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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옥의 발품일기(2)

젯밥용 글쓰기가 일자리로  이어지다.

이명옥 | 기사입력 2011/10/18 [17:08]

이명옥의 발품일기(2)

젯밥용 글쓰기가 일자리로  이어지다.

이명옥 | 입력 : 2011/10/18 [17:08]
언젠가 고백했듯이 내가 글을 끼적이기 시작한 이유는 젯밥에 눈이 어두워서이다. IMF의 대란이 시작 된 후 보습학원 강사에서 창졸간에 실업자가 된 나는 수년 간 목숨 걸고 부어 온 적금이며. 보험을 해약해 생활비를 충당했다. 허리띠 졸라매며 억척스레 모았던 이천만원이 불과 7개월 만에 한 푼도 남지 않았다. 당시 대출금 1,500만원에 대한 원금 40만원에 이자 17만여 원 등 60여 만 원과 아이 유치원비 30여 만 원 각종 보험금과 공과금 생활비 등 200만원에 가까운 생활비가 들어가던 때였다. 내가 없어도 아이가 교육을 받을 수 있길 바라며 이를 악물고 아이 앞으로 만들어 놨던 300만원과 주택 저축, 나의 연금 보험까지 해약을 하고 마지막으로 아이 교육 보험 하나를 목숨처럼 붙들고 있으려니 정말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전 국민의 정보화를 지향해 그 뜻에 따라  학교마다 컴퓨터 교실을 만들어지긴 했지만 컴퓨터 활용 정도는 미미했다. 고작 한 달에 두어 번 컴퓨터가 있는 교실에 가서 간단히 그림이나 한 장씩 뽑아 보는 정도가 고작이었던 것 같다. 당시 아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따로 컴퓨터 사용법을 교육하는 교사도 없어 개인용 컴퓨터가 없는 아이로서 컴퓨터는 가장 큰 선망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나는 마지막  보험이 남겨 졌을 때   큰마음 먹고 아이의 교욱보험에서 300만원을 대출해 컴퓨터를 구입했다. 아이의 몫이니,그  돈마저  다 사라지기 전  단 한가지라도 아이를 위해 남겨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처음 한 달 쯤은 전화선을 시용했는데 속도는 느리면서 전화요금이 6만원이 넘게 나왔다. 기겁을 해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았더니 도무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두 달 고민 끝에 한 달에 사만 오천 원이나 하는 인터넷 전용선을 설치했다. 그런데 인터넷 서핑이나 하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것이 전부인데 한 달에 사만 오천 원씩 내는 요금이 여간 아까운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컴퓨터 포털 사이트 여기저기 이벤트에 응모해 경품도 타고 사이버 머니도 모으고 영화나 연극을 공짜로 볼 수 있는 방법도 찾는 것이었다. 응모에서 당첨되려면 짧은 에피소드나 기발한 사연 등 글을 적어내는 것이 훨씬 유리했다. 그것이 일기나 가계부조차 쓰지 않던 내가 잡글이나마 끼적이게 된 이유이다.
 
당시 인터넷 포털 사이트가 한참 생겨나는 중이었고 새로 생긴 포털사이트들은 고정 회원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이벤트를 실시했다. 여행사이트는 협찬 받은 호텔 숙박권이나 무료 승선권 등을 주기도 했고 영화나 연극 뮤지컬 등 다양한 문화 행사에 초대 받아 갈 수 있는 이벤트도 많았다. 감상평을 올리는 조건으로 책을  공짜로 보내주는 곳도 있었고 감평을 올리면 사이버머니를 적립해 마음대로 인터넷 쇼핑을 할 수 있는 곳도 있었다 그때는   6줄 이상의 독후감을 쓰면 1천 원의 사이버머니가 적립되는 사이트도 있었고 여행기를 올려 선정되면 호텔 숙박권을 주는 등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한 달에 이십만 원 정도를 벌어 썼다
 
 
그런 소소한 글쓰기를 통해 나는 오랫동안 닫아걸었던 마음의 빗장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고 일자리를 구하는데 도움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소소한 인터넷 글쓰기에 재미를 붙여 가던 중,  간단한 생활글을  쓸 수 있고 게시판을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한다는 시민단체의 광고를 보게되었다. 그것이 일자리를 찾던 내가 다시  직장 생활을 하게 만든 동기였고 우여곡절 끝에 나는  시민단체가 아닌, 여성신문사에 취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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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장애 사회문제에 관심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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