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윤재식 기자] 수해 현장 실종자 수색 중 순직한 故채수근 해병 사망 사고를 조사하다 외압에 의해 보직 해임된 해병대 전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이 국방부 검찰단의 수사를 거부했다.

▲ '집단항명' 형의로 보직해임된 박정훈 해병 수사단장이 11일 국방부 검찰단 앞에서 '국방부 검찰 수사단'의 조사를 거부하는 입장을 밝힌 후 경례하는 모습  © 연합뉴스

박 대령은 11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군검찰단을 방문했지만 당초 예정이었던 국방부 검찰단 수사는 거부하고 해당 수사의 거부 입장만 밝히고 돌아갔다.

그는 이날 발표한 입장문에서 “국방부 검찰단은 적법하게 경찰에 이첩된 사건 서류를 불법적으로 회수했고, 수사의 외압을 행사하고 부당한 지시를 한 국방부 예하 조직으로 공정한 수사가 이뤄질 수 없다”며 이번 수사 거부의사 이유를 설명했다.

앞서 박 대령은 故 채수근 해병 사건 관련해 해병대1사단장 등 고위 지휘관의 과실치사 혐의가 명시된 조사 보고서를 경찰에 넘기는 것을 보류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어기고 사건을 이첩했다는 이유로 ‘집단항명의 수괴’ 혐의로 입건됐다.

그는 이번 입장문에서도 지난 9일 항명과 관련해 발표한 입장문과 같이 “제가 할 수 있는 수사에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를 해병대사령관, 해군참모총장, 국방부 장관에게 직접 대면보고했다”며 “그런데 알 수 없는 이유로 국방부 법무관리관으로부터 여러 차례 수사외압과 부당한 지시를 받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왜 오늘 이 자리까지 와 있는지 모르겠지만,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은 결정을 했을 것”이라며 “대한민국 해병대는 충성과 정의를 목숨처럼 생각하고 있다. 저는 해병대 정신을 실천했을 뿐이다”고 덧붙였다.

박 대령은 입장문 발표 후 기자들과 가진 질의응답에서 지난 1일 오전9시43분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과 한 통화내용을 밝혔다.

그는 “법무관리관이 ‘직접적인 과실이 있는 사람으로 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면서 “직접적인 과실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 직접 물에 들어가라고 한 대대장 이하를 말하는 것이냐”고 확인하자 법무관리관은 “그렇다”라고 답했다고 전했다.

이에 박 대령은 “그것은 협의의 과실로 보는 것”이라며 “나는 사단장과 여단장도 사망의 과실이 있다고 보고 광의 과실 범위를 판단했다. 어차피 수사권은 경찰에 있으니 경찰에서 수사해 최종 판단하면 될 것 아니냐. 지금 하신 말씀은 ‘외압’으로 느낀다”고 대답했다는 당시 대화 내용을 밝혔다.

이날 박 대령의 국방부 검찰단 수사 거부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의 대다수는 "현실판 어퓨굿맨" “공무원과 군인은 부당한 상급자의 명령에는 거부할 의무가 있습니다. 참 해병이십니다” “항명은 아무나 하나 참다운 군인 정신으로 무장한 용기있는 군인” “걱정 말고 소신을 꼭 지키세요” “응원합니다” 등 박 대령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한편 이번 외압과 관련해 야권에서는 윤석열 정부의 개입 일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 故채수근 상병 사망 사건에 과실 혐의가 있다고 해병대 수사단에 의해 밝혀진 임성근 해병대1사단장이 지난달 22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거행된 故채수근 상병 안장식에 참석한 모습   © 연합뉴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1일 국회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원칙대로 수사하고 ‘장관’이 결재까지 해서 이첩한 일을 왜 윤석열 캠프 출신 ‘차관’이 나서서 다시 전화를 하는가? 도대체 누가 항명의 수괴인가? 이 정권들어 국가안보에까지 불법과 무법이 횡횅하고 있다”며 “윤 대통령 입장 바꿔 생각해보라.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검찰 수사중인 기록 달라고 요구했으면 줬을 건가?”라고 따져 물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전 당대표 역시 전날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번 박 대령 보직 해임 사건의 배후에는 대통령실이 연관되어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국방부 차관은 명단에서 사단장을 빼라고 압력을 넣었다고 한다”며 “용산 대통령실에 사건 파일이 보고되자 국방부는 사건 이첩 중지 명령했다. 대통령실의 누군가가 사단장을 보호하려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