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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의 걸작 '불이선란도' 등 국보급 보물 2대에 걸쳐 기부

한 점 한 점이 국보급 보물 304점, 수집가 손창근 선생 기증

정현숙 | 기사입력 2018/11/24 [12:07]

추사의 걸작 '불이선란도' 등 국보급 보물 2대에 걸쳐 기부

한 점 한 점이 국보급 보물 304점, 수집가 손창근 선생 기증

정현숙 | 입력 : 2018/11/24 [12:07]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문화재적 가치"

"추사의 걸작, 노블리스오블리제 실천으로 영원히 국립박물관에 깃들다"

손창근씨가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추사 김정희(1786~1856)의 ‘불이선란도’. [연합뉴스] 

 

노블리스오블리제를 제대로 실천한 참으로 훈훈한 소식이다. 가문에서 대를 이어 2대에 걸쳐 모아온 문화재급 소장품(손세기·손창근 컬렉션) 304점이 지난 21일 중앙박물관에 기증됐다. 

 

한 점 한 점이 국보·보물급이다. 수집가 손창근씨(90)가 부친이자 개성 출신 실업가인 석포 손제기 선생(1903~1986)과 함께 모은 유물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은 기증 유물 202건 304점 가운데 상당수가 지정문화재급이며 그중에는 국보·보물급도 많다고 평가한다. 그중 첫손으로 꼽는 유물은 추사 김정희(1786~1856)의 대표작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이다.

 

“제게는 여기에 있는 한 점 한 점이 모두 애틋하게 정이 든 물건들입니다. 그런데 이것들을 죽을 때 가져갈 수도 없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박물관에 맡기기로 했습니다.”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기증식에서 손창근(89)선생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그는 “우리나라의 귀중한 국보급 유물을 저 대신 길이길이 잘 보관해 주시길 부탁드린다”며 “앞으로 기증품에 ‘손아무개 기증’이라고 붙여 달라. 저는 그것으로 만족하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21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기증식에서 기념사를 하는 손창근 선생

 

이수경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은 “‘불이선란도’는 추사가 지향하던 이상적인 난초 그림의 경지를 실현했으며 학문과 예술이 일치하고 서화가 일치하여 화품과 인품이 서로 맞닿아 있다는 것을 보여준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불이선란도’는 그림보다 글씨의 비중이 더 많다. 발문은 모두 네 차례에 걸쳐 썼다. 그림을 그리게 된 동기와 방식, 그림의 주인이 바뀌게 된 사연을 알려준다. 불교적 초월성이 느껴진다.

 

이 작품의 제일 왼쪽을 보면 “처음에는 달준(達俊)을 위하여 거침없이 붓을 놀렸다. 단지 하나는 있을 수 있으나 둘은 있을 수 없다”라면서 “오소산이 보고는 빼앗듯이 가져가니 우습도다”라고 쓰여 있다. 추사가 원래 이 작품을 시중드는 아이(달준)에게 그려준 것인데 그후 제자인 오소산(오규일)이 빼앗아 갔다는 내용이다.

추사 김정희(1786~1856)가 만년에 그린 불후의 명작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와 15세기 최초의 한글 서적 『용비어천가 龍飛御天歌』초간본(1447년) 등이 포함됐다. 규모도 규모거니와 문화재적 가치가 어마어마하다. 손씨는 2005·2010년 두 차례에 이번 유물을 중앙박물관에 기탁한 바 있다. 이번에 ‘기탁’에서 ‘기증’으로 뜻을 굳힌 것이다.

 

박진우 중앙박물관 유물관리부장은 “지난 7월 소장자께서 박물관으로 갑자기 찾아와 ‘이제 내가 90세가 된다. 11월 24일 생일을 맞아 그동안 기탁한 소장품을 기증하겠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박진우 유물관리부장은 “이 컬렉션에는 값을 따질 수 없는 지정문화재급 명품이 많다. 앞으로 국가 지정문화재로 지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겸재 정선(1676~1754)이 그린 ‘북원수회도’.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중에는 겸재(謙齋) 정선(1676~ 1754)이 서울 북원(현 청운동)에서 마을 원로들의 장수를 기원한 축하 잔치 장면을 그린 ‘북원수회도(北園壽會圖)’가 수록된 『북원수회첩(北園壽會帖)』(1716년 이후)과 김정희와 청나라 문인의 교유관계를 보여주는 ‘함추각행서 대련(涵秋閣行書對聯·1831년 이전)’ 등도 있다.
 

                       추사 김정희의 글씨 ‘잔서완석루’.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이 중에서도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첫손에 꼽는 것은 김정희의 ‘불이선란도’와 ‘잔서완석루(殘書頑石樓)’다. ‘불이선란도’는 그림보다 글씨 비중이 더 큰 작품이다. 그림을 그린 동기와 방식, 그림의 주인이 바뀌게 된 사연을 적었다.
 
이수경 연구원은 “글씨와 그림의 배치 등에서 김정희의 뛰어난 공간 구성능력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불이선란도’는 추사가 지향하고 있는 이상적인 난초 그림의 경지를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그는 “거칠게 흩어져서 메말라 있는 그림 속의 난초는 난초라기보다 갈대에 가까워 보인다. 그림을 잘 그리겠다는 욕심 없이 마음을 비우고 다다른 선적인 경지가 보이는 걸작 중 걸작”이라고 말했다.
 

‘잔서완석루’ 역시 명작으로 꼽힌다. 붓끝에 무게감을 실어 시적인 문구를 담았다. 이수경 연구원은 “잔과 완, 서와 석 글씨의 대비가 강렬하고 그 의미가 깊어 읽는 이의 가슴을 울린다”고 말했다.

 

고 손세기 선생은 일찍이 고향 개성에서부터 인삼 무역과 재배에 종사한 실업가였다. 그의 아들 손씨는 서울 공대 졸업 후 공군을 예편하고, 60년대 외국인 상사에서 근무한 이후 사업에 매진했다.

 

손세기 선생은 생전인 74년 서강대에 ‘양사언필 초서’(보물 제1624호) 등 고서화 200점을 기증했다. 이어 선친의 나눔 정신을 이은 손씨는 2008년 국립중앙박물관회에 연구기금으로 1억원을 기부하고, 2012년에는 50여 년간 매년 자비로 나무를 심고 가꾸어 온 경기도 용인의 1000억원대 산림 200만 평(서울 남산의 2배 면적)을 국가에 기부했다. 88세가 되던 2017년에도 50억원 상당의 건물과 함께 1억원을 KAIST에 기부했다.

 

배기동 중앙박물관장은 “이번 기증은 박물관 차원을 넘어 대한민국 역사상 손에 꼽을 경사스러운 일”이라며 “우리나라 기증 및 기부 문화가 퍼져 문화강국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기증자의 뜻이 널리 알려지기 바란다”고 했다.

 

박진우 유물관리부장은 “부친이 박물관에 이미 기탁한 추사의 최고 명품 ‘세한도(歲寒圖·국보 180호)’만 이번 기증 목록에서 빠졌다”고 덧붙였다.

 

                                       용비어천가 초간본. [연합뉴스]

 또하나 중요한 유물이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이다.

‘용비어천가’는 조선 세종 때 선조인 목조·익조·도조·환조·태조·태종까지 6대의 행적과 조선의 건국 과정 및 관련 설화 등을 담은 장편 서사시이다.

 

1447년(세종 29년) 세종의 명으로 간행됐다. 권제(1387~1445)와 정인지(1396~1478), 안지(1384~1464) 등이 편찬에 참여했다. 총 125장의 노래로 이루어져 있다. 1445년 4월 한글로 지은 본문 뒤에 한문으로 주석을 달아 뜻을 풀이했다. ‘용비어천가’는 한글을 사용하여 간행한 최초의 문헌이다. 따라서 15세기 언어와 문학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이밖에도 17세기 명필 오준과 조문수, 18~20세기 내로라하는 서화가인 심사정·김득신·김정희·전기·김수철·허련·장승업·남계우·안중식·조석진·이한복 등의 작품 등도 기증됐다.

 

박물관은 손세기·손창근 부자의 기증 정신을 기리기 위해 상설전시관 2층 서화관에 ‘손세기·손창근 기념실’을 마련했다. 기념실의 첫 번째 전시는 김정희 서화에 초점을 맞춘 ‘손세기·손창근 기증 명품 서화전’(11월 22일∼내년 3월 24일)으로 불이선란도, 잔서완석루 등과 김정희 제자 허련이 그린 ‘김정희 초상’, 남계우의 ‘호접묘도’ 등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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