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유행하는 말이 ‘심리적’이란 말과 ‘느낌적 느낌’이란 말이다. 윤석열 정권이 ‘심리적G8’을 말하고, ‘전술핵을 가진 느낌’이라 말한 후 생긴 유행어다. 윤석열이 굴종적 대일외교를 하자 네티즌들이 관련 기사에 촌철살인의 댓글들을 달았는데, 그중 몇 개만 소개한다.
“앞으로 윤석열을 친일파라 하지 말자, 윤석열은 일본 놈 그 자체란 느낌적 느낌이 든다.” “대통령실에 일본 간첩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애비가 일본 문부성이 초청한 한국 최초의 일본 유학생이라더니, 심리적으로 부전자전이군.” “혹시 자신이 조선총독부 총독으로 온 것으로 착각한 것은 아닐까, 하는 느낌적 느낌이 든다.”
여러 비판 중 마지막 부분엔 실소가 나온다. 이참에 우리가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조선총독부에 대해 알아보고, 왜 네티즌들이 그런 말을 했는지 분석해 보자.
조선총독부, 왜 세웠나?
조선총독부란, 일제가 한·일 병합조약이 체결된 1910년에 조선의 경성부에 설치한 통치기관이다. 그 전엔 조선통감부였다가 한·일 병합조약이 이루어진 후부터 조선총독부로 개칭했다. 조선총독부는 일제가 패망하고 미군정이 들어선 1945년 9월까지 존속하다가 해체되었다. 총독은 일본 사람이었지만 그 밑에서 일하는 대신들은 대부분 조선인 친일파들이었고, 이완용이 그 대표적인 사람이다.
조선총독부는 일본 ‘천황’에게 직속되어 5부 9국의 체제를 갖췄다. 총독은 일제 육군이나 해군 대장 출신 중에서 임명되었다. 3.1 운동 후 일제는 문민 출신 총독을 보내겠다고 약속했으나 한 번도 그 약속을 지킨 적이 없다. 말하자면 일제의 군인이 조선을 통치했던 것이다.
조선총독부는 조선의 입법, 사법, 행정의 모든 정무를 총괄하였고, 내각총리대신을 경유하여 천황에게 상주, 재가를 받을 권리가 있었다. 천황에 대한 상주권이 중요한 이유는 대일본제국헌법이 국가 통치에 대한 천황의 전적인 대권을 규정했기 때문이다.
총독의 권한
조선총독부는 조선 내의 육군과 해군의 통수권자였다. 일본에 본국 정부가 따로 있었지만 일본 의회에서 독립되어있는 사실상 또 하나의 정부였던 셈이다. 그런데 일본은 조선에 제국 헌법을 적용하는 대신에 제국 헌법상 천황의 권한으로 규정된 '천황대권'을 총독이 위임받아 통치하게 하였다. 일본이 조선에 본국의 헌법을 적용하지 않은 이유는 식민지 주민들에게 본국 국민들과 동일한 권리를 주기 싫었기 때문이다.
일본 천황은 '제령'이라고 하여 법률 제정이 필요한 부분을 총독의 명령으로 시행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행정권을 가진 총독에게 사실상의 입법권을 준 것이나 다름없으며, 긴급한 경우에는 총독이 제령을 먼저 반포하고 사후에 천황에게 재가를 얻는 요식 행위를 거칠 수도 있게 하여 조선 내의 독립운동을 신속히 탄압할 수 있게 했다.
또한 총독은 재판소의 설립과 판사의 인사 관리를 담당했다. 따라서 사법부는 행정부의 관청이 되었고, 총독이 입법, 사법, 행정의 막강한 권한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총독은 조선에 주둔한 육해군 부대를 통솔하였고, 필요시 만주 지역에 군대를 파견할 수 있는 권한까지 가지고 있었다.
김영삼 정부 때 해체된 조선총독부 건물
우리가 흔히 조선총독부 청사로 알고 있는 경복궁의 건물은 1926년에 완공 되었다. 이 청사 건물은 해방 이후에도 각종 공공기관 건물로 사용되었다. 1995년 김영삼은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의 일환으로 조선총독부 건물을 해체하였다.
그 이유는 조선총독부가 조선통치의 상징인데다, 경복궁 앞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제는 일부러 조선의 얼을 짓밟기 위해 경복궁 앞에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었다. 박정희는 한때 중앙청이라 불리는 그곳에서 근무했다.
여운형, 김구 암살한 친일파들
조선총독부 마지막 총독은 아베 노부유키였는데, 그는 일본이 항복하자 조선에 남겨진 일본인들을 두고 도망갔다. 항복 직전 조선총독부는 국내에 남아 있던 민족 지도자 중 가장 명망이 높던 여운형과 접촉해서 행정권 이양 교섭을 진행하였다.
여운형은 해방이 되자마자 비밀리에 건국동맹을 조직했는데, 일제는 여운형이 자신들을 무사히 일본으로 보내주리라 믿고 협상을 한 것이다. 그후 조선총독부의 권한이 여운형이 이끈 조선건국준비위원회로 이양되었다. 그러나 여운형은 이승만 세력에 의해 암살되었다.
여운형 암살에는 미국 CIA가 개입되었다는 게 나중에 문서로 밝혀졌다. 김규식과 함께 좌우 합작 운동을 벌이던 백범 김구도 1949년에 육군 소위 안두희에 의해 암살되었다. 거기에도 미국이 개입했다. 미국이 자신들의 꼭두각시인 이승만을 세우고 그 반대 세력은 모조리 제거한 것이다. 대신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은 행정 각부 요직에 친일파를 80%나 임명하였다. 친일 경찰 노덕술이 의열단장 김원봉을 잡아다 뺨을 때리자 김원봉이 북한으로 가버리는 계기가 되었다.
조선총독부 건물 복원하려고 한 윤석열 정권
윤석열이 집권한 후 가장 먼저 하려 한 것이 조선총독부 건물 복원사업이었다. 박보균 문체부 장관이 윤석열에게 이를 보고하자 윤석열이 허락했으나 그후 여론이 악화되자 규모를 줄인다고 하더니 그래도 여론이 계속 악화되자 결국 포기했다.
그런데 왜 박보균 문체부 장관은 하필 조선총독부 건물을 복원하려 했을까? 그의 이력에 그점이 잘 나타나 있다. 박보균은 박근혜 정부시절 총리로 지명되었다가 친일 발언으로 낙마한 문창극과 함께 중앙일보 대기자 출신이다.
박보균은 친일 관련 여러 글을 썼는데,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한 게 아니라, 경영했다.”라고 말함으로써, 일본이 조선을 근대화시켰다는 식민지근대화론을 설파했다. 그 중심에 ‘뉴라이트’ 가 있다. 이명박 정부 때 결성된 ‘뉴라이트’는 지난 대선 때 대부분 윤석열을 지지했고, 정부 요직에 앉아 있다.
김태효 안보실 제1차장도 대표적인 친일파로 최근 벌어진 굴종적 대일외교와 빈손 한미정상회담도 그가 기획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명박 정부 때 국가기밀을 유출한 죄로 최종 유죄를 선고받았으나 윤석열이 사면복권해주었다. 끼리끼리 뭉친 것이다.
과거 일본군이 주둔한 용산, 우연일까?
윤석열은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이전하였는데, 용산은 과거 청일전쟁 때 일본군이 주둔한 곳이다. 일각에서는 현재 대통령실 건물이 있는 곳은 과거 공동묘지였다는 말이 있는데, 무속에 따르면 그곳에 자리잡으면 길하다는 말이 있다. 천공도 ‘정법강의’를 통해 그 점을 역설했다. 윤석열이 그 말을 듣고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겼는지는 알 수 없으나 무관해 보이지는 않는다.
혹시 윤석열은 자신을 조선총독부 총독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본국인 일본이 시킨 대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말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윤석열의 굴종적 대일외교를 무엇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지금 한국은 친일파가 점령했다. 따라서 내년 총선은 다시 한일전이 될 것이다. 제2의 동학이라도 일으켜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고, 청산하지 않은 역사는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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