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경사를 맞이하여 윤석열은 한강 작가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냈는데,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윤석열은 전두환을 향해 정치를 잘했다고 칭송했다가 뭇매를 맞은 바 있다. 지난 20대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일어난 일이다.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소년이 온다’라는 작품을 전혀 모르기에 개념 없는 축하를 보내고 전두환을 칭송하는 짓거리를 하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한편 경기도교육청은 작년 7월 한강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인 ‘채식주의자’를 청소년 유해 도서로 선정하여 학교 도서관에서 모두 퇴출시킨 전력이 있다. 사실 기준도 뚜렷하지 않다. 이미 2016년 맨부커상을 받은 작품에 테러를 가한 것이다. 현재 경기도교육감은 임태희라는 인물로 이명박 정부에서 비서실장을 지낸 바 있다. 이제 그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품을 어떻게 평가할지 자못 궁금한 지점이다.
이 두 가지의 이야기는 매우 정치적인 지점이다. 그러나 문화 컨텐츠로서 외국의 명망있는 상을 받기까지에는 번역의 힘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고자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가 우리나라에서만 200만부 넘게 팔린 데에는 번역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번역가 유유정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영혼의 반쪽이라는 칭송을 들으며 일본 문학 번역에 몰두한다. 하루키의 작품만이 아니라 오랜 시간 일본 문학을 국내에 소개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가 번역한 작품들은 외국 문학이라는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외국 문학을 읽는 데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우리말로 읽혀지는 자연스러움이 없으면 번역 문학은 쉽게 팔리지 않는다. 유유정이라는 번역가가 일본 문학을 공부한 대한민국 시인이라는 사실이다. 즉, 문학적 감수성을 겸비해야 두 개의 언어를 자연스럽게 소화할 수 있게 된다.
한강 작품의 번역가로 알려진 데보라 스미스는 케임브릿지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문학도였다. 이후 그는 한국의 컨텐츠에 매료되면서 런던대학교에서 한국학을 전공한다. 또한 한국 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으며 번역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2012년 한국을 방문하여 출판사와 한강 작가와의 만남을 인연으로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번역하여 영어권에 소개한다. 이를 계기로 데보라 스미스는 2016년 한강 작가와 함께 맨부커상을 ‘공동 수상’한다. 한국의 근현대사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으면 이는 광주5.18과 제주4.3을 번역하는 게 불가능할 수도 있다. 데보라 스미스가 문학인으로서 문학적 감수성을 갖추었다는 지점과 한국학 전공자로서 한국에 대한 이해가 높다는 점, 그리고 한국 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는 점 등은 쉽게 간과할 수 없는 지점이다.
사실, 필자는 2019년 전태일 문학상 수상 작가로 개인적으로는 조정래 작가님의 태백산맥이라는 작품이 21세기가 오기 전에 이미 노벨 문학상을 받았어야 온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굴곡진 현대사에 식민지를 거치고 광복과 분단을 거치며 3년간의 전쟁을 치르고 독재와 혁명의 시대를 지나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이런 나라의 문화를 어떤 외국인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더욱이 작품에 등장하는 진한 남도 사투리를 영어로 번역하는 게 매우 이질적인 작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우리의 문학 작품을 다른 언어로 번역하여 출간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문화를 정확히 이해해야 하고 문학적 감수성을 겸비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따르게 된다.
우리 문학이 과거에 비해 더욱 조명 받는 이유는 전반적으로 한류의 영향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영상 컨텐츠는 시각적으로 보고 즐기는 것이지만 텍스트 컨텐츠는 번역의 힘이 대단히 중요하다. 이제라도 정부 산하에 번역 전문 기구를 두어 우리 문학을 외국에 전문적으로 소개하는 번역가 등을 발굴해야 한다.
그러나 사실, 지금 우리 정부가 그런 걸 할 만한 능력이나 제대로 갖추고 있는지 의심스럽기는 하다. <저작권자 ⓒ 서울의 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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