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길동무가 돼주세요“ 정운현 비서실장 제안한 이낙연 총리"내가 부족한 두 가지를.. 역사에 대한 지식, 기개"
신임 국무총리 비서실장으로 5일 정운현씨가 공식 임명됐다. 지난 2일 총선 출마 준비를 위해 사임한 배재정 비서실장 후임이다.
정 실장은 30년 가까이 언론인으로서 활동했으며, 중앙일보에서 첫 언론인 생활을 시작해 대한매일(현 서울신문)을 거쳐 오마이뉴스 편집국장, 국민TV 보도부문 이사, 팩트TV 보도국장 등을 역임한 바 있다. 그는 특히 친일문제와 독립운동사를 연구해 수십 권의 책을 저술했다.
정 실장은 4일 밤 페이스북에서 이낙연 총리가 자신에게 비서실장을 제안한 일화를 상세히 전했다. 정 실장은 '민족대표 33인' 집필을 위해 새벽 다섯시까지 글을 쓰다 정오에 일어난 어느 날, 이낙연 총리로부터 오전에 전화가 왔음을 알렸다.
이 총리는 정 실장에게 "정부 서울총사 총리집무실로 와 달라"고 했으며, 정 실장은 이튿날 오후 이 총리를 찾아갔다. 그러면서 7년 만에 이 총리를 만나는 것임을 알렸다. 그는 자신의 저서인 < 조선의 딸, 총을 들다 > < 안중근家 사람들 > 두 권의 책을 들고 이 총리를 찾아갔다.
▲ 정운현 실장의 오마이 뉴스 블로그 "보림재 임종국을 받드는 서재" © 정운현 블로그
이 총리는 그 자리에서 정 실장에게 "길동무가 좀 돼 달라"며 "제 비서실장을 맡아달라"고 제안했다.
정 실장은 "아둔한 나는 '길동무가 돼 달라'는 말의 뜻을 단번에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새삼 놀랍기만 하다"며 "그런 얘기를 그렇게 멋스럽게 표현할 수도 있구나 싶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는 "총리 비서실장을 맡아달라는 제안은 전혀 뜻밖이었다. 사전에 그 누구로부터 어떤 언질도 없었다"며 "MB 정권 초기인 2008년 10월, 나는 언론재단에서 강제로 쫓겨났다. 이후 꼭 10년간 야운비학(野雲飛鶴)을 벗 삼아 초야에 묻혀 지냈다. 일개 서생인 나는 정치에 대한 감각도 없고, 책략가는 더더욱 아니다"라고 전했다.
그는 이 총리에게 "진짜로 두루두루 생각해보시고 내린 결론인가"라고 물었고, 이 총리는 "그렇소. 정치인, 관료, 심지어는 언론계 출신 인사도 두루 고려해봤소"라고 답했다.
정 실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이미 결정을 내려놓고 한사코 사양을 할 수만도 없었다. 그렇다고 잘 알지도 못하는 일을 덥석 수락을 하기도 또 그랬다"고 심경을 밝혔다.
이 총리는 "내가 부족한 두 가지를 가진 분이오. 그러니 나를 꼭 좀 도와주세요"라며 "하나는 역사에 대한 지식, 또 하나는 정 형의 기개"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냥 하는 얘기가 아니다. 이건 내 진심이오"라며 거듭 비서실장을 맡아줄 것을 요청했다고 정 실장은 전헀다. 그런 간곡한 요청에 정 실장은 비서실장 자리를 수락했다. 그러면서 서로 당부, 부탁을 나누었음을 알렸다.
정 실장은 귀가 중에도 '길동무가 돼 달라'는 이 총리의 한 마디가 "내내 귓전에서 맴돌았다"고 전했다. 그는 과거 참여정부 출범 초기 정찬용 당시 인사수석이 "주로 대통령 말동무가 돼 드리고 있다. 외로우신가 보다"라고 말했던 일을 회상했다.
그는 "지금 생각해보면 정 수석의 그 때 그 말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높은 자리에 올라 갈수록 외로운 법이다. 주변에 사람이야 차고 넘치지만 높은 사람의 '말동무'는 그리 흔치 않다. 길동무, 말동무. 내가 보기엔 둘 다 같은 말 같다"고 전했다.
정운현 실장은 친일문제와 독립운동사를 오랜기간 연구해왔으며, 저서로 < 친일파는 살아 있다 > < 친일 숭미에 살어리랐다 > < 친일파의 한국 현대사 > < 조선의 딸, 총을 들다 > < 임종국 평전 > < 묻혀 있는 한국 현대사 > < 반민특위 재판기록 > < 안중근 가 사람들 > 등이 있다.
그는 또 소설집인 < 작전명 녹두 > < 혜주 > 와 실용서 < 어느날 백수 > < 쓴맛이 사는 맛 > < 정이란 무엇인가 > 등도 집필했다. 최근에는 상지대에서 초빙교수로 < 일제하 독립운동과 친일파청산 > 이란 주제로 강의를 맡기도 했다. <저작권자 ⓒ 서울의 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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