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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병의 '형안(炯眼)'과 운보의 '비파(枇杷)'

소설가 김제영 | 기사입력 2014/10/27 [17:59]

이희병의 '형안(炯眼)'과 운보의 '비파(枇杷)'

소설가 김제영 | 입력 : 2014/10/27 [17:59]

일상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만들어가는 인간이 지향 할 바의 의지 실현의 지표임을 시사한 박원순 시장이 시민운동에 심혼을 기울일 당시 명명되었다고 여겨지는 '희망제작소'라는 기발하고 창의적이고 선각적인 작명(作名)의 아이디어를 도용하여 나는 내 이화여고 동기동창 이희병(1929년생)을 '행복제작소'의 여인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녀가 금년 6월 도서출판 글벗에서 발간한 수필집 '어느 여인의 독백'을 보내왔다. 그녀에게 내재된 다재다능한 예술적 소양이 발현 된 것이다. '어느 여인의 독백' 서문은 서울에서 파주로 이사 온지 14년이 되었음을 언급하고 -우연한 기회에 박훈 선생과 운영하는 실버합창단의 일원이 되어 노래하며 - 공동체 생활의 즐거움을 비치고 있다. 

   
▲ 홀로사는 노인돕기 서화전에서(뒷 줄 가운데가 내 친구 이희병)

 

23쪽에는-맨 끝에 찬조 출현한 PJ(파주)합창단은 세 곡을 불렀다. 그리고 니시조시(西條市)에서 온 '사꾸라 코러스'팀은 아리랑을 불러주었으며 지휘자가 한복차림이었다. 한복은 일본 기모노 식으로 너무 넓어서 저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그리고 약간 서툰 글씨지만 우리들을 환영한다는 우리 한글 플래카드를 들고 노래를 불러주었다. 벅찬 감격이었다.- 음악기행문인 ‘일본을 다녀와서’의 이 글에서 90의 나이를 바라보는 그녀가 해외 원정무대에서 합창을 할 정도로 음악에 심취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뿐인가, 70년대 그녀가 재봉틀로 직접 만들어준 여름 원피스 두 벌은 오늘까지도 여름철 내 상 나들이 외출복이다. 천의 질과 색채감각. 그녀의 의상 디자인 솜씨 또한 남다르다. 고급공무원의 아내요. 평양 출신인 다분히 보수적 환경임에도 그녀는 편협된 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 공지영을 좋아하고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 상황을 심도있게 파헤친 조정래 황석영의 투철한 작가의식에 공감하는 그녀의 문학은 청청하다.

   
▲ 그림, 서예, 문학, 음악, 의상 디자인 등 다재다능한 이희병의 작품

 

그녀의 ‘어느 여인의 독백’ 34쪽 ‘바람직한 노년 생활’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전략) 아침에 일어나서 빛나는 태양! 상쾌한 공기! 아름다운 새소리! 이웃집 아기의 미소를 무심히 지나치지 말고 살아서 접할 수 있는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잠간 가져보는 것입니다. (후략) ‘살아서 접할 수 있는...’ 뭉클한 감동이 가슴을 친다. 나는 다시 뇌어본다. ‘살아서 접할 수 있는...’ 생명체의 유한한 숙명의 비극성에 사람들은 별로 관심이 없다.


지구상의 전 인류가 우주에서의 단 한 번의 삶에 대해 깊이 성찰한다면 오늘날 북한의 남침을 유도 하지 못해 발광하는 무리들(북한을 약올리는 전단 살포)이 위선의 탈을 쓰고 죽음의 문화(군수산업)에 동조할 수 있을까?

 

무게 있고 심오한 우주적 관점에서 이희병은 인간 생명의 유한성을 ‘살아서 접할 수 있는’ 단번에 읽히는 쉬운 어귀로 간결하게 묘사함으로서 세상에 존재한다는 그 자체의 축복과 은총을 일깨우고 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를 제시한 것이다. 자랑스러운 내 친구 이희병 새로운 감회로 그녀의 수필집을 펼처 놓고 거동이 불편한 나는 그녀와 긴 통화를 했다. (작업 외의 여타의 대화는 배제하였음)

 

   
 

金 “얘, 계곡의 폭포 말이다. 제목을 일부러 달지 않았니?

李 관람자의 임의의 느낌을 존중해 주고 싶었어.

金 그래 맞아! 관람자의 감성이 일률적일 순 없으니까. 그런데 작품의 제작 년도도 크기도 기재가 안 되었더구나.

李 2005년 광주 비엔날레 입선작이야. 규격은 130x97cm.

金 누구나 혹(惑)하겠드구나 누가 소장하고 있니?

李 파주복지관에 기증했어. 소품 두 점하고 노인들의 쉼터이거든.

金 복지관의 분위기가 확 바뀌었겠구나.

李 노인들의 작품 감상법은 아주 실용적이야. 그들은 실제 계곡에 와 있다는 기분이 드나봐. 시원하다시며 천국이 따로 없다느니 돈 안들이고 피서 왔다느니 복지관 할아버지 할머님들께 저 작품은 선풍기이고 에어컨인거야. 한 할머니는 저건 물 떨어지는 소리가 안이라 세상의 죄를 심판하는 천둥 번개 소리요. 하시지 않겠니?


金 그 할머니 무녀(巫女)의 영감으로 네 작품을 해석하셨구나. 그런데 너 미술대에 간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 사사를 했니?

李 없어. 이화고녀 때 서무과장으로 게시던 김재인 선생님 너 알지?

金 바이어리니스트 김민 교수의 아버님이시드구나. 박은용 선생님과 잘 통하셨어.

李 일제 말이었어. 그 선생님 권유로 내가 안진경 서체로 출품해 전국 서도대회에서 특선 도지사상 탄 것 너 모르지?

金 전혀

李 덕수궁 석조전에 전시되었다가 이화 복도에 오래 걸려 있었어.

金 10대에 뿌리를 내린 네 예술의 토대는 견고할 수 밖에 없었겠구나. 운보(雲甫) 김기창 화백을 감동시킨 연유도 근원은 서도(書道)의 길을 닦으면서였구나. 70넌대 네가 신설동 집에서 우리 이화 동기들 초대했지.

李 난 지금도 생각 나. 다른 친구들은 다 들어와서 왁자지껄 인데 너만 그 자리 그대로 서 있었지. 아니 왜 저러고 있나 했지 난 사실 놀랐다. 어떻게 작품의 구별을 그리 쉽게 하니?

金 작품의 구별이 아니야. 그날 나는 운보의 작품 '비파(枇杷)'에서 하늘의 뜻을 읽은 할머니처럼 미술작품의 환상(Illusion) 작용에 도취 되었던 거지.

李 참 신기하지 않니? 모든 경위를 마치 네가 파악하고 하는 얘기 같아서 말이야.

金 신기 할 것 하나도 없다. 작품에는 작가의 숨결까지도 담겨 있거든.

李.그래 그런 것 같아. 난 내가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냥 잊을 수도 넘겨버릴 수도 있는 일 아니겠니. 그런데 그게 안 되는 거야. 달력을 장롱구석에 쳐 박아 버리기도 했어. 몇 일 있다가 다시 꺼내 또 들여다보며 궁리를 했지.

   
▲ 운보 김기창 <널뛰기> 비단에 채색 33 cm X 25 cm 1932년 이후 1930년대 초반 추정

 

한국화단을 대표하는 김기창 화백이 이런 실수를 하다니 널을 뛸 때 구르는 쪽은 혼신의 힘을 다하고 구르는 힘에 의해 허공으로 솟아오르기 마련인 쪽은 힘을 빼기 마련이다. 그런데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널을 뛰는 두 처녀의 댕기꼬리가 구르는 쪽은 축 처져 있고 처져있어야 할 상대편 댕기는 역동적으로 하늘을 향해 꼬리치고 있지 않겠니. 김기창 화백의 달력 풍속도야. 김기창 화백의 달력에 묶여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거야. 두려워 지드구나. 이러다간 내가 노이로제 환자가 되겠구나 덜컥 겁이 나지 않겠니. 그래서 용기를 냈어. 내 견해를 소상히 적어서 편지를 드렸더니 한 주일 만에 저 작품 '비파(枇杷)'와 답신이 온 거야.

   
▲ <널뛰기> 그림에 대한 답장과 함께 운보 김기창이 이희병에게 보낸 '비파(枇杷)'

 

   
▲ <널뛰기> 그림을 보고 이의를 제기하는 이희병의 편지에 운보는 친필 답장을 보냈다.

 

金 시원하게 토해낼 수없는 언어의 울분 그 자체가 김기창 화백의 필치야. 김기창 화백의 실경화를 보고 있노라면 틀에 갇히기를 거부하고 산맥이며 강 노송 등이 움직여 다가오는 것만 같은 공포감을 느낄 때가 있어. 저 비파 좀 보렴 누가 저 '비파(枇杷)'를 나무이고 열매라고 하겠니 퍼덕이는 새의 날개와 사나운 발톱 주둥이를 모아 세상을 원망하는 병아리들의 반란 그런 게 보이지 않니. 식물의 동물화 김기창 예술의 일종의 애니미즘(Animism)이라고 할까. 아무리 소품이라도 김기창 화백의 영감이 박동하는 특유의 고집은 태평양에 내다놔도 ‘아 저건 김기창 작품이다’ 알 수 있어. 李 내게는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이고 저 '비파(枇杷)'는 내 생애의 유일한 선물이야.

   
▲ 이희병 작 <고양이>

 

金 화가로서의 기쁨이 아니겠니? 김기창 화백의 풍속도를 분석한 예리한 관찰력은 파주에 가서도 여전 하더구나. 농촌현황을 관찰한 '허수아비'(수필집 P.14)의 내용은 환경문제의 긴급한 정보이고. 참 너 고양이의 생태를 언제 그렇게 면밀히 연구했니? 야옹 응석을 부리며 금시 안겨 올 듯 어쩌면 그렇게 고양이의 귀여움을 사실적으로 묘사를 했니?

李 정말?

金 그렇다니까. 얘 희병아! 너는 이화때 우등생으로 졸업했지 나는 필시 바닥이었을 거야. 아예 성적에 관심도 없었으니까. 급한 불(원고) 끄고 이 지면에 모범생인 너와는 대조되는 나의 날나리 이화고녀 시절을 소개 할까 해. 얘 통화료 나가겠다. 끊는다.

李 얘 제영아! 소개하게 되면 알려줄 거지? 金 염려마.

 

  소설가 김제영

소설가 김제영 선생은 조봉암 선생 비서를 역임하셨고 평생을 사회운동에 앞장 서신 분으로. 현제 86세 고령으로 병중에 계시면서도 글을 써서 보내주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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