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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로는 안 될 나경원

당신 집이 불타고 있다면...

이기명 칼럼 | 기사입력 2019/04/09 [23:21]

사과로는 안 될 나경원

당신 집이 불타고 있다면...

이기명 칼럼 | 입력 : 2019/04/09 [23:21]
나경원의 산불 
 
초등학교 철부지 때 일이다. 미군 부대에서 불이 났다. 불 난 곳은 집에서 거의 이십여 리가 넘는 거리다. 동네 꼬마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한달음에 현장으로 달려갔다. 불을 끄러 간 것인가. 천만에다. 불구경 하러 간 것이다.
 
이 구경 저 구경해도 불구경과 싸움 구경이 제일이라고 한다. 현장에서는 휘발유 드럼통이 뻥뻥 터지고 불길은 하늘로 치솟고 소방관과 미군은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꼬맹이들은 신나게 구경을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말문이 막힌다.
 
1971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아침, 충무로에 있는 대연각 호텔에서 불이 났다. 163명이 사망하고 63명이 다쳤다. 1970년대 대표적인 재난이자 세계 최대의 호텔 화재로 기록된 사건이다. 호텔 창문에 대롱대롱 매달렸다가 지쳐 나뭇잎처럼 떨어지는 투숙객을 보며 눈을 감았다.
 
화재는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든다. 세계 화재 역사를 열거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눈앞에서 벌어졌던 강원도 산불을 말하려는 것이다. 산을 온통 시뻘겋게 태우는 산불. 불길이 미친놈 춤추듯이 돌아다녔다고 한다. 고성·속초·강릉·동해·인제 5개 시의 피해는 헤아릴 수가 없다.
 
정부는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하루아침에 집을 태운 이재민들의 고통을 어찌 헤아릴 수 있으랴. 온 국민이 힘을 모아 이재민들과 고통을 나누어야 한다. 그것이 인간의 도리다.

(이미지 - 팩트TV 영상 캡쳐)
 
■국민의 대표
 
산불이 강원도 지역을 휩쓸고 있을 때 국회도 열려 있었다. 당연하다. 국가가 재난을 당하고 있는데 국민의 대표가 가만히 있을 수가 있는가. 비상대책을 강구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게 정상이다. 과연 국회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국회는 운영위원회를 열고 국가의 ‘재난안전책임자’인 정의용 국가안보실장도 국회에 있었다. 강원도는 불길에 잿더미로 변해 가는데 국가안보실장은 3시간이 넘게 발이 묶여 있었다. 의원들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다.
 
전쟁 중에 지휘관의 역할은 승패를 좌우한다. 6·25 때 2군단장 유재흥은 군단을 버리고 도주했다. 지휘관이 없는 부대의 운명은 어찌 되었겠는가. 밴트리트 장군이 물었다. ‘장군의 부하와 장비는 어디 있는가.’ ‘모르겠습니다’ 중공군 1개 대대에게 군단 병력이 전멸당한 한국군이었다.
 
강원도 산불사태를 홍영표가 나경원에게 설명하고 정의용 안보실장을 풀어 달라고 했다. 당연히 허락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나경원은 아니었다. 이유는 외교가 더 중요하고 정의용이 자리에서 질문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당 정양석이란 의원은 “외교 참사가 더 크다”고 했다. 물론 나경원 의원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안보실장을 잡아 둘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 의원에게 비난의 폭포가 쏟아진다. 안타깝다.
 
외교도 전쟁이다. 외교전쟁에서 패하면 그것도 참사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우리 외교가 강원도에 산불처럼 활 활 타올라 잿더미로 변하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고의는 아니더라도 상황판단을 그렇게 못하는 국회의원이 딱하다.
 
민주당의 홍영표 원내대표는 상황의 심각성을 잘 알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경원에게 무릎을 꿇고라도 빌면서 정의용을 풀어달라고 애걸해야 했을 것이다. 아니 정의용도 도망갔다는 비난을 받더라도 의사당을 빠져나왔어야 한다. 그런데도 나경원 의원이 허락을 안 했을까.

(이미지 - 팩트TV 영상 캡쳐)
 
■나경원, 당신 집이 불타고 있다면
 
남의 염병(장티푸스)이 나의 고뿔(감기)만 못하다는 속담이 있다. 강원도가 잿더미가 되든 말든 외교 실패를 추궁해 정치적 실리를 챙기는 것이 더 이익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갖추어야 할 도리라는 것이 있다. 자기는 몰랐다고 하지만 이 말을 믿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핸드폰만 잠시 켜도 강원도 산불의 심각성을 초딩마저 다 알 정도였다. 만약에 나경원의 자택이 불타고 있었다면, 아니 나경원 부친의 학교가 불타고 있었다면 외교 참사를 이유로 의석을 지키고 있었을 것인가. 비유가 지나쳤는가.
 
천재지변은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재난이다. 그러나 인간은 최소한으로 줄일 방법을 구해야 한다. 더구나 국민의 대표로서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책임질 의무도 가진 있는 의원들이 아닌가.
 
■사과로는 안 될 나경원
 
나경원은 강원도 산불재난에 대해서 정부에 협조할 것을 약속했다. 당연한 소리다. 그러나 꼬리가 달렸다. 추경은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럴 때 한국당과 나경원이 해야 할 일은 정부가 하는 일을 무조건 돕는 것이다. 결과에 대한 책임은 정부가 진다. 이럴 때 한국당도 반대만 하는 정당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광대한 산악지역의 산불을 이렇게 빨리 진화한 것은 기적에 가깝다는 외국의 평가다. 밤잠을 못 자고 진화작업을 한 소방관들은 설사 그것이 자신들의 의무라 할지라도 고개가 절로 숙어진다.
 
정치권은 여야를 가릴 것 없이 국민에게 먹는 욕으로 귀가 따가울 것이다. 이제 의원들은 시간을 내서 이재민을 돕기 위한 봉사활동을 할 것으로 믿는다. 작업복으로 갈아입을 것이다. 망가진 집을 복구하는 데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다. 나경원·홍영표가 앞장 설 것이다. 국민들은 감동의 눈으로 지켜볼 것이다. 한국당 의원들이 앞장 서 한 달 세비는 의연금으로 쾌척할 것이다.
 
나서지 않는다면 초딩들이 나설 것이다. 요즘 초딩들이 얼마나 똑똑한지 잘 알 것이다. 그들에게 배우는 의원은 되지 말라.
 
이기명 저널인 미디어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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