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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세상은 온통 민주화 항쟁의 열기로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지만, 그때만 해도 권력에 매여있던 신문사의 일개 스포츠 담당 기자는 속절없는 무력감 속에서 부끄러운 하루하루를 보낼 뿐이었다.
어느 날 나는 가까운 동료와 함께 신촌으로 나갔다. 내 스스로에 대한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모멸감 때문에 나선 길이었건만,
처음부터 나는 슬그머니 군중 속에 숨어들어가 절반쯤은 구경꾼으로 가장했다. 보이지 않는 권력으로부터의 위협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컸다.
신촌에서 출발한 시위대열이 차도를 가득 메운 채 아현동을 지나, 서소문을 지나, 시청으로 향할 때도 나는 여전히 보도를 걷는 행인의 한 사람으로 보여지길 원했다.
그러나!! 시청 광장에 도착했을 때 나는 더 이상 구경꾼이나 행인으로 가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광장에는 이미 나처럼 넥타이를 풀어헤친 수십만 인파가 너나 구별없이 한 덩어리로 뭉쳐 있었다.
그건 더 이상 소외된 시민들의 단순집합이 아니었다. 멈춰 선 역사의 수레바퀴를 다시 굴리기 시작하려는 거대한 힘이 용솟음치고 있었다. 그 굿에서 나는 다시 용감할 수 있었다.
‘권력의 헤코지’라는 30년 전의 공포심은 없었지만 권력의 횡포에 대한 분노는 다를 것이 없었다. 오히려 이런 부도덕한 권력은 반드시 끌어내려야 한다는 의지는 그때보다 훨씬 더 강고했다.
이 분노와 의지야말로 30년 묵은 숙제를 마친 원동력이었다. 그 결과, 이기고도 뭔가 암울했던 그때와 달리 30년 후의 오늘
6월10일은 희망에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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