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광고
로고

'후손에게 재산 물려주지 않고, 사회에 환원한 존경받는 부자 어른들...

대선에 출마한 "박근혜 후보가 ‘꼭’ 읽어보아야 할 내용"

서울의소리 | 기사입력 2012/10/16 [02:14]

'후손에게 재산 물려주지 않고, 사회에 환원한 존경받는 부자 어른들...

대선에 출마한 "박근혜 후보가 ‘꼭’ 읽어보아야 할 내용"

서울의소리 | 입력 : 2012/10/16 [02:14]
우리의 속담에 “세 동네가 망해야 부자 하나가 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세 동네의 원성을 사는 인색함과 이웃 착취를 해야만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부자는 이웃 세 동네의 원망을 듣게 마련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유일하게도 12300년에 이르는 만석지기 집안이면서도 주위의 원성은 커녕 오히려 그 덕을 칭송받고 존경받는 가문이 있습니다. 바로 경주 최씨 가문입니다. 이 글에서 만석지기 부자 경주 최씨 가문이라함은 1대 최진립(1568-1636)으로부터 가문의 전재산을 영남대의 전신인 대구대학 설립에 기부한 12대 최준(1884-1970)까지를 말합니.

영남대학교는 19473월 최준 선생에 의해서 '대구문리과 대학'으로 개교하여 19479월 재단법인 대구대학 설립을 인가 받고, 영남의 인재를 길러오던 중, 196712월 박정희가 대통령 직권으로 강압적으로 주도한 청구대학과의 통합으로 교명을 바꾼 학교법인이며, 지금까지도 “박정희 교주의 창학정신을 칭송”하고 있는 독재자의 불법 탈취물입니다.
최준 선생은 백산 안희제 선생과 더불어 <백산상회>라는 무역회사를 설립하여 기업을 운영했지만, 실질적으로는 대한민국 상해-중경 임시정부와 여러 독립운동단체에 거액의 독립운동자금을 비밀리에 보내는 일을 한 독립운동가였습니다. 조국이 광복된 후인 1947년에 남은 재산 모두를 인재양성을 위한 교육사업에 내놓음으로써 대부호 가문의 막을 내렸고, 후손들은 지금 평범한 중산층으로 살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는 최준 선생의 이런 애국애족정신을 기려, 1983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 하였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하였습니다.

또 한 분의 존경하는 부자로 1971년 3월에 세상을 떠나신 유일한 유한양행 사장을 소개합니다.
 
유일한 사장은1895 평양에서 평양에서 5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고, 미국 감리교 유학생 선발에 응하여 아홉 살에 불과한 어린 나이인 1905독립운동가인 박용만 선생의 인솔로 미국으로 가서 네브래스카 주의 독신 자매인 태프트 자매에게 입양되었습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태프트 자매에 의해, 아침에 일찍 일어나 성서읽기와 기도를 한 뒤, 밭에서 하루종일 일하는 성실하고 검소한 삶을 통해 기독교의 노동윤리를 배우면서 성장했습니다.
 
1909년에 독립운동가 박용만이 독립군을 기르기 위해 만든 헤이팅스 소년병 학교에 입학하여, 낮에는 농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공부했으며, 방학 때는 신문배달을 하면서 네브래스카 주립대학의 미식축구 선수로서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공부를 했습니다.
 
1919년 고국에서 기미년 삼일만세행진이 일어나자 서재필이 소집한 제1차 미주한인의회참여함으로써, 미주지역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했습니다.

그는 1926년 일시 귀국하여 서울에 유한양행을 설립했습니다. 이 때 그의 일시 귀국 사유를 알게된 서재필이 손수 제작하여 선물한 상표가 바로 지금의 유한양행을 대표하는 버드나무 상표입니다.
 
유한양행은 당시 국민건강의 공적이었던 결핵을 퇴치하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미국에서 결핵약을 수입하여 저렴한 가격으로 팔기 시작했으며, 뒤이어 양약과 한방약을 결합한 보건 건강식품을 개발해 팔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에서 결혼한 부인 호미리 여사는 중국계 미국인이었는데, 중일전쟁으로 국내에 의약품이 부족해지자 소아과 병원을 개업해 거의 무료에 가까운 수준으로 가난한 환자들을 돌보았습니다.
 
유일한 사장의 경영윤리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재산이 자신의 소유가 아니라 하느님이 맡기신 것”이라는 기독교 신앙에서 나온 것입니다. 1929년에 이미 종업원 지주제를 실시하여 한국기업의 미래를 선도했고, 평생 동안 탈세를 모르는 양심적 기업의 모범을 보였고, 1952년에 고려공과기술학교, 1964년에 유한공업고등학교, 1970년에 유한공업전문대학을 설립하면서 학교법인 유한재단을 개인 소유가 아닌 공공재단으로 만들어, 이익을 교육사업에 환원하는 기업인의 귀감이 됐습니다.
 
더욱 우리가 눈여겨 볼 일은, 1969년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며, 유한양행을 자녀에게 물려주지 않고, 전문경영인에게 넘김으로써 명실상부한 공기업으로 남게 한 것입니다. 그때 “아들 딸은 대학공부까지 시켜주었으니 나머지 인생은 스스로 열어나갈 것”이라고 하신 말씀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유일한 사장은 1971년 세상을 떠나시면서 어린 손녀의 학자금 1만불을 제외한 나머지 재산을 모두 교육사업에 기부한다는 유서를 남기셔서 세인들을 감동시켰습니다.
 
정부에서도 그 분의 청렴결백과 신앙심이 국가사회에 남긴 업적을 기려서, 1970년에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했고, 별세하신 1971년에는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습니다

18대 대통령 선거전이 종반에 이르면서 박근혜 후보 재력의 원천인 정수장학회와 영남대학에 대한 논란이 또다시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평생을 두고 생산노동은 커녕 직장인으로 일해본 적이 없는 박후보의 화수분같은 재부(財富)의 정체에 대한 논란은 박후보가 정치에 입문한 다음부터 끊임없이 이어져 왔기에, 이 글에서 그에 관한 이야기는 생략하겠습니다.

다만 앞에서 말한 두 분 부자의 이야기를 통해서, 최근 대선후보들에 의해 거론되고 있는 이른바 “노블리스 오불리제” 보다 상위개념인 “한국 부자들의 윤리”를, 부자인 박 후보와 안 후보에게 일깨워 권하고 합니다. 그럼으로써 자신들이 말하는 국민대통합과 사회변화의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으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관광명소로 탈바꿈한 경주 최부자집의 아흔아홉 칸 고택에는 가문 전승의 여 가지 가르침(六訓)과 지켜야 할 여섯 가지 마음가짐(六然)이 안내판에 한글로 적혀  걸려 있습니다.
 
경주 교동 최씨 고택.jpg


六訓
1.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의 벼슬을 하지마라!
2.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3. 흉년기에는 땅을 사지 말라!
4.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5. 주변 100리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6. 시집 온 며느리들은 3년간 무명옷을 입어라!

六然
自處超然 자처초연 서 있는 곳에 착하지 말고 자리에 연연하지 마라!
對人靄然 대인애연 사람을 대함에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하라!
無事澄然 무사징연 일이 없어 편안할 때는 마음을 맑게 가져라!
有事敢然 유사감연 일을 앞두고 결정할 때는 과감하게 실행하라!
得意淡然 득의담연 얻었을 때에 오히려 담담하!
失意泰然 실의태연 뜻을 잃더라도 태연하라
 
글쓴이 : 한겨레
 
제배 (88.♡.49.221) 2012-10-14 (일) 12:33 추천 1
한겨레 선생님께서는 언제나 감동을 주는 글로써 읽는 독자들이 양심에 가책을 느끼도록 쓰시기에 글을 읽는 제 자신도 부끄러움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이번 대선에 출마한 박근혜 후보가 ‘꼭’ 읽어보아야 할 내용이군요.
 
많은 재산을 물려받으며 대를 이어가며 사시던 경주최씨 가문과, 유한양행 유일한 사장에 대해서도 한 번쯤 견줄만한 좋은 글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최준 선생과 유일한 박사와는 상반되는 부분이 있기에 잠간 짚고 넘어갑니다. 즉, 최씨 가문에서는 독립자금도 도왔고 많은 재산을 교육을 위하여 환원을 했습니다. 그런데 왜(?) 박정희 군부독재가 최씨네 모든 재산을 빼앗았을까요.
 
독립투쟁을 했던 애국지사들이나 한국전쟁때 납북을 당했던 애국지사들도 왜놈들이나 김일성한테 무릎을 꿇고 굴복을 했던 사람들은 살아남았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지조를 지키고 굴복을 하지 않았던 인사들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하여는 상상에 맡깁니다.

그러나 유일한 사장은 성경 말씀대로 ‘거룩 거룩 거~룩’한 말씀을 따라 사시느라 소위 말하는 강도만난 이웃은 보이지 않았고 ‘살짝 밟고 넘어가는’ 그러한 삶을 살면서 누구한테나 고분고분하게 사셨기 때문에 재산도 빼앗기지 않고 많은 재산을 기업(사회가 아님)에다 되돌릴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딸 유재라 씨도 1991년에 2백억 여원어치 전 재산을 재단에 환원했지요. 또한 유일한 박사 막내 여동생인 유순한 씨도 1995년 5월 21일 자기소유 유한양행 주식 2만1천3백81주, 10억 여원어치를 유한양행 재단에 기증했습니다.

많은 재산을 내가 갖지 않고 나눈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불의에 맞설 줄 모르고 이웃이 억울하게 당하고 슬퍼할 때 외면하면서 모은 재산을 나눴다(?).
 
물론 않는 것보다 좋겠으나 그러한 선행은, 장물을 빼앗아서 내것처럼 인심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라면 지나친 표현일까요?
 
 
한겨레 (93.♡.66.181) 2012-10-14 (일) 22:34
제배님! 저는 유재라씨나 유순한씨에 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제배님께서 말씀하시는 "불의에 맞설 줄 모르고 이웃이 억울하게 당하고 슬퍼할 때 외면하면서 모은 재산"이라는 표현은 유일한 사장님의 삶을 잘 아는 저로서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1960년대에 만연했던 국민질병 폐결핵의 원인이 가난한 서민들이 제대로 균형이 잡힌 영양 섭취 부족에 원인이 있다고 판단한 고인은 건강보조약 <네오톤>을 개발해 서민적인 가격으로 판매했는데, 당시 저는 그 네오톤의 판매원으로 전국을 읍 단위로 안 가본 곳이 없이 돌아 다니며 약국(대학 약학과 졸업한 약사가 경영)과 약방(일제 시대에 자격고시를 거친 사람이 경영)에 네오톤을 판매한 사람으로서, 유사장님과는 인간적인 교감이 있었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달리 말해서, 유 사장님은 독실한 침례교 신자로서  "역사의 흐름을 물의 흐름"으로 보셨고, 자유당 정권의 부정과 무능도, 516의 군부 쿠데타도, 박정희의 10월 유신도 인간의 힘과 의지로서는 어쩔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이요 역사발전의 과정이기에, 우리인간이 할 일은 필연적으로 발전하는 역사로서의 미래에 쓰일 인재를 기르는 일 뿐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당신께서는 60~70년대 야당 정치인들의 "민주 투쟁"을 서민들의 배고픔과 헐벗음 그리고 질병을 해결할 아무런 대안이 없는 단순한 정권투쟁이라고 보셨고, 또한 미래의 인재를 기르고자 하는 꿈도 없는 정상배와 다름 없다고 보셨습니다.  당신께서는 또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는 선행"으로 실천하셨기에,  가난한 이웃이 억울하게 당하고 슬퍼할 때 외면하지 않으시고 도우신 일이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을 뿐, 가까이에서 10년 세월을 모신 저는 그 세세한 내용을 잘 알고 있습니다. 
 
박정희가 고 김지태씨의 부일장학회를 강탈하여 정수장학회를 만들고, 대구대학과 청구대학을 빼앗아 영남대학을 만들면서 그 실소유자들을 탈세나 횡령, 불법자금 조성 등의 죄목으로 위협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러나 유한양행의 유일한 사장에게는 그 방법을 쓸 수가 없었지요.  한마디로 털래야 털 것이 없이 맑고 투명한 경영을 시종일관 해왔기 때문입니다.
 
전두환 시절에 재벌기업인 국제그룹이 정치자금을 요구하는 일해재단 측의 요구에  "일해가 뭐꼬? " 하고 반문한 양정모 회장의 괘씸언사로 인해 하루 아침에 무너져 버린 사건도 그 죄목이 탈세와 자금유용 등이었지만, 이 때에도 전두환의 일해재단 기금 출연을 거부한 유한양행 만은 감히 건드리지 못했습니다.
 
그건 유일한 사장님이 정권에 고분고분했기 때문이 아니라, 100% 청렴결백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장물로 인심을 쓴 것과 마찬가지다" 라는 제배님의 표현은 지나친 것입니다.
 
 
제배 (178.♡.1.222) 2012-10-15 (월) 09:35
=>‘유 사장님은 독실한 침례교 신자로서  "역사의 흐름을 물의 흐름"으로 보셨고, 자유당 정권의 부정과 무능도, 516의 군부 쿠데타도, 박정희의 10월 유신도 인간의 힘과 의지로서는 어쩔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이요 역사발전의 과정이기에, 우리인간이 할 일은 필연적으로 발전하는 역사로서의 미래에 쓰일 인재를 기르는 일 뿐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 많은 분들이 위와 같은 생각으로 신앙생활을 하십니다.(10월 유신은 유 사장님이 돌아가신 뒷일이라 해당이 안 되겠지요) 예수를 잘 믿는다고 자처했던 윤치호 같은 이도 자기가 져야 할 무거운 멍에를 김재준 목사님 같은 분들한테 씌워서 인재양성을 위한 유학까지 시켰던 사례는 대표가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은 무겁고(율법)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 자기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한테 보이기 위한 것이다.’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예수님께서도 재물은 나누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하느님 아들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이적을 베풀어서 기쁨을 나누고 불의한 헤롯왕을 향하여 ‘독사새끼’라고 질책을 하셨지요.
 
김재준 목사님은 유 사장님처럼 많은 돈을 벌어서 나누는 일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김 목사님은 예수님 가르침대로 독재를 향하여 불의에 맞서느라 탄압도 많이 받으셨고 보수신학노선을 개혁시켜서 교회 진보혁명을 일으키신 가난한 선비였으나 많은 재산을 헌납하신 것보다 더 많은 정신유산을 남기셨다고 생각합니다.   

위에서 말씀하신 유 사장님께서 베푸신 선행에 대해서도 아무 비판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게 바로 이웃이 억울하게 당하는 아픔이 바로 내가 당하는 아픔이라는 생각으로 그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불의에 맞서는 정신을 겸비하도록 예수믿는 사람들이 먼저 멍에를 지는 모범을 보여야 하리라는 생각으로 몇 자 적었습니다.
 
 
한겨레 (93.♡.66.181) 2012-10-15 (월) 11:15
제배님 ! 장공 김재준 목사님을 언급해 주시니 왠지 반갑고, 오랜 사귄 지인처럼 느껴집니다. 김 목사님께서 독일을 방문하셨던 1979년(?) 보쿰 바텐샤이덴에서 열었던 수양회에서 주옥같은 말씀을 들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불의에 맞서 목숨을 던져 항거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그 불의의 시대가 끝났을 때에 새 세상을 열어갈 정의로운 인재를 길러내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모두가 나서서 목숨을 잃는다면, 정의로운 미래가 어떻게 열리겠습니까 ?  독재와 불의의 시대를 종식시키기 위한 역할의 분담이라고 할까요?
 
 
리드엘 (211.♡.201.42) 2012-10-15 (월) 03:55
몇년전에 이 가문을 토대로 드라마 한편 만들어졌던 것 같은데 말이죠.
제 개인적인 생각엔 진정한 "부자"는 몇 없기에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부자에게서도 지기보다 돈이 더 믾은 부자는 언제나 존재하기 때문이죠.
자신이 소유한 것에 만족 할 줄 아는 사람 그리고 그것을 나눌 줄 아는
사람 모두가 진정한 "부자"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PHOTO
1/193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