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재단의 몰락
정 전 이사장은 취임과 동시에 “2011년 미국 뉴욕에 표준화된 플래그십 식당을 개점하고 세계 대도시로 확산시킬 계획”을 밝혔다. 농식품부는 지난해 국회에 제출한 2011년 예산안에 ‘뉴욕 플래그십 한식당’ 개설 사업비 50억원을 포함시켰다. 한식 세계화 전체 예산 311억원 가운데 16%에 해당하는 큰 금액이었다. 이 사업은 한식 세계화 사업의 일환으로 뉴욕 등 세계 주요 거점 도시에 고급 한식당을 세워 한식의 우수성을 알리고, 한식당의 품격을 높이겠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농식품부가 초기비용(50억원)을 투자하고 한식당 관리와 운영은 100억원 정도를 투자할 수 있는 민간 전문 업체에 맡긴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 사업은 불과 1년 만에 사실상 백지화됐다. 한식재단이 9월 23일부터 10월 13일까지 20일간 한국과 미국에서 뉴욕 플래그십 한식당 개설·운영사업 민간사업자 공모를 실시했지만 참여 의사를 밝힌 민간사업자가 단 한 곳도 없었다. 결국 한식재단은 “사업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플래그십 한식당 프로젝트는 민간업체가 주도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민간업체 참여가 필수다. 그런데 정부 사업 발표 후 1년이 넘도록 참여 의사를 밝힌 민간업체가 나타나지 않았고 결국 모든 청사진은 백지화됐다. 별 성과를 거두기 어려울 사업에 100억원을 투자하는 게 부담된다는 판단에서다.
이로 인해 내년 한식 세계화 예산도 삭감됐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2012년 한식 세계화 사업에 배정된 예산은 총 236억원으로 올해 예산(311억원)보다 75억원(24.1%) 줄었다. 한식 세계화 예산은 2009년 첫해 100억원이 배정됐다. 이후 2010년 241억원, 2011년 311억원 등 지속적으로 예산이 증가했다. 그러나 사용하지 않은 예산(불용액)이 수십억원이 넘고 사업 추진도 지지부진하자 이번엔 아예 예산을 삭감해버렸다. 결국 한식 세계화 사업은 예산만 낭비하는 전시행정으로 전락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정부가 추진한 한식 세계화 사업을 보고 절망감을 느꼈다고 지적했다. 여기저기 많은 단체들이 몰려들어 공적자금으로 한식 세계화의 일환이랍시고 세계적 인사들을 초청해 한식을 체험시키는 ‘보여주기 위한’ 전시 사업들 뿐이었다. 임자없는 돈으로 행사를 위한 행사를 벌이기 위해 분주했고, 그래서 한식 세계화에 배당된 몇백억의 예산을 일회성 이벤트로 소모해 버린 것이다.
범국가적 사업인 한식세계화 사업을 이렇다 할 마스터 플랜도 없이 여러 부서와 단체에서 중구난방으로 추진해 예산낭비가 심각했고, 효과는 전혀 없었다는 평가다.
한식 세계화 사업은 장기적으로 바라보고 꾸준히 투자해야만 실현 가능한 문화사업이다. 그런데 누구나 달려들어 인맥을 통해 추진한 ‘깡통’ 사업은 총체적 부실사업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고 국민 혈세만 낭비하고 먹을 것 없는 요란한 잔치로 끝나고 말았다.
한편 최근 한식재단이 거액의 예산을 들이고도 별다른 성과가 없으면서 예산 용처에 대한 의혹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불거지기 시작했고 일부 사정기관에서는 이미 구체적인 움직임이 시작됐다. 이와 관련 사정당국의 한 관계자는 “한식재단의 비리 의혹과 관련한 첩보들이 올라오고 있다”며 “정권이 바뀌게 되면 수사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물론 김 여사가 이런 각종 의혹에 직접적으로 연루됐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영부인 예산으로 집행된 한식 세계화 사업에 영부인 주변 인사들이 많이 몰려들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도덕적인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한식재단 출범은 처음 발상자체부터가 문제였다.
오랜 시일을 두고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국가적 사업을 임기내에 모든 것을 처리하고 완결지으려다 졸속으로 끝낸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사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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