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윤재식 기자] 지난 7월 인하대 캠퍼스 내에서 여대생을 성폭행하고 건물에서 추락시키고 별다른 조치 없이 범행 현장을 떠나 사망에 이르게 한 A 씨의 신상이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퍼져나갔다.
천인공노할 범행에 분노한 시민들이 공익적 목적이라고 판단해 해당 범인의 신상을 공개해 알리려는 의도였지만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현행법으로는 신상정보를 업로드 한 게시자들에게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적용돼 처벌이 가능하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형법 제307조1항에 규정된 것으로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단 형법 310조에는 ‘적시되 내용이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라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대한 예외 규정이 존재한다. 역으로 말하면 적시된 내용이 사실이라도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공익 목적’이라는 규정의 적용 범위와 판단 근거가 매우 모호할 뿐 아니라 국내에서 시행되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원칙적 금지, 예외적 허용의 형태를 취한다. 일단 사실을 적시했다면 그것이 실제 어떤 피해를 가져왔는지 와는 무관하게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으며 그 내용에는 내밀한 사생활뿐만 아니라 고소인의 가해 사실 등도 포함된다.
특히 명예훼손은 고소인의 의사에 반해 처벌할 수 없다는 ‘반의사불벌죄’이기에 고소인의 처벌 불원 의사가 수사와 재판 결과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친다. 그래서 명예훼손은 가해자나 권력자 쪽이 악용할 소지가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지난 2018년 미투 (Me too) 사건 폭로가 한창일 당시 피해 사실 폭로 등에서 가해자가 피해자들에게 ‘사실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맞고소하는 사례들이 발생하는 등 많은 문제들을 야기했다.
그럼에도 헌법재판소는 지난 2021년 형법 307조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과 앞선 2016년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제70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합헌으로 결정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는 지난 문재인 정권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국민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 확대를 위해 해당 법안을 폐지하는 개정안을 두 차례 발의하기도 했다.
먼저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지난해 7월22일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를 규정한 형법 307조1항과 309조1항을 폐지해 정당한 공익 신고자를 처벌하는 행위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내용의 형법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같은 당 박주민 의원도 지난해 9월9일 ‘진실한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는 불법정보의 한 종류에서 제외하고 처벌 대상으로 하지 않도록 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대표 발의 했다.
당시 법안을 발의했던 김용민 의원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부터 폐지해야 한다는 데 여야 의견이 일치된 상황”이라며 “정기국회 안에 신속하게 처리할 예정”이라고 말했지만 아직 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 여당인 국민의힘에서도 같은 취지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민의힘 조은희 의원은 26일 정보통신망에서의 사실적시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범죄 피해자가 그 피해사실에 고나하여 적시하거나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명예훼손죄로 처벌하지 않도록 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대표발의 했다. 동법은 기본법인 ‘형법 개정안’의결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함께 제출했다.
조 의원은 “일반적으로 명예를 가진 사라의 다수는 권력자나 재력가이고, 명예훼손죄로 고소당하는 사람은 서민이나 약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며 “사실적시 명예훼손이 지소될 경우 양육비 지급을 촉구하는 행위, 성폭력 피해를 호소하는 미투, 노동자가 임금 체불이나 직장 갑질 피해를 호소하는 행위 등 사회적 약자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권리를 제약할 우려가 있다”고 법안 발의 취지를 설명했다.
여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번 개정안으로 아직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사실적시 명예훼손’ 폐지에 대해서는 여·야를 초월한 초당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이번 국회 내 처리 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저작권자 ⓒ 서울의 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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