를 사 가지고와 지나가다 들린 사람들, 미안한 마음으로 대한문 앞 기도회나 문화제에 참석하는 이들에게 먹이는 ‘빵’을 나누는 ‘제의' 그 ’제의‘에 담긴 전태삼씨의 기도가 탐심과 이기주의로 양심이 단단하게 굳어진 자본가들, 그들을 옹호하는 권력자들의 병든 양심을 흔들어 깨워 물신의 망령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인간으로 부활시킬 수 있을 것인가.

  
●40대 : 울지 말고 일어나 ‘운명’과 맞서 싸워라.

 
22명의 동료를 떠나 보낸 김정우 지부장과 거리 분향소를 지키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에게 더 이상 흘릴 눈물은 남아있지 않은 것 같다. 눈물이 마른 대신 그들의 가슴에선 메일 피눈물이 흐르고 있을 테지만. 누구보다 강해 보이던 남자. 그가 마이크를 들고 어깨를 들먹이며 운다.

▲ 김정우 지부장의 모습을 박재동 화백이 담았다.     © 이명옥

“ 더 이상은... 죽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가족들과 동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봤습니다. 방법을 찾고자 했지만 혼자는 힘들었습니다.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자꾸만 눈물이 아네요. 이번에 간 동지도 두 달 전만 해도 저랑 같이 싸웠었는데 그때도 ”형, 나 주위에서 빨갱이라 하는데 형은 어때? 하면서 “ 쌍용자동차 해고자니까 취업이 안 돼....”라고 했는데... (울음을 삼키며) 이렇게 원로 분들께서 또 많은 대표 분들께서 정리해고로 목숨을 잃어가는 쌍용자동차 뿐 만이 아니라 이 땅의 고통 받는 노동자들에게 큰 힘을 주고 계신 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야, 너 힘차게 얘기 하라우 씩씩하게 얘기하라우”(백기완 선생님 일갈)

씩씩하겠습니다. 정말로 지난 3개월간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대한문에 나와서 거리에서 함께하는 시민들을 보고 저희들의 정체를 다시 찾았습니다. 이제 쌍용자동차 문제 원론 복직이 될 때까지 저희들 강고하게 의지를 다지면서 이 땅에 정리 해고로 비정규직으로 고통 받는 수많은 노동자들과 함께 사회 원로들과 함께 힘 있게 전진해서 반드시 승리의 열매를 맺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목숨 버릴 생각으로 열심히 투쟁하겠습니다.“

고개 숙인 남자 40대의 가장. 그의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는 이 땅의 노동자가 짊어 진 노동 현실이 가져다 준 무게다. 바위를 떠받치고 있는 듯 무거운 삶의 짐, 그 짐을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 버거울 것이다. 이제는 모두가 그 짐을 나눠져야만 한다. 대한민국 40대 남자의 사망률이 가장 높은 이유는 가족을 먹어 살려야하는 중압감이 가져다 준 것이다. 누가 그 운명의 바위 돌을 굴려 와당탕 우당탕탕 앞길을 가로막는 운명의 검은 장막을 깨트리는데 함께 할 것인가. 누가 저들의 고통스러운 눈물을 닦아 주는데 함께 해 죽음의 벽을 넘어서게 만들 것인가.

●20대:  88만원세대 ,노동 투쟁 현장에 함께 하다.

▲ 대한문 앞 분향소 모습-박재동 화백 그림.     © 이명옥

메이데이(성신여대 동아리), 마르크스 연구회(국민대), 한국기독교연대(감신대), 금융occupy. 대학생들이 노동자와 연대 투쟁을 선언했다. 희망광장 18일이 후반부에 접어들었을 때였다. 상대적 박탈감과 빈곤감은 있을지언정 절대 빈곤과 배고픔과는 거리가 먼 세대들, 그들이 노학연대를 통해 노동해방의 승리를 만들어 내겠다며 거리에 섰다. 대학생 친구 한 명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전태일 열사의 바람은 전태일 분신 항거 이후 정치 사회적 이슈만이 아니라 노동문제까지 학생들의 관심을 돌리게 만들었다. 

 운동권 학생들이 위장 취업으로 공장과 노동 현장에 함께하며 노조 결성을 통해 노동자의 권리를 찾는데 힘을 모으고 야학을 통해 의식화 작업을 해 나갔다. 그러나 절대 빈곤으로부터 벗어나고 군사독재 정치권과 맞서 싸우며 노동자 농민의 문제는 학생들의 의식에서 멀어져 갔다. 수많은 운동권 학생들이 변절하고 사회와 타협해 기득권 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고등학교 졸업자의 80% 이상이 대학을 진학하는 상황에서 노동자와 학생의 차이는 학교 안과 사회라는 차이 밖에는 없을 지도 모른다. 공돌이 공순이들과 공장 생활을 하고, 야학을 통해 노동자와 함께 하던 학생들, 농활을 통해 농민과 함께하며 땀 흘리던 젊은이들이 있었다.

▲     © 이명옥

그러나 지금은 스펙을 쌓기 위해 학원에 다니고 비싼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시급 4천원에 시간과 노동을 팔아야 하는 현실임에도 자신이 노동자의 자식이며 자기 또한 노동자라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반값 등록금처럼 직접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전반에 걸쳐 드러나는 부정과 부패, 특별히 비정규직 문제 정리 해고 등 자본이 만들어 낸 노예제도 속 노동의 문제야말로 학교 문을 나서는 순간, 자신들에게 현실로 다가와 평생을 좌우할 문제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런데 청년 실업이 늘어나고 학교를 졸업하고도 갈 곳이 없어지자 일부 학생들이 부조리한 노동 문제와 사회 현상에 에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을 뜨게 만든 것은 언론도 학교 교육도 아니었다. 우연히 들렀던 용산 학살의 현장이나 그냥 지나칠 수 없어 함께 했던 노동자들의 집회가 그들의 눈과 귀를 열리게 했던 것이다. 대한문 분향소를 지켜내야 하는 이유, 일단 와서 보라(Come and see)고 외치고 알려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진실에 눈뜨게 하고 타인의 고통에 함께 하게 한다는 것은 타인의 고통에 함께 함으로 자기 자신의 고통을 치유하는 길이다. 타인의 고통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의 고통의 뿌리를 뽑아내는 작업인 것이다.

● 모든  노동자에게  ‘빵’과 ‘장미’를 !!!

▲     © 이명옥

캔 로치 감독의 ‘빵과 장미’ 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가. 모든 인간에겐 아름다움을 추구할 권리가 있고 문화 예술을 향유한 권리가 있다. 생존권과 더불어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의미다. 엠마 골드만이 말한 것처럼 와인을 마실 권리. 춤출 권리. 사랑할 권리가 이 땅에 호흡하는 99% 모두에게 동일한 것이다. 

1%만이 아니라 99%도 ‘장미’의 향을 만끽하고 음미할 수 있으려면 노동의 조건이 개선돼야 한다. 남들이 모두 잠을 자는 시간에 잠 좀 자자고 말하면 해고하는 세상. 13시간 이상 일하면서 바깥 공기 한번 마시지 못하는 세상. 휴일이라고는 명절날 하루 이틀 뿐인 세상에서 혹사당해선 안 된다. 이런 열악한 노동환경에서는 자기 뼈와 살을 깎는 노동자가 육체를 위한 ‘빵’을 살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장미’의 향기를 음미할 영혼의 양식이 메말라 인간으로서의 삶은 시들어 갈 것이다. 

‘빵’을 쌓아두면 썩어서 먹을 수 없다. 매일 매일 새로운 ‘빵’을 구워 먹어야 그 향기와 맛을 음미할 수 있고, 육체에 에너지를 공급할 구 있다. 자본가들이여, ‘빵’을 나누는 일에 인색하게 굴지 말라. 당신들이 ‘빵’을 창고에 쌓아두고 그 빵이 썩게 만드는 동안 굶주린 사람들의 생명줄이 사위어 간다. 

인간은 ‘빵’ 만으로는 살 수 없는 존재다. 노동자에게도 ‘장미’가 필요하다 인간의 정신을 풍요롭게 할 ‘장미’로 상징되는 문화와 예술이 향기, 때로 자기 안에 침잠할 수 있는 삶의 여유는 인간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장미’의 향기를 독식하려는 탐심 가득한 자본가들이여. 당신들이 ‘장미’를 가득 채운 방의 문을 닫아거는 순간 장미의 향기는 당신의 생명을 빼앗는 독이 될 것이다. 문화 예술의 향기는 나누면 나눌수록 기쁨은 커지지만 그 향기와 크기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물신의 망령에 사로잡힌 자들이여!  인간 본연의 정신으로 돌아오라.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너도 잘살고 나도 잘 살고 그러나 사람답게 올바르게 잘사는 노나메기 정신' 으로 사람들이 함께 사는 사람세상 만들자.  큰 꽃 작은 꽃 발 밑에 앉은뱅이 들풀과 들꽃까지 제각각 생명의 빛을 발하는 아름다운 사람 정원에서 함께 ‘빵과 장미’를 나누는 세상 만들어 보자.

기자 사진
여성과 장애 사회문제에 관심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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