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재판부
어렸을 때 어른들이 말씀하시길 멀리할수록 좋은 것은 재판소(법원)와 측간(변소)라고 했다. 참, 처갓집도 포함했다. 한평생 법정 출입 한 번도 안 한 사람은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이명박·박근혜도 법원을 생각하면 머리를 흔들 것이다.
나는 다행히 죄지은 게 없어(걸린 게 없어) 판사 앞에 선 적은 없고 방청을 했지만, 결코 두 번 가고 싶은 곳이 아니다. 이런 곳에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판검사들은 행복한 사람인가. 대놓고 물어본 적이 없다.
요즘 특별이란 말 붙은 게 많다. ‘특위’, ‘특검’, ‘특수본부’. 그러다가 이제 ‘특별재판부’가 거론된다. 특별재판부가 등장한 이유는 다들 알겠지만 사실 오래전에 등장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법살인이라고 부르는 ‘인혁당 재판’이라는 게 있다. 재판에서 방망이 땅땅 두들기며 사형 때리고 다음 날 목매달았다. 세계 사법사상 찬란하게 빛나는 사법살인이다. 누가 재판을 했는가. 판사다. 지금도 멀쩡하게 두 눈 뜨고 살아 있다. 판결을 잘못했으니 ‘특별재판부’를 만들어 다시 대판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판사가 나오면 어떨까.
판사가 형을 때리고 난 다음에 피고는 무슨 생각을 할까. 대개는 억울하다고 할 것이다. 개판이라고 할 것이다. 판사는 그럴 것이다.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을 했는데 무슨 소리냐. 법과 양심이란 얼마나 좋은 소리냐. 그러나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을 했다는 재판이 국민으로부터 지탄을 받는다. 저걸 재판이라고 했느냐. 고시 공부는 술 먹고 했느냐. 판결에 대해 하도 시끄러우니 특별재판부를 만들자고 국회가 나섰다. 찬성하는 여론은 무려 80%다. 여·야 4당이 찬성하고 자유한국당만 반대다.
임종헌 구속영장 발부
법원행정처 차장을 지낸 임종헌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사법농단’의 주모자로 불리는 그는 과연 구속될 것인가. 검찰이 구속영장 청구에서 적시한 죄목을 보자.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직무유기, 공무상비밀누설, 허위공문서 작성·행사,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국고손실, 위계공무집행방해, 국회 위증…숨이 차다.
영장이 발부될 것이냐. 기각될 것이냐. 술 내기 하는 친구들이 많을 것이다.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은 영장이 발부되리라 생각할 것이고, 제 버릇 개 주느냐는 국민과 영장 발부는 판사의 고유권한이고 더 나아가 이판사판인데 갈 데까지 가자고 할 것이라는 국민은 영장 기각으로 판단할 것이다.
영장은 발부됐다. 임종헌은 수갑을 찼다. 사법농단 관련 판사구속 제1호다. 국민들은 환호했다. 아 그래도 법은 살아있구나. 법이 살아 있다구? 어디선가 코웃음 치는 소리가 들린다. 자업자득이란 말을 알 것이다. 자신이 싼 똥을 할 수 없이 치운 것이다. 법원행정처 출신 법관들은 귀를 막고 살았는가. 자신들이 개입한 사법농단이 지금 국민들로부터 어떤 분노를 사고 있는지 진작 알았어야 한다. 청와대를 끼고 저지른 사법농단은 차마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칼을 뽑은 김에
아는 국민은 다 안다. 이번 임종헌 구속에 가슴을 칠 인간은 바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다. 왜 가슴을 쳐야 하는지 설명을 해야 하는가. 스스로 잘 알 것이다. 그리고 또 있다. 법원행정처장 출신의 대법관인 박병대 고영한 등이다. 가슴도 멍이 들었을 것이다. 법원행정처가 쑥밭이 됐다. 이게 바로 자업자득이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사법기관이 엉망이라는 것은 이번에 증명이 됐다. 검찰의 비리는 세상이 다 안다. 그래도 판사들만은 좀 다를 것이라는 기대를 했다. 이번에 기대를 완전히 까먹은 것이다. 사법농단 관련 압수수색이나 구속영장 발부가 얼마나 되는지 보면 된다. 임종헌은 구속적부심사를 청구할 것이다. 풀어 줄 것인가. 기각할 것인가. 두고 볼 일이다.
이호진이라는 인물을 알 것이다. 기록의 사나이다. 병보석 8년이다. 8년 동안에 63일만 감옥 생활을 했다. 이 사나이가 누구신가. 태광산업의 회장이다. 그는 무슨 병으로 보석이 되었는가. 간암이다. 헌데 기막힌 일이 들통 났다. 술잔을 들고 담배를 꼬나물었다. 간암과 담배가 상극인 것은 애들도 다 안다. 대법원에서 파기 환송된 그가 보석이 유지되는 한 언제 끝날지 모르는 대법원판결까지 그는 룰루랄라다.
그에게는 대법관을 지낸 2명의 변호사를 포함해서 100명의 변호인단이 꾸려져 있다. 기막힌 일은 또 있다. 왜 재벌들은 구속만 되면 중환자가 되는가. 쌩쌩했던 재벌들이 환자복에 휠체어를 타고 다 죽어가는 시늉을 하며 법정에 나오거나 비행기에서 내리는 꼴을 보면 참 가관이다. 이건희, 정몽구, 김승현, 이호진과 그밖에 재벌들이 중환자 시늉을 하는 모습은 연기상 감이다.
법이 불신 당하면
특별재판부 설치가 비극임에는 틀림없지만 우리가 겪어내야 할 비극이다. 판사들도 오장이 썩어나는 고통을 느끼겠지만 역시 이겨내야 한다. 고시에 합격을 하고 법복을 입고 처음 법정에 섰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법과 양심에 따라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판사가 되기를 원했을 것이다. 지금은 어떤가. 역시 변함이 없을 것이다. 많은 법관들이 속으로 탄식을 할 것이다. 어쩌다가 우리가 이 지경이 됐단 말인가.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을 것이다.
고인이 된 법관 중에 존경하는 분들이 많다. 살기가 넘치는 군사독재 시절에도 굽히지 않고 정의를 위해 싸우던 법관들을 알고 있다. 지금도 수많은 올곧은 법관들이 한탄을 할 것이다. 그러나 한탄을 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싸워야 한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싸워야 한다.
김병준·이언주, 독해력 부족인가?
왜 ‘특별재판부’를 설치하느냐고 시비다. 제대로 재판을 하면 왜 설치하겠는가. 도저히 그냥 두고 볼 수 없으니까 특별재판부를 만들자는 것이다. 김병준·이언주는 “국회가 판사 뽑는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김성태는 인민재판이라고 한다. 제대로 알고 주장을 해야 한다. 특별재판부의 판사는 변호사협회와 판사회의 그리고 대법원장이 추천한 추천위원회가 현직 판사를 2배수로 추천한 뒤 대법원장이 임명하는 것이다. 법안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김병준 이언주는 독해력 부족인가. 공부 좀 해라.
지금의 법대로 하면 되지 않느냐고도 한다. 믿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초록을 동색이고 가재는 게 편이라는 불신 때문이다. 그래서 특별재판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공직자들은 권력을 쥔 자들이 어떻게 국정을 농단했는지 잘 알 것이다. 이명박을 등에 업은 권력의 부패와 박근혜 시대의 최순실 국정농단을 보라. 어떤 정권이든 권력이 국정을 농단하면 나라는 망한다.
이제까지 드러난 사법농단은 심각하다. 반드시 척결해야 한다. 특별재판부의 설치도 국민의 명령을 거역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국민의 뜻을 대변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국회의원에 당선된 의원들이다. 국민들과의 약속을 파기하면 어찌 되는가. 자신들이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거니와 지금 법관에 대한 국민의 믿음이 완전히 무너졌다. 뒤늦게라도 일말의 양심을 되찾길 바란다. ‘조직 보호’ 논리에서 벗어나, 그야말로 법과 양심에 따라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는 데 협조해야 할 것이다.
이기명 팩트TV 논설위원장 <저작권자 ⓒ 서울의 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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