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전문가로 유명한 '윤무부' 박사. 80년대 이후 최고의 환경 생태 전문가로 TV브라운관에 수도 없이 출연한 이 양반을 보면서 30대 이상은 자연과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얻었었다.
하여 뜬금없이 박사모 집회에 나서서 계엄령 발동하라는 피켓을 메고 있는 것에 적지 않은 실망과 분노를 느끼는 이들이 많을 듯 하다.
그런데, 사실 이 양반은 원래 그런 양반이었다. 이 양반은 생태 박사 간판을 이용해서 소중한 생명을 도매금으로 팔아 넘기는 장사치나 마찬가지인 사람 이었다.
그 메커니즘은 지극히 단순하다. 기업은 난개발사업을 하려 하면서 요식적으로 환경영양평가 용역을 이양반에게 맡기곤 하는데, 이 양반은 대충 조사해서 사업에 차질이 되지 않을 동물 목록만 환경영향평가서에 올려 놓는 다.
틀림없이 그 곳에 살고 있는 생물들이 이 생태전문가의 눈에는 안보이는 것이다. 결국 그렇게 만들어진 환경영향평가서로 황조롱이와 까치가 둥지 짓던 초목은 베어지고, 고라니와 삵이 뛰어놀던 산야는 파헤쳐지며, 평화와 생명의 공간에는 콘크리트가 들이 부어지는 것이다.
(가령 비근한 예로 내가 살던 지역 군산 옥구염전 부지 옆에 골프장이 들어서려고 할 때, 윤무부 교수가 대충 와서 보고 실지로 사는 동물들은 쏙 빼놓는 환경영향평가서를 작성해서 골프장 사업이 날개를 달고 진행 된 적이 있다. 환경운동가 오동필과 함께 옷 찢어지는 수모를 당하며 골 <프장 반대를 외치며 윤무부에게 이를 갈았던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이 양반은 그야말로 '건설업자의 수호자'가 되어갔다. 이에 따라 자본가들의 로비를 받은 신문과 방송에서는 그를 생태전문가로 띄워주는데 여념이 없었고, 그 결과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새전문가이 자 환경전문가가 되어서 '땡언론'의 단골 손님으로 나설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면 그럴 수록 그가 만들어내는 난개발을 가능케 하는 환경영향 평가서의 권위는 더해갔다.
생각해 보라, 8,90년대 정부에서 앞장서서 난 개발에 힘쓰던 때에 정부에서 할 일 없다고 '환경보호론자'를 띄워줬겠는가? (물론 그렇더라도 그의 인생 전반에 이런 저런 잡다한 환경보호 활동을 해왔음의 성과를 부인할 수는 없다.)
하여간 이렇다보니 오죽했으면 그를 가르킨 스승이 '윤무부는 내 제자 아냐'라는 말 을 했다고 한다. 대한민국 환경생태학 분야의 대표적인 치부가 바로 윤무부 인 것이다.
이러한 자세한 내막을 알지 못할 80, 90년대 향수를 가지고 있는 분들은 윤 무부가 변절?한 것에 대해서 상당한 충격을 받으신 듯 한데... 놀라실 일 없다. 저 인간은 원래 저럴만한 인간였다.
계엄령 발동하라고 소리칠 만한 삶을 초지일관하게 살아온 인간였다. 무구한 시민들에게 군인이 총질하라고 선동할 만한 삶을 살아온 인간였다. 생명과 평화 자유의 가치보다는 개발과 독재, 파괴의 가치를 중시해온 그런 이였다.
출처 :길위의 평화 원문보기 글쓴이 : 둥글이 <저작권자 ⓒ 서울의 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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