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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투표할 것인가

'운동의 구호'와 '현실'을 분별해야...

박성수(둥글이) | 기사입력 2017/04/23 [01:04]

어떻게 투표할 것인가

'운동의 구호'와 '현실'을 분별해야...

박성수(둥글이) | 입력 : 2017/04/23 [01:04]

  박성수(둥글이)

어떤 후보를 지지했고 지지하던, 그러한 선택에 자신의 주체적 실천의지가 가미되지 않은 것은 노예적 근성의 연장일 따름이고 사회 개혁에 걸림돌이다.

이러한 행태는 현재 문재인, 이재명, 심상정 후보를 지지하는 시민들에게서 전반적으로 보이는 모습인 듯 하다.

▉ 문재인 지지자의 경우 - 문재인 후보 지지자 중에는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면 세상이 변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고 열광하는 이들이 있다. 이는 '문재인을 차악으로라도 여겨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해 갈등하고 있는 이재명, 심상정 지지자들의 짜증을 고조시킨다. 문재인 후보도 집권하면 우리가 견제해야할 '권력자'일 따름이다. 따라서 문재인 지지자들은 그간 문재인이 중도표를 의식해서 어쩔 수 없이 우클릭 하향 조정한 공약들을 어떤 식으로 되돌리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면밀한 고민과 배려로 잠재적 아군들(이재명, 심상정 지지자들)을 다독여야지 '문빠' 소리 듣는 수동적 맹목에 침잠 해 있어서는 안 된다.

▉ 이재명 지지자의 경우 - 수동적 맹목성이라는 차원에서는 상당수의 이재명 지지자들이 보이는 모습 또한 빼 놓을 수 없다. 이들은 아직까지 이재명만을 되뇌이면서 과거에 발목 잡혀 앞으로 나아가기를 포기한 듯 보일 정도이다. 단순히 '이재명 떨어져서 아쉽다'의 차원이 아니라 '이재명이 아니면 안 되었다. 문재인으로는 안되니 미래는 없다. 우리의 미래는 끝났다.'는 황당한 발상을 하는 이들이 상당수이다. 이들의 사고는 원시 신앙과 몹시 닮아 있다. '세계는 악으로 가득 찼는데, 그 악을 징벌할 존재는 오직 저분 밖에 없기에 우리는 저분을 추앙해야 한다.'는 식의. 거기에 어떤 '주체적' 실천과 행동도 없다. 오직 그분만 '찬양'만 하면 된다. 그렇기에 이재명이 경선에 떨어졌건 말건 아직까지도 문재인 떨어트리기 위한 이재명 찬양에만 목을 매는 것이다.

정말 답답한 모습이다. 이재명 같이 아직 지지 기반이 확실하지 않은 진보가 대선후보가 되기를 염원했다면, 그야말로 목숨 걸고 이재명을 띄워줄 사람이 100명은 나와야 했다. 이는 단순히 수사적 표현이 아니라 '난 이재명이 대통령 되기를 원한다'면서 한강에 뛰어 내릴 사람이 100명은 나왔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지지기반이 미약한 이재명이 그나마 대선후보가 될 가능성을 높일 방법이었다. 그게 바로 이재명의 노예로서가 아니라 '주체적 유권자'로서 이재명 지지자들이 이재명을 세우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었다.

물론 이재명 지지자들은 '우리도 할만큼 했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 '할만큼 했다'는 말이 문재인 후보 지지자들보다 더 열성적이었다는 말인가? 좀 돋보이는 부분이 있었지만 나는 거기에 별다른 비교우위를 보지 못한다. 박사모의 열정을 보라 그들은(일부 일당 받는 이들 빼고는) '진정으로' 목숨 내던지며 불구덩이라도 뛰어들 작정을 하고 있다. 이재명 지지자가 박사모보다 더 열정적이었냐 말이다.

이 얘기는 나 역시 이재명을 지지했던 이로서 이재명 지지자들을 폄하하려고 쓰는 얘기는 아니다. 이재명이 경선에 떨어진지가 언제인데, 아직까지 이재명 타령 하면서 '문재인은 안돼, 이재명 살려내'라는 따위를 쏟아내냔 말이다. 그 정도의 간절함이 있었다면 차라리 민주당 후보 경선 중에 지지율 1%라도 올릴 생각으로 '이재명 뽑아라'며 한강에 투신을 했어야지, 다 끝난 일 아직까지 '죽은 자식 부랄 만지고' 있느냐는 것이다. 특히나 이번에 문재인이 집권하면 다음번에 이재명이 대선후보로 출사표를 낼 기회라도 얻을 수 있지만, 현재와 같이 문재인을 보이콧 해서 안철수가 대권을 얻으면 이재명은 차후에 그럴 기회마저도 얻기 힘들다. 그런데 그들은 이런 간단한 판단도 안 되는 것 같다. 맹목적 충정의 결과이다.

나는 이것이 '주체적 실천'은 없고 '구원자만을 염원하는 한국 정치의 대표적 병폐'라고 여긴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이재명이 대통령 되도 말짱 도루묵이다. 그런 분위기에서 이재명이 대통령이 된다면 '이재명이 알아서 잘 하겠지'라며 맹목하거나, 혹은 이재명이 실정하면 급 실망하여 또 다른 '구원자'에 목을 맬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주체'가 빠진 시민의식의 폐해이다.

몇몇 이재명 지지자들은 근본적으로 민주주의가 그 구성원 각각의 '주체적 실천'에 의해서 성장한다는 사실도 모르는 것 같다. 또한 '주체적 실천'이라는 것이 기껏 본인들이 '이재명 지지합니다.'라는 목소리를 크게 내는 것 쯤으로 여기는 듯 하다. 그런데 거듭 말하지만 이재명 지지자에게 격이 맞는 그 '주체적 실천'이란 이재명 시장 같은 이가 그의 정책을 펼칠 수 있는 단단한 하부구조(정치, 경제, 사회, 문화 )의 기반을 닦는 것 이다. 그렇기에 기껏 이재명 시장 지지 하는 목소리 좀 냈다는 것에 자신의 '사회적 책임'을 다했다고 여기며, 현 상황을 증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재명 시장이 대통령 후보가 안 된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이재명의 열렬한 지지자인 당신이 목숨을 내놓지 않은 이유가 크기 때문이다.

▉ 심상정 지지자의 경우 - 심상정 후보를 지지하는 일부 지지자들에게도 비슷한 모습이 보인다. 심상정 후보에 대한 지지는 그야말로 '우리사회가 지향해야할 평화-평등 세상의 스펙트럼'을 넓히기 위한 '운동구호'로서 가치 있는 것이지, 작금의 우리사회의 토대에서 심상정이 대통령이 되는 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는 앞서 이재명 지지자들에게 있어서의 '주체적 실천'이 부족해서 대통령 후보가 되지 못한 것과 같은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정의당 당원들이 여느 당에 비해 실천적 활동을 월등히 잘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일부 심상정 지지자들은 문재인을 박근혜와 다를 바 없는 '절대악'으로 규정하고 '문재인은 절대 안돼. 심상정 아니면 안돼'라는 도식으로 문재인 표를 끌어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작금의 상황에서 문재인에게 갈 표가 20% 정도 심상정 후보에게 가서 안철수가 당선되었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정의당의 '운동의 구호'를 실현할 토대는 안철수가 차분히 망가트릴 것이다. 이는 '운동의 구호'와 '현실'을 분별하지 않고 '절대적 지지자'에 맹목한 결과의 불이익인 것이다.

물론 이런 나의 주장에 대한 흔한 반발은 '그런 식으로 타협하니 결코 이 나라에 진보가 자리 잡지 못한다.'는 것인데, 이 또한 '주체적 실천'을 빼 놓고 오직 '지도자'에게 맹목하니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발상이다. 각각의 '주체적 실천', '목숨 건 활동'을 통해 심상정 같은 이가 대통령이 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낼 생각은 하지 않고, 그러한 토대가 닦여 있지 않아 심상정의 지지도가 낮은 것은 고려하지 않고, '심상정은 대통령이 되어야 해'라는 맹목적 바람이 실현되기를 바라는 것은 그야말로 '로또' 맞고 싶은 도둑놈 심보고, 근본적으로 이 사회가 진보하 위해 인간의 주체가 어떻게 작용되는지에 대한 인식 자체도 부재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 말을 달리 하자면 '심상정 같은 이를 대통령 만들 수 있는 토대'를 만들기 위해 '주체의 실천'이 접목되는 기반을 잘 닦는다면 정의당의 지반은 갈수록 넓혀질 것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저변이 더 줄어들 것임의 경고이기도 하다.

이 말은 심상정에게 표를 주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심상정을 찍으라! 하지만 그것이 작금의 상황에서 '운동의 구호'로서 진보의 스펙트럼을 넓히기 위한 투표행위인지, 정말로 '절대악 문재인을 타도하고 절대선 심상정을 대통령 만들기 위한 방법론'인지는 구분하라는 말이다. 최소한 그러한 구분은 하면 후자는 지양할 수 있다는 말이다.

- 위의 세 부류 지지자들에게 공통적인 문제는 바로 '주객의 전도'라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껏 '지도자'들을 상수로 놓고 사회 현실을 판단하고 미래의 비젼을 꾸려왔다. 하지만 상수는 '각자의 주체'이고, '지도자'는 변수 임을 '처절히' 인식해야 한다. 이는 '국민이 주인이다.'는 말은 많이 하지만 주인같은 국민이 별로 안 보이는 현실을 개선할 기회이기도 할 것이다. 이 미묘하지만 근본적인 차이를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면 우리는 노예생활을 결코 끝낼 수 없다. 지도자가 바뀌어봤자 각자의 주체가 그 모양이면 말짱 도루묵이 된다는 말이다. 김대중, 노무현 10년이 이명박 집권 한 달만에 무너진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는가.

'각자의 일상 속의 실천'을 사회 진보의 기반으로 삼지 않고, 본인이 일상에서 하지 못하는 어떤 것을 대신 지도자들이 해주기를 염원하고 맹목하면서 '우리 지도자가 잘났네.' 하는 싸움에 침잠하는 이들은 차라리 정치보다는 종교활동을 하라고 권하고 싶다. 신앙과 정치가 맥이 닿아 있어 양자를 헤깔려 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되는데, 그런 분들의 깊은 믿음은 차라리 교회 안에서 발산되는 것이 사회를 위해서 바람직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지도자도 필요없고 선거도 필요 없다.'면서 무정부주의를 피력하는 이들도 나는 신뢰하지 못한다. 그 정도의 말을 하려면 스스로가 자신이 존재하는 영토의 '왕'으로 사는 당당함이 있어야 되어야 하는데, 그 대부분은 어줍쨚은 객기 이기 때문이다. 하여간 앞서서 부터 봐온 이 모든 사례가 '말만 많이하고 제대로된 주제적 실천은 않는 세태'에서 빚어진 것이기에 나 역시 일상에서의 작은 실천을 등한시 하지 않는지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자. 그러면 장황한 소리 말고 이에 대해서 어쩌자는 것이냐?! 고 묻는 이들을 위해 정리하고자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재명 시장만큼 심상정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으로서 심상정 후보에게 투표함으로 '평화-평등의 정치적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는데 일조'하겠지만, 문재인이 안철수와 박빙의 승부를 겨룰라 치면 문재인에게 표를 던지겠다. 물론 그렇게 만들어진 '그 수준의 토대'에 만족하지 않고 그 토대 위에서 심상정 후보 같은 이들이 다음 대선에 힘을 받을 수 있도록 주체적 실천을 이어가겠다.]

하지만, 아쉽게도 본인은 비리 공직자 후보 규탄하다가 선거권이 박탈된 이유로 그 한 표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좀 더 면밀한 분석을 하고 싶지만, 팔꿈치가 깨져 기브스 한 팔이 쑤셔 오늘은 이정도로 한다.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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