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가장 많이 감동시키고 눈물을 짜냈던 책은 국사책였다. 재수시절 독서실에 앉아서 국사책에 기록된 한줄 한줄의 이야기에 나는 전율했었다.
'안중근의사가 이토오히로부미를 향해...', '박승환 군대 해산에 자결'... 등 무미건조하게 기술된 한줄 한줄의 이야기들은 그 어떤 소설과 영화속에 묘사된 드라마틱한 장면보다 생생하게 내 가슴을 파고들었고, 독서실 책상에 홀로 앉아 숨 죽이며 눈물을 질질 쏟아 내곤 했었다.
특히나 내가 감정이입이 될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 당시 '정신수양'의 일환으로 손가락 마디마디에 불침을 놓고 있었다. 따라서 그 가느다란 성냥개비의 불덩이가 주는 고통도 견디기 힘든데, 그것과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을 줄 불에 달궈진 인두를 참아내고 배가 갈리워지는 고통을 감내한 독립운동가들을 생각할 때는 경외심 비슷한 것이 솟아나고 있던 터였다.
하여간 SBS에 독립운동가에 관한 다큐가 하나 상영되었다. 일제 폭압통치가 극에 달했던 1941년 12월에 중국 헤베이성 후좌좡 마을에서 조선의용대가 일본군에 맞선 마지막 전투를 벌였단다.
다리에 심한 총상을 입고 포로가 된 25살의 청년은 조선의용대 최후의 분대장 김학철이었다고 한다. 일제는 '조국을 버리고 전향서를 쓰지 않으면 다리를 치료해주지 않겠다.'고 협박했고, 김학철은 결국 다리를 버리고 조국을 택했다고 한다. (SBS 스페셜 ‘나의 할아버지 김학철’ 발췌)
그러한 실존적 선택의 과정에서 겪을 번만과 고뇌, 절규... 하지만 그 속에서 자기의 개인성을 극복하고 민족과 보편인류정신에 자신을 내던지고자 하는 결의! 감옥 안에서 잘라져 나뒹구는 자신의 다리를 대면하고 있어야 하는 참담함. 막막한 미래에 대한 절망. 하지만 변절하지 않고 허무의 구렁텅이로부터 스스로를 끄집어 올리기 위한 매 순간순간마다의 치열한 자기 대면과 추스림이 어떤 과정이었을지 100분의 1정도는 감이 오기에 그의 이야기에 깊은 감동이 전해진다.
아마 그때 일본군 소위 다카키 마사오는 김학철선생을 향해 총을 쏘고 있었을 텐테, 그 이후로의 몇 차례의 편의적 변절은 그가 실존적 고민이라는 것은 전혀 할 여력이 안되는 '자신의 개인성을 위해 세상을 낭비하는' 뱀같은 간교함을 가진 인물임을 실증한다. 하여간 다카키 마사오는 이후 악의 씨앗을 잉태 했고, 이는 다시 작금의 슬픈 현대사를 연장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김학철 선생의 잘려진 다리로 일본군 소위 다카키 마사오의 면상을 후려치는 공상을 해본다.
글쓴이 : 둥글이 <저작권자 ⓒ 서울의 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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