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지인들과 함께 영화 ‘암살’을 봤다. 짬나면 본다고 미뤄뒀더니 이걸 보지 않고는 대화에 낄 수가 없어서 아예 날을 잡아 본 셈이다. 영화를 본 소감은 사람마다 제각각이겠지만 필자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주제 선정의 안목, 상업적 완성도, 게다가 절묘한 타이밍까지 아주 적절했다고 본다. 게다가 주요 등장인물들이 인기 있는 배우들이어서 금상첨화가 아니었나 싶다.
‘암살’이 인기를 누리면서 여자주인공 안옥윤(전지현 분)과 같은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항일 독립운동가를 굳이 남녀로 구분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 분야 역시 여성 홀대가 심했던 것은 사실이다. 7월 현재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은 사람은 총 1만3940명이다. 이 가운데 여성 독립유공자는 248명에 불과하다.
길가는 사람을 붙잡고 아는 여성독립운동가 이름을 대보라고 하면 과연 몇 명이나 댈까. 모르긴 해도 유관순 외에 다른 이름을 대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들을 탓할 것이 못된다. 보훈처나 역사학계가 여성 독립운동가를 발굴하는 데 쏟은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또 유관순 이외에도 제법 이름이 알려진 여성 독립운동가가 적지 않건만 역사 교과서에서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탓이다.
‘암살’에서 전지현이 맡았던 여자 독립군 대장 안옥윤 같은 인물은 실제로 있었다. ‘여자 안중근’으로 불리는 남자현 의사가 그 주인공이다. 남 의사는 드물게 무장투쟁에 참가한 여성 항일투사다. 또 춘천 지역 여자의병장 출신의 윤희순 선생, 백범 김구 선생의 비서 출신으로 태항산 조선의용군에서 활동한 이화림 선생 같은 분도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대인 광복군에서 활동한 여성도 한 둘이 아니다.
남성 독립운동가들을 뒤에서 보살피고 후원한 공로 역시 과소평가할 수 없다. 안중근 의사의 모친 조마리아 여사, 김구 선생의 모친 곽낙원 여사, 약산 김원봉의 아내 박차정 등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밖에도 기생 출신으로 3.1혁명 때 만세시위에 참가한 여성들도 있었고, 제주도에서는 해녀들이 항일투쟁에 나서기도 했다. 각계각층의 여성들이 다양한 참가한 분야에서 항일투쟁을 펼쳤음을 알 수 있다.
혹자는 여성독립운동가의 숫자가 1900명이 넘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현재 숫자와 비교하면 많은 숫자 같지만 전체 독립유공자 숫자와 비교하면 그리 많은 것도 아니다. 더 조사해서 더 많이 발굴해내야 할 것이다. 비단 ‘여자 안중근’만이 아니다. 여자 김구, 여자 윤봉길, 여자 안창호도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최근 정치권에서 몇몇 친일파 후손들의 부적절한 언행을 두고 또다시 논란이 됐다.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해방 직후 친일파를 처단하지 못한 것을 두고 통탄해 마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모두 말뿐이니 허공에 주먹질하는 격이다. 그러나 영화는 다르다. 죽여야 할 사람은 죽여 버린다. 강인국 같은 친일파가 한둘이 아니었었건만 영화에서나 처단이 가능하다니 참으로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언론인 겸 작가 정운현 http://durl.me/4pm5k <저작권자 ⓒ 서울의 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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