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조현상(前兆現象)이란, ‘어떠한 일의 징조로 나타나는 현상’을 말하는데, 가령 지진이 오기 전에 쥐떼가 대이동을 하는 것도 이 현상에 해당한다. 그래서 전조현상을 ‘선행현상’이라고도 한다.
과학과 경험
요즘은 과학이 발달해 지진도 지각의 움직임이나 경사의 변화 등을 통해 미리 알아낼 수 있다. 산사태의 전조현상도 오랜 기간 관찰 경험으로 알아낸다. 대부분 국가에는 땅은 물론 바닷속에도 지진계가 설치되어 있는데, 그 지진계에서 확인되는 지진의 발생 활동이 비정상적인 패턴으로 계속 발생하거나, 꾸준했던 지진파의 속도나 강도가 갑작스럽게 변화된다면 지진의 전조 현상으로 의심한다.
지자기의 갑작스러운 변화나 전자기파의 이상 방사를 통해 지진의 전조 현상을 의심할 수 있다. 지하수의 수위, 수온, 탁도, 냄새, 그리고 라돈 함유 등이 급격하게 변하거나, 단층에 있던 가스가 갑자기 새어나오면서 악취가 발생 할 경우 지진의 전조 증상으로 의심할 수 있다.
그러나 구전이나 속설은 전조현상이라기보다 오랜 경험의 축적에서 나온 생활의 지혜라 해야 옳다. 가령, 할머니가 “어깻쭉지가 쑤시는 걸 보니 곧 비가 오겠구나.‘라고 말한 경우가 그러하다. 흔히 ’신경통 일기예보‘라고 한다. 과학과 경험 중 무엇이 더 옳은가는 각자의 사고관에 따라 다르다.
전국에 빈대 출몰
최근 전국에 빈대가 출몰해 당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빈대는 사람의 생명을 앗아갈 정도로 치명적인 해충은 아니지만 침대나 이불에서 기생하면 온몸이 가려워 미칠 지경이 된다. 빈대에 물린 어떤 사람은 “차라리 죽고 말지”하고 고통을 호소하기도 한다.
흔히 “빈대 잡으려다 초가산간 다 태운다”란 말을 하는데, 이때 빈대는 아주 하찮은 존재로, 본질이 아닌 현상으로 치부된다. 그런데 그 작은 해충이 사실은 호랑이보다 무섭다. 호랑이는 이불 속이나 옷 속까지는 찾아오지 않지만 빈대는 침대까지 찾아와 온몸을 가렵게 하기 때문이다. 이걸 비유적으로 표현하면 ‘이념전쟁보다 더 무서운 것이 물가다’ 정도 될 것이다.
과학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 정서
역사 기록물을 보면 고려시대나 조선시대 때 역병이 돌아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는데, 거기에는 많은 이유가 있지만, 문제는 백성들이 이걸 나라가 망하기 전의 전조현상으로 인식한다는 점에 있다. 역병이 돌면 민심이 흉흉해지고 서로 믿지 못하며 심지어 마을을 통째로 불태워버리는 일까지 발생한다.
그렇다, 문제는 과학이 아니라 국민이 느끼는 정서다. 흔히 “집안이 망하려니까, 나라가 망하려니까” 무슨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 말하는데, 이것 역시 과학적 사실이라기보다 개인이 느끼는 정서다.
빈대 출몰은 역병일까?
조선시대 역병 대책은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역병이 퍼지면 전염을 차단하고자 환자부터 격리했다. 이런 상황이 조선 후기 효종 때인 1653년 8월 16일 제주도에 표착해 13년간 조선에 체류한 헨드릭 하멜의 눈에도 목격됐다. <하멜 표류기>는 "전염병에 걸린 환자는 당장 읍이나 마을 밖 들판의 작은 초막으로 데려가 거기서 살게 한다"라며 "간호하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그 환자에게 접근하지 않으며 말도 하지 않는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그렇게 격리하고 치료한 뒤에 희생자가 발생하면 매장이 아니라 화장을 했다. 또 감염 지역에 대한 경제 구제 조치도 취해졌다. 동시에 유언비어 통제책도 집행됐다. 병원균 확산 못지않게 유언비어 확산도 혼란을 가중시키므로 이에 대한 대비책도 나왔다. 역병보다 더 무서운 것이 민심이란 걸 조정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조선시대 일반 백성들은 한밤중에 응급 상황이 생기면 의원 집으로 달려가 대문을 두두리기도 했지만, 의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대부분 무당을 찾았다. 대중이 일상적으로 접촉하는 '동네 의사'는 주로 무녀들이었던 셈이다. 현존하는 민간요법의 상당부분은 그들의 임상 경험에 기초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양반은 가족 중에 환자가 생기면 위채와 아래채를 구분해 격리하고, 노비는 병막(病幕·환자를 수용하는 막사)으로 보냈다. 환자의 이동은 격리의 의미도 있지만, 환경이 다른 곳에서 위안을 찾고 병이 낫기를 바라는 주술적 의도도 있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코로나로 인류가 위기를 맞이했는데, 그때도 일부 교인들은 코로나를 ‘하나님의 심판’으로 간주해 예배 참석자에게 소독을 위해 소금물을 뿌리기 하였다. 현대인의 지식체계가 과거에서 왔음을 알 수 있다.
빈대 때문에 서울도 들썩
빈대가 대구와 인천, 부천 등에서 발견된 가운데 서울에도 나타났다. 서울 25개 자치구 중 절반이 넘는 곳이 빈대 방역에 나선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달 25일 서울 영등포구 보건소에는 빈대 출몰 신고가 접수됐다. 영등포구에 위치한 고시원 거주자가 이불과 장판, 옷가지 등에 빈대가 나타났다는 민원을 접수했다. 이에 보건소 직원들이 현장에 나가보니, 빈대는 이미 확산해 4곳의 방에서 발견됐다.
방역 전문 업체는 이번 달에만 서울 시내 25개구 중 13개구에서 총 24건의 빈대 방역 작업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대상은 대부분 고시원과 가정집이었다. 시민들이 고통을 호소하자 방역 당국은 합동대책본부를 운영하며 빈대 퇴치에 온힘을 기울이고 있다. 일부 시민들은 빈대를 퇴출하지 못하면 내년 총선은 하나마나라고 우스갯소리까지 하였다. 그만큼 빈대는 귀찮은 존재다.
빈대가 민심보다 무서운 모양
대책본부에는 행안부, 보건복지부, 질병관리청 등 10개 관계부처 및 지자체가 참여하는데, 역사상 빈대 때문에 이토록 많은 행정기관이 총동원 경우는 드물었다. 윤석열 정권 들어 코로나 방역도 하는지 마는지 모를 정도다. 치료도 각자하고 치료비도 개인이 부담하고 있다. 그런데 왜 빈대 출몰엔 전 행정 기관이 긴장했을까? 그렇다. 민심 때문이다. “나라가 망하려니 빈대까지 설친다”하는 말이 역병처럼 돌면 치명타가 되기 때문이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정부는 국민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빈대의 특성과 방제 방법 등을 정확히 안내하고 범정부 차원에서 빈대 방제와 확산 방지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라고 밝혔다. 이태원 참사엔 손놓고 있다가 빈대가 나타나자 호들갑을 떠는 모습이 가관이다.
서울시는 '빈대 제로도시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했다. 폭우로 시민들이 죽고 산사태로 시민들이 죽을 때는 속수무책이더니 빈대엔 황소 잡는 칼을 뽑아든 셈이다. 서울시는 "빈대 확산 방지와 피해 최소화를 위해 숙박·목욕시설 등 '소독의무시설'을 관리하는 부서 합동으로 빈대 방제 방안을 수립해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서울시는 빈대 발견 시 신속한 방제를 위해 '빈대 발생 신고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시민들 용산 왕빈대부터 잡아라 조롱
온 행정 기관이 동원되어 빈대 퇴출을 하는 것을 보고 온라인에 “용산 왕빈대부터 잡아라!”라는 우스운 글까지 올라왔다. 어떤 네티즌은 “왕빈대를 잡아야 새끼 빈대들이 더 이상 태어나지 않는다”라는 시니컬한 풍자까지 하였다.
중요한 것은 과학이 아니라 국민의 정서다. 오죽했으면 그런 말이 돌고 있겠는가. 빈대보다 무서운 것이 물가다, 란 말은 시니컬하다. 윤석열 정권과 싸우기도 힘이 드는데 웬 빈대까지 출몰해 민심이 흉흉해지고 있다. 전국적으로 빈대가 출몰한 것이 나라기 망하기 전의 전조현상이 아니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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