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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망하는 데는 요부(妖婦) 한 명이면 충분!

유영안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2/11/28 [12:11]

나라가 망하는 데는 요부(妖婦) 한 명이면 충분!

유영안 논설위원 | 입력 : 2022/11/28 [12:11]

 

 

미인계를 이용해 부와 명예를 쫓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요부(妖婦)란 요사하여 남자를 호리는 여자를 말한다. 조선시대에 요부로 소문난 사람은 장녹수, 김개시, 장희빈, 정난정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모두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되었는데, 그 이유는 모두 당대 권력자들과 부화뇌동했기 때문이다.

 

요부들은 대부분 미녀들로 흔히 경국지색(傾國之色)으로 통하기도 한다. 경국지색이란 임금이 혹하여 나라가 망해도 모를 정도로 뛰어난 미인을 말한다. 조선시대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여자의 미모에 취해 나라를 어지럽게 한 왕은 다수 존재한다.

 

여자가 뛰어난 미모를 가진 것은 복이다. 그러나 그 미모를 이용해 권력자를 유혹하여 조정을 어지럽히거나 나라의 운명까지 바꾸게 해버린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돈 있는 남자, 권력 있는 남자를 좇아 부와 명예를 누리는 일이 정당한 일일까.

 

조선 중기 척신 윤원형의 첩 정난정

 

오래 전에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여인천하에는 정난정이란 여자가 나온다. “뭬야?” 하는 대사로 유명한 이 드라마에서 정난정은 요부로 묘사되는데, 그래서 대부분 정난정을 부정적으로 인식한다.

 

조선시대 4대 사화 중 을사사화는 대윤 윤임과 소윤 윤원형 등 외척 간의 다툼으로 일어난 사건이다. 정난정은 타고난 미모와 재기로 소윤 윤원형의 첩으로 들어가 문정왕후를 보필하고 보우대사를 지원하면서 불교 중흥과 신분타파를 시도하여 강고한 유교 사회에 일대 변혁을 꾀했다.

 

정난정을 요녀로 비하한 사람들은 당대 사림들

 

정난정이 기존 유교 사회를 붕괴시키는 일을 자꾸만 하자 분개한 사림들이 그녀를 희대의 요녀이자 탕녀로 매도했다. 사림들은 천한 첩에 불과한 그녀가 남편 윤원형의 권세에 기대어 본부인을 독살하고 정실의 자리를 차지했으며, 을사사화를 배후에서 조종했다는 죄목까지 뒤집어 씌웠다.

 

조선시대를 지배하는 속담은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란 말이다. 그만큼 그 시대는 여자들이 나서 뭘 하는 것을 꺼려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정난정이 윤원형의 첩이 되어 불교를 지원하고 신분타파를 시도했으니 사림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조선시대에는 유교적 가치관에 도전한 사람들은 대부분 멸문지화를 당했다. <홍길동전>의 허준, 그의 여동생 허난설헌도 그랬다. 개혁가 조광조도 기묘사화로 제거되었다.

 

지금도 개혁가는 제거 대상

 

지금은 어떤가? 수백 년이 지금도 뭔가 세상을 바꾸어보려는 사람들은 여지없이 제거되었다. 그 사례는 차고 넘친다. 말하자면 아직도 이 땅엔 사색당파가 존재하며 권력을 쥐기 위해선 온갖 권모술수와 심지어 증거까지 조작해서라도 상대를 제거해버린다.

 

중종은 반정으로 연산군을 축출하고 왕이 된 사람으로, 재기 초부터 반정공신들이 득세해 왕권이 실추되었다. 세월이 흘러 반정공신들이 하나 둘 세상을 뜨자 중종은 조광조를 등용해 개혁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중종의 변심과 훈구 세력의 반격으로 기묘사화라는 역풍을 맞은 것이다.

 

중종 치세 중반 문정왕후의 척족인 윤임, 윤원형, 윤원로 등이 출사하면서 훈신과 척신 간에 치열한 권력투쟁이 벌어졌다. 이들의 승부는 윤씨 일가의 압승으로 귀결되었고 그 여파로 사림의 일부가 조정에 복귀했다.

 

정난정이 윤원형의 첩이 된 이유

 

문정왕후의 수태 불공을 드리려 봉은사에 갔던 윤원형이 보우대사의 소개로 정난정을 만났다. 정난정의 미모에 반해버린 윤원형은 정난정의 아버지 정윤겸에게 그녀를 소실로 달라고 간청했다. 하지만 그 말을 전해들은 정난정은 당신의 후사를 이어주면 나를 정실로 맞이하겠다는 서약서를 써주세요.” 하고 조건을 제시하였다.

 

이미 정실이 있었던 윤원형은 정난정의 태도에 매우 곤혹스러웠지만 그녀가 원하는 대로 서약서를 써 주었다. 당시 정난정은 윤원형이 유교의 근본주의에 물들지 않고 양반사대부들이 경멸하는 불교를 신봉한다는 점에 매력을 느꼈다.

 

정난정은 원치 않던 소실이 되었지만 당당하게 행동했다. 전통적인 반가의 여주인답게 질서를 잡으려 했던 윤원형의 본처 김씨는 정난정에게 기가 죽었다. 김씨로에게는 집안의 대를 잇지 못한 것이 커다란 약점이 있었던 것이다. 김씨는 남편 윤원형에게 소실의 건방진 행태를 고발했지만 이미 마음이 떠난 남편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윤원형은 본처인 김씨를 쫓아내고 정난정을 정실로 삼았다. 일찍이 그녀를 소실로 들일 때의 서약을 지킨 것이었다. 그 후 김씨는 가난과 모멸 속에서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정난정이 보낸 음식을 먹고 죽었다. 정난정에게 요녀이자 독녀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였다.

 

문정왕후는 수렴청정을 거두기 넉 달 전인 1553(명종 8) 3월 명종에게 윤원형의 첩에게 직첩을 주도록 하라는 명을 내리게 했다. 그리하여 정난정은 합법적으로 윤원형의 부인이 되었다. 1563(명종 18) 윤원형이 영의정이 되자 정난정은 정1품 정경부인으로서 외명부 최고의 위치에 올랐다.

 

파벌 유지하기 위해선 돈이 필요

 

예나 지금이나 조직이나 파벌을 유지하려면 돈이 필요한 법이다. 훗날 사가들은 정난정이 남편의 권력을 미끼로 매관매직과 뇌물을 받아 한성에 집이 15채나 되었다고 비난했다. 그 무렵 조선 팔도는 거듭된 흉년으로 유랑민이 들끓고 도적떼가 창궐하였다. 탐관오리의 창고에는 곡식이 썩어나가는데 백성들은 먹을 것이 없어 주린 배를 움켜쥐어야 했다.

 

1565(명종 20) 46일 문정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사림파는 기다렸다는 듯 척신세력의 상징인 보우와 윤원형을 탄핵했다. 이유는 관비의 소생인 정난정을 부인으로 삼았고, 그녀의 딸을 덕흥군의 아들에게 시집보내려 한 죄였다. 천출의 자식을 감히 왕가에 들여보내려 했다는 것이다.

 

탐욕의 결과는 죽음

 

권력을 누리던 윤원형은 벼슬을 삭탈당하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러자 정난정도 그와 동행했다. 그들은 명종이 자신들을 절대 외면하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오판이었다. 천출에 대한 양반들의 집요한 공세를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다.

 

정난정은 정경부인이 되었어도 천비는 끝내 천비인가 보다. 그래도 나는 정경부인으로 죽으련다.” 하고 갖고 있던 비상으로 미련 없이 목숨을 끊었다.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에 넋을 잃은 윤원형도 그로부터 5일 후 같은 방법으로 자살했다.

 

비록 정난정이 유교사회에서 불교를 중흥시키고 신분타파를 위해 힘썼지만 남편 윤원형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권모술수를 쓰고 재산을 긁어 모은 것은 죄악으로 그 결과는 죽음이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고, 청산하지 않은 역사는 반복된다. 나라가 망하는 데는 요부 한 명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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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민수 2022/11/28 [19:19] 수정 | 삭제
  • 논술위원의 주장에는 어폐가 있네요. 사진은 김건희고 들이받는 것은 정난정이라 논리적 문맥적 모순이 있네요. 또한 정난정이 미모가 뛰어나 경국지색이라고 인정할 수 있지만 김건희는 천박함의 극치이니 격에 안 맞는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니다. 허난설헌은 교산 허균의 여동생이 아닌 누님으로 정정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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