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종종 하는 얘기지만, 운동판을 자기 히스테리 풀어내는 장소쯤으로 여기는 이들이많다. 나는 그들 때문에 운동판이 균열을 일으키고, 민주진보운동의 누수가 가속화 될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따라서 이런 이들을 ‘걸러내는 씨스템’을 발달시키지 않으면 운동에 미래가 없다고 여긴다.
이들은 평소에는 동료들과 잘 지낸다. 오히려 이들은 평소에 사람들에게 과도하게 살갑고 따스하며 인간적인 모습으로 접근한다. 하여 사람들은 자연스러운 관계 속에서 그들과 융합하여 한 덩어리가 되는데, 충분히 인간관계가 무르익었을 때 본색을 드러내서 내장된 폭탄의 역할을 한다. 이렇다보니 조직이 산산히 와해된다.
그들은 사람들과 잘 지내가다도 특정한 ‘스위치’가 켜지면 자신의 통제하지 못하고 과대망상, 피해망상, 결벽, 히스테리 등의 증상을 쏟아낸다. 그게 상대방의 문제라기보다 자기 내부 문제인지 인식을 못하다보니 사건이 극단적으로 치닫는 경우도 있는데, 자신이 정의의심판관인양 나서면서 상대방을 인간적 도덕적으로까지 단죄하기도 한다. 나는 근본적으로그들을 같은 편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오히려 일베들보다 더 무섭게 우리의 발목을 잡고 내분을 일으킬 시한폭탄이기 때문이다.
입장이 다른 반대편 사람들에 대해 수시로 이런 저런 ‘해결할 수도 없고 해결되지도 않는막연한 불만을 끊임없이 쏟아내는’ 이들. 운동권 내의 어떤 갈등관계에 있는 상대에 대한인간적 모멸이나 도덕적 단죄의 표현이 습관화 된 이들(상대를 비판은 할 수 있지만 그들의언어 쓰임은 늘상 ‘단죄’의 방식이다.). 과도한 일반화와 합리화로 문제를 해석하는 것이 습관이 된 이들. 자신의 주의와 개념, 가치와 성향을 지극히 미묘하고 집요한 방법으로 남들에게 강요하는 이들이 주로 그런 이들이다.
가뜩이나 이런 이들이 보통사람들에게 잘 안 보이는 것은, 추잡한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더러운 이미지를 세탁하기 위해 복지시설에 라면박스 들고 가듯, 이들 역시 ‘사회부조리’에 대한 문제를 끊임없이 포스팅 하면서(때론 병적으로 포스팅함) 자신들의 치우친 주관성을 탈색하기 때문이다.
일명 사회운동 하는 이들이 이런 사람들을 보는 시야를 먼저 기르고 이를 걸러 내는 시스템을 만들지 않으면 운동의 미래는 없다.
출처 :길위의 평화 원문보기▶ 글쓴이 : 둥글이 <저작권자 ⓒ 서울의 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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