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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이 사랑한 노래... 그를 닮은 '상록수'

권양숙 여사에게 ‘상록수’ 배우는 노무현 대통령 

서울의소리 | 기사입력 2012/07/01 [00:31]

노무현이 사랑한 노래... 그를 닮은 '상록수'

권양숙 여사에게 ‘상록수’ 배우는 노무현 대통령 

서울의소리 | 입력 : 2012/07/01 [00:31]
▲"비바람 맞고 눈보라처도 온 누리 끝까지 함께 푸르리라!"   © 서울의소리

투박하지만 묘한 동감의 설득력

노 대통령은 ‘사람’에 대한 사랑을 늘 스스럼없이 표현했다. 그만큼 노래 사랑도 가감 없이 드러냈다. 대중 앞에서 자주 노래를 불렀다. 한번 할라치면 참 수줍어했지만, 일단 시작하면 참으로 신명나게 불렀다. 봄볕이 따뜻했던 2008년 5월, 봉하마을을 찾은 방문객들 앞에서 구수하게 <비에 젖은 주막>을 부르던 모습이 친근하다.

200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최종 결정된 4월 27일, 팬클럽 ‘노사모’ 축하 행사에서는 참가자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아침이슬>과 <어머니>를 목청껏 불렸다. 앵콜이 빗발치자 그는 <타는 목마름>을 열창했다. 투박하지만 호소력 짙은 그의 노래에 박수가 쏟아졌다. 그해 가을 서울 여의도에서 그를 지지하는 ‘희망 포장마차’가 열렸을 때는 <작은 연인들>을 불렀다.

2000년 총선 부산 북강서을에 출마했을 때 그는 거리에서 부산 시민들을 향해 <부산 갈매기>을 목이 터지게 불렀다. 투박하지만 소박한 진심을 담은 그의 노래는 유권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음악평론가 강헌은 그러한 노 대통령에 대해 “뛰어난 ‘가수’는 아니었지만, 그가 부르는 노래엔 묘한 동감의 설득력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 
 
2002년 11월 21일 저녁 7시. 서울 동숭동 대학로의 한 호프집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1970년대부터 1990년 초반 대학가와 거리 시위현장에서 많이 불린 노래, <상록수>였다. 호프집에 모인 사람들은 좌석에서 모두 일어났다. 그리고 다 같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연단에 앉은 가수의 어설픈 기타 연주와 간간이 엇나가는 박자는 자연스럽게 합창에 녹아들었다. 그 아마추어 가수는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 이날은 그를 지지하는 문화예술인들과의 간담회 자리였다. 노래는 문화예술인들의 환대에 대한 노 후보의 화답이었다.

“어릴 때 한참 연습했는데 까맣게 잊어버렸다. 오늘 행사를 위해 하루 열심히 준비했는데 잘 되려는지 모르겠다. 80년대 노래를 얼추 다 아는데, 노래를 배우지 않았다면 평범한 변호사나 판사의 길을 걸었을 것이다.”

<어머니>와 ‘사람사는 세상’

예의 그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마이크를 잡은 노 후보. 그는 상록수를 마친 뒤 “내가 하고 싶은 노래는 따로 있는데, (보좌진들이) 과격하게 보일까봐 자꾸 말린다”면서 한 곡을 더 불렀다. 그가 자청한 ‘과격한’ 노래는 <어머니>였다. 그의 말대로 <어머니>를 배우지 않았다면 이른바 ‘잘 나가는’ 변호사로 계속 살았을 것이다.

“사람사는 세상이 돌아와, 너와 나의 어깨동무 자유로울 때 ♬…”

그는 수많은 민중가요 중에서도 <어머니>라는 노래를 특히 좋아했다. 1987년 6월 18일, 부산지역 민주화 시위가 절정을 이루었던 날에도 그는 <어머니>를 불렀다. 군병력이 투입된다는 소문이 나올 정도로 엄중한 상황에서 누군가 <어머니>를 시작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노래를 부르면서 걸어가는 청년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함께 걸었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그들이 자랑스러웠다”고 당시를 회고하곤 했다. 그리고 <어머니>의 ‘사람사는 세상’이란 말을 좋아했다. 정치에 입문하면서부터는 이 노래 첫 구절 ‘사람사는 세상’을 꿈으로 삼았다.

다시 부르는 노무현의 ‘희망’

그가 세상을 떠난 지 3년이 흘렀다. 그는 우리에게 가슴 뛰는 시간들의 기억을 많이 남겼다. 이제는 우리가 그와의 추억을 노래로 부르려고 한다. 지난 1000일간 멈추었던 가슴을 다시 뛰게 할 10곡의 노래로 ‘노무현’을 추억하고자 한다.

노무현재단과 (주)사람커뮤니티가 공동으로 기획하는 첫 공식 추모앨범 <脫傷 노무현을 위한 레퀴엠>은 이렇게 시작됐다. 추모앨범에 실리는 노래로 <상록수>가 가장 먼저 선택됐다. 누구도 이견이 없었다.

2002년 대선 때 그가 통기타를 치며 담담히 노래하는 영상이 방송되면서 <상록수>는 노 대통령의 상징이 됐다. 1970~80년대 청년들에게 저항정신의 불을 지폈던 노래 <상록수>는 온갖 역경 속에서도 신념을 지켰던 그의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이다.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온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의 가사 그대로 푸르른 삶을 살았다.
 

노 대통령이 2002년 자택에서 통기타를 치며 권양숙 여사와 <상록수> 노래를 연습하는 모습.

<상록수>는 그와 일생을 함께한 노래이기도 하다. 그가 대통령으로 취임하던 날 축하곡으로 불렸다. 그해 3.1절 기념식장에서 대중가요로는 처음 <상록수>가 울려 퍼졌다. 2009년 5월 그가 봉하마을을 떠날 때도, 서울 경복궁 국민장 영결식에서도, 한줌의 재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도 <상록수>는 그와 함께했다. 2002년 자택에서 통기타를 치며 권양숙 여사와 <상록수> 노래를 연습하는 정겨운 모습이 애잔하다.
[YTN 돌발영상-21년 전 노무현] 권양숙 여사에게 '상록수' 배우는 대통령 (2009년 5월 28일)

해마다 5월이 되면 그를 추모하는 시민들의 <상록수>가 전국에서 울려 퍼진다. <상록수>는 노무현의 노래에서 국민들의 노래가 되었다. 그리고 아픔의 노래, 추모의 노래가 아닌 다짐과 각오의 노래가 되고 있다. 희망의 2012년 우리가 다시 <상록수>를 부르며 노무현의 꿈을 되돌아보는 이유이다.

<노무현 레퀴엠>은 그의 66번째 탄생일이 되는 9월 1일 선보일 예정이다. ‘음원 CD’, 메이킹 다큐와 그의 영상이 담긴 ‘동영상 DVD’, 그의 사진과 노래 소개 등이 담길 ‘스토리북’으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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