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대표하는 주교회의 "국정화 반대" 성명...파장 클듯이번 국정화 반대 성명은 천주교가 교단 차원의 입장을 밝힌 것한국 천주교를 대표하는 단체인 주교회의 산하 위원회가 국사교과서의 국정화 추진을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 진보적 성향의 종교인들이 입장을 밝힌 것과는 무게가 다를 수밖에 없어 파장이 예상된다.
염수정 추기경 등 39명으로 구성된 주교회의는 한국 천주교를 대표하는 기구다. 그 산하인 정의평화위원회는 사회 문제를 주로 다루는 사회주교위원회에 속해 있다.
아래는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 성명서 전문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에 대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의 입장>
2015년 11월 3일 정부는 한국사 교과서에 대해 국정화를 확정 고시했습니다. 이미 학계와 시민사회 안에서 논란이 되어왔고, 여러 여론 조사에서 알 수 있듯이 국민의 과반 이상이 반대해 온 일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여당은 성급하게 밀어붙이듯 고시를 발표했습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는 ‘인간의 참다운 발전과 사회가 인간의 모든 차원을 존중하고 신장시키는 사회로 발전’하기를 원하는 교회의 사회적 관심(요한 바오로2세, 「사회적 관심」 1항)에 따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입장을 다음과 같이 밝힙니다.
1. 정부가 교과서를 만드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가톨릭교회는 정당한 방법과 절차에 의해 선출된 정부와 지도자를 존중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국가권력의 모든 행위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가권력의 행사는 인간 존엄성, 공동선과 보조성의 원리를 확고히 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간추린 사회교리」 407항 참조). 특히 보조성의 원리는 참다운 민주주의를 실현하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이는 국가권력의 범위와 한계를 설정하는 것으로, 시민 개인과 시민사회를 향해서는 국가가 도움을 주는 방식으로만 개입해야한다는 원리입니다.
한국사회의 문화적 · 학문적 수준이 교과서를 제작할 수 없을 만큼 저급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현시점에서 국가가 국정교과서를 발행하여 독점적으로 보급한다는 것은 보조성의 원리 및 민주주의 원칙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입니다. 한국사 교과서를 정부가 발행한다는 사고 자체가 지난 권위주의 시절의 사고와 닿아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2. 역사 서술은 역사가들이 학자적 양심에 따라 공적으로 서술해야 합니다.
정부와 여당은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가 필요한 이유를 기존 교과서들의 이념적 편향성과 자학적이고 패배적인 역사관 때문이라고 주장해왔습니다. 이는 학계와 국민 대다수가 동의하지 않는 주장일뿐더러, 정부와 여당이 그 주장을 고수한다 하더라도 기존의 검인정 제도의 보완을 통해 해결해야 할 일입니다. 오히려 정부와 여당이 그간 여러 차례에 걸쳐 특정 역사관을 지지하고 전파해왔던 것으로 미루어볼 때에, 국정교과서에 담길 내용이 특정 역사관에 의해 기술되지 않을까 의심스럽습니다.
가톨릭교회는 ‘현세 사물의 자율성’(사목헌장 36항)을 존중합니다. 이는 종교를 포함하여 정치 등 그 어떤 외적인 영향력도 인간이나 사회나 학문의 자율성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자율성은 학문 발전의 전제이며, 학문의 발전은 사회 발전의 토대입니다. 따라서 역사 서술은 학문의 자율성(「사목헌장」 59항)을 기반으로 학자의 양심에 따라 공적으로 기술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현재 정부에서 주도하고 있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작업은 한국사를 전공한 대다수 학자들의 집필 거부 선언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집필자를 비공개로 하여 진행하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역사 교과서의 내용을 신뢰할 수 없습니다. 인간 이성에 새겨진 자연법적 원리와 학문의 자율성을 전제로 자유로운 해석과 토론이 가능한 개방적 태도 하에서 역사가들이 역사 교과서 집필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3. 시민의 참여를 장려하고 절차의 민주주의를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여론과 시민단체의 제언을 존중하며, 국정화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와 그 절차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합니다. 정부는 한국사 국정화 확정고시 이전에 이 문제를 공론화하거나 사회적 논의를 충실히 하지 않았을 뿐더러 확정고시를 강행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 여론과 시민단체의 제언이 존중받지 못하였습니다. 게다가 정부와 여당은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국민들을 향하여 ‘종북’ 또는 ‘좌파’라는 이념적인 공격을 서슴지 않습니다.
국민화합을 이끌어야 할 정부가 국론 및 국민의 분열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이는 사회 다원주의를 기초로 하는 민주주의(간추린 사회교리 417항)를 훼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국가의 발전과 국민화합은 시민들의 합리적이고 자유로운 의사 개진을 통해 가능합니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국민여론과 역사학계 그리고 시민단체의 의견을 경청하고 국민화합을 이끌어야 합니다.
가톨릭교회는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동등한 책임과 결정의 참여가 가능하고 더욱 증대’(바오로 6세, 「팔십주년」 47항)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은 문화와 학문의 자율성이 훼손되고 시민사회의 건강한 여론이 차단되며 민주주의가 훼손될 수 있는 사안입니다. 다시 한 번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정부와 여당이 교과서 국정화 문제를 원점에서부터 다시 논의하기를 촉구합니다.
2015년 11월 16일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유 흥 식 주교 <저작권자 ⓒ 서울의 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천주교 관련기사목록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