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출범 후 다들 개혁을 얘기한다. 어느 시절에서나 있었던 일이고, 지극히 당연한 얘기다. 멀리는 왕조시대에도 있었고, 대한민국의 역대 정권이 출범할 때마다 내걸었던 구호이기도 하다. 그러나 작금의 사정은 좀 다른 것 같다. 개혁을 입에 올리는 사람들은 구체적으로 ‘적폐청산’을 든다. 마치 이 정부 들어서 화두가 된 듯하다. 그만큼 해묵은 폐단, 즉 적폐(積弊)가 많고 심각하다는 얘기일 것이다.
막상 적폐 얘기를 꺼내고 보면 눈앞이 캄캄할 지경이다. 우리사회에 성한 곳이 단 한 군데도 없어 보인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외교, 국방, 보훈 등 어느 한 곳도 정상적인 곳이 없다. 구태와 비리가 만연돼 있고, ‘갑질’로 상징되는 기득권이 팽배해 있으며, 배타와 차별, 이기주의가 곳곳에서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다. 급기야 성난 촛불민심은 문재인 정부를 출범시켰고, 적폐청산을 제1의 과제로 안겼다. 따라서 적폐청산은 시대적 소명이요, 문재인 정부의 성공의 가늠자가 될 것이다.
적폐는 그 양태가 실로 다양하다. 소소한 것에서부터 대형 비리와 구조적인 악에 이르기까지 천태만상이다. 지난 몇 년간 5.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를 수가 없었다. 보훈처장 한 사람 때문이었다. 금년 5.18 기념식 때는 대통령 이하 참석자 전원이 목이 터져라 이 노래를 불렀다. 세월호 참사 당시 학생들을 구하다가 숨진 기간제 교사들이 그간 ‘순직’ 처리가 되지 못했다. 이유는 그들이 공무원 신분이 아니라는 것. 최근 문 대통령의 지시 한 마디로 문제가 해결됐으니 이 또한 웃기는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사소하다면 사소한 것인지 몰라도 당사자들에게는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이었던 셈이다. 그야말로 ‘관(官)의 민폐’라고 하겠다.
새 정부 출범 후 논의돼온 적폐청산이 마침내 신호탄이 올랐다. 그 출발은 방산비리 척결로부터 시작될 모양이다. 지난 14일 검찰은 한국항공우주(KAI)에 대해 전격 압수수색에 나섰다. 이는 이명박 정권의 대표적 문제 중 하나로 지목해 온 방산비리를 검찰이 처음 정조준 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유세에서 “이명박 정부에서의 4대강 비리, 방산 비리, 자원외교 비리도 다시 조사해 부정축재 재산이 있다면 환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수사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지휘하는 첫 번째 대형비리사건이어서 결과가 주목된다.
그간 적폐청산, 즉 개혁대상의 상징으로 인구에 회자돼온 것은 검찰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유례를 참기 힘든, 무소불위의 권력집단인 검찰의 개혁문제는 정권교체 때마다 단골메뉴로 거론됐다. 그러나 여태 백년하청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새 권력이 검찰과 야합을 하면서 개혁을 눈감은 탓이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이랄까.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의 검찰은 달라질 것인가? 청와대 민정수석과 법무장관에 비(非)검찰 출신이 발탁됐다. 이들은 법무부의 탈(脫)검찰화를 강조하고 있다. 새 검찰총수도 이에 호응할만한 인물로 알려져 있어 기대를 걸만하다고 하겠다.
타 부처들도 적폐청산에 보조를 맞출 인사가 단행됐다. ‘백년지대계’의 교육부 수장에는 ‘개혁교육감’ 출신이, 국방부 수장에는 사상 첫 해군 출신이, 외교부 수장에는 비(非)외무고시 출신의 여성이 파격적으로 발탁됐다. 개혁을 하려면 우선 기존의 해묵은 판을 걷어 내고 새로 판을 짜야 한다. 이 하나만으로도 구태에 찌든 조직은 일거에 흔들리고 만다. 개혁의 시작은 인사에서 비롯한다. 사람 하나를 잘 써서 조직을 살린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좋은 사례는 과감하게 벤치마킹해서 배워야 한다.
개혁에는 걸림돌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익숙한 것, 편한 것을 추구해온 기득권자들이 그들이다. 새 정부의 탈 원전(핵) 방침에 대해 원전 마피아들이 노골적으로 반발하고 나섰다. 비단 이들만이 아니다. 각 분야의 기득권 세력들이 조직적으로 개혁의 길을 막고 나설 조짐이다.보수야당은 정치보복 운운하며 거드는 모양새다. 적폐들의 적반하장식 반발을 두려워할 필요 없다. 오로지 국민만 보고 뚜벅뚜벅 나면 그뿐이다. 깨어있는 국민은 적폐의 편이 아니다. 이번엔 적폐청산의 산을 반드시 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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