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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민 자본주의 - 누가 개 돼지인가?

"이런 사회구조 속에서는 정의로운 인간 하나를 찾기가 어렵다" 

서울의소리 | 기사입력 2016/07/29 [12:30]

천민 자본주의 - 누가 개 돼지인가?

"이런 사회구조 속에서는 정의로운 인간 하나를 찾기가 어렵다" 

서울의소리 | 입력 : 2016/07/29 [12:30]

빠른 시간 내에 급속도로 경제 성장을 이룩한 위대하고 위대한 대한민국의 한 국민으로서, ㅜㅜ  특히 외국에 나와있을 때  이 나라의 국민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면 앞이 캄캄해집니다. 정치계, 언론계, 법조계, 경제계, 의료계, 교육계, 종교계 모두 자본의 힘에 포섭되어 있습니다. 정치계와 종교계는 그렇다 하더라도 근 10여년 동안 언론계와 교육계마저도 자본의 위력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대부분의 언론들이 정권의 나팔수로 변질되었고 상위 대학들은 대기업으로 넘어갔습니다.

 

▲     © 헤럴드경제

 

언론인들과  교수들은 자본의 위력 앞에 침묵합니다. 침묵하지 않으면 추방되기 때문이지요. 자본이 모든 것을 지배합니다. 등록금은 천문학적인 액수가 되었고 많은 학생들은 채무자가 되었지만 졸업후에 갈 곳이 별로 없습니다. 사유화된 교육은 공정한 경쟁을 허용치 않습니다. 무엇이든 돈이 있어야 인간으로 대접받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인간이 돈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인간을 노예화합니다.

 

진정한 인간의 삶은 돈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반납됩니다. 어떻게 해서든 상위 10%, 아니 사회에서 살아가는데 별문제가 없는 30%에 들기 위해 발버둥을 치지만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이렇게 가다가는 모든 것이 되물림되는 악순환이 계속될 것입니다. 상위층은 영원한 상위층으로 서민들은 영원한 서민으로 자리매김될 것입니다. 

국가 권력기관은 국민의 삶을 돌보기는커녕 자신들만의 축제를 즐기고 기득권을 옹호하기에 바쁩니다. 무슨 일만 터지만 북한을 이용합니다. 검찰, 국정원, 경찰, 언론은 썩어서 구더기 냄새가 납니다. 어디에도 진실을 찾기는 어렵고 왜곡되어 국민들에게 전달됩니다. 그러나 우리 현명한 국민은 이런 언론을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본의 힘은 모든 저항을 침묵시킵니다. 극단화된 자본주의는 국민들이 사회정치 문제로 눈을 돌리는 것을 허용치 않습니다. 자본에 노예가 되어 하루하루 살기도 바쁘기 때문이지요. 권력을 가진자들은 100억대가 마치 껌값인 것처럼 말하고 대부분의 국민들은 치솟는 물가에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힘듭니다.

 

게다가 가진자들은 법 위에 군림하면서 국민들을 개 돼지로 봅니다. (그들이 말하는) 개 돼지에 의해 권력을 위임 받았으면서도 말이지요. 대기업 역시 지금까지 국민들의 구매가 없었다면 오늘날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 개 돼지의 개념 안에 천민 자본주의의 핵심적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모두가 자본의 노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구조 안에 주인과 노예가 나누어져 있다는 것이지요. 주인들은 자신들이 노예들을 다스리고 지배해도 된다는 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주인과 노예 사이를 나누는 기준은 오직 돈입니다. 더 큰 문제는 지배자들이 만들어서 피지배자들에게 강요하는 구조라는 것이겠지요. 수정의 여지가 거의 없는 독특한 대한민국만의 자본주의입니다. 돈이 곧 신이요 신이 곧 돈입니다. 

가진자들은 노블리스 오블리쥐는 커녕 갑질이 장난이 아닙니다. 세금 외에 사회적 약자들과 공적인 사회사업을 위해 돈을 내놓는 대기업가들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모든 사회적 구조가 대기업에 유리하게 맞추어져 있습니다. 대한민국 안에 국민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초법적인 다른 세계가 있는 것이지요. 자본의 권력이 이미 국민의 생활세계를 식민지화하여 체계로 만든 것입니다.(하버마스) 체계가 된 사회는 국민을 돈의 가치에 따라 분류하고 정돈하며 통제합니다.

 

국민은 자신도 모르게 진정한 인간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생활세계를 버리고 체계에 적응하고 노예화됩니다. 이러한 기득권을 유지하는데 공헌하는 정치, 교육, 의료, 법조, 종교, 예술만이 살아남습니다. 모든 인간들이 자본의 그물망에 포섭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이점에서 민주당 의원들 역시 자유롭지 못합니다. (저들보다 좀더 양심적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이런 사회구조 속에서는 정의로운 인간 하나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말은 "오직 국민을 위해...!" ㅜㅜ 근데 어떻게 이런 사회구조가 점점 공고화되는 것일까요? 

분배는 신경쓰지 않으면서 성장만을 주장하는 천민 자본주의는 교육, 전기, 교통, 상수도, 의료와 같은 모든 공적인 영역들마저도 기업화하고자, 곧 사유화하고자 합니다. 이 정권 들어서 끊임없이 시도를 했지만 몇몇 영역에서 실패했지요. 이런 공적인 영역들마저도 사유화되면 국민들은 점점 대기업의 노예화 아래로 예속될 것입니다. 슬픈 현실이지요. 

예술가의 혼이 빠진 자본화된 예술작품이 어떤 가치를 가질 수 있겠습니까?(아도르노) 

슬프게도 대한민국의 개신교 역시 (모두 다는 아니지만) 이런 사회구조를 만들고 기득권을 공고히 하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나사렛 예수를 죽이고 그분의 영광을 팔아 번 돈으로 아무리 교회를 아름답게 치장한다고 하더라도, 아무리 성가대의 아름다운 목소리로 그분을 찬양한다고 하다라도 예수 없는 교회가 무슨 영향력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어두운 거리의 구석에 앉아 좌절한 채 울고 있는 타자, 사회 중심부로부터 추방된 가련한 타자가 바로 그분이기 때문이지요. 영광의 신학은 십자가의 신학에 의해 끊임없이 수정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 아름다운 건물들 역시 머지않아 폐허로 변할 것입니다.

(이미 폐허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말입니다.) 

 

글쓴이 : 해석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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