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만기 석방노린 양승태' 독설'·임종헌 '기피' 재판 지연 전략?

사법농단 피의자들 전략.. 양승태, 이명박·박근혜 섰던 법정에서 피고인 권리 따지며 재판 지연

정현숙 | 입력 : 2019/06/08 [16:42]

불편부당해야 할 사법부의 수장 모든 혐의 부인.. 25분 동안 검찰 수사 맹비난

 

 

재판 지연 전략으로 사법 농단 구속 넉 달 만에 첫 재판

 

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판사 박남천)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3회 공판을 진행했다. 재판부는 이날 증거조사를 마치고 4회 공판부터 증인신문을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양 전 대법원장이 재판에 넘겨지고 116일이 지났는데도 정식 재판이 두 차례밖에 열리지 못한 셈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최고 수장으로서 삼권분립을 훼손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과 재판거래한 증거들이 문서와 증인으로 넘쳐나는데도 지난 5월 29일  열린 첫 공판에서 검찰의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하며 “용두사미도 이런 용두사미가 없다. 용을 그리려다 뱀도 못 그렸다“며 검찰을 향해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일본 정부에 유리한 판결을 하기 위해 이해득실 관계로 맺어진 박근혜와 재판 공작을 한 그는 당시 대통령 박근혜와 그의 수하들이 명실상부한 증인으로 수감된 상태인데도 전혀 허황한 사실로 자신이 기소된 듯 이날 약 25분간 직접 발언을 통해  검찰을 향해 날 선 비난을 퍼부었다.

 

그는 검찰의 공소사실에 대해 "소설의 픽션"이라고 깎아 내리며 8개월 동안 이어진 수사를 두고도 "수사가 아닌 사찰"이라거나 "법치주의를 파괴하는 수사"라는 표현을 써가며 강하게 비난했다.

 

양승태를 비롯한 사법농단 사태의 핵심 인물들의 재판이 속속 진행되는 가운데 이들의 재판 전략 또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양승태는 모든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검찰의 공소장에 대해 ‘소설’이라고 맹비난하는가 하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재판부 기피 신청까지 하면서 계속 시간을 질질 끌고 있다.

 

이 재판이 시작된 지 어느덧 반년이 흘렀다. 신속한 처리가 필요하단 이유로 법원에서 일주일에 이틀 이상 재판을 열고 있지만, 진행은 여전히 초반에 머물러 있다. 양승태, 임종헌 등 고위법관 출신 피고인 측이 사사건건 방어권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엔 재판장을 흠집 내며 기피 신청까지 감행해 재판이 잠정 중단됐다.

 

서울중앙지방법원 417호 법정은 이명박,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들이 재판을 받은 곳으로, 같은 법정에 전직 대법원장 양승태가 여기에 섰다. 그는 박근혜 정부와 일본 정부와의 강제징용 재판거래와 비협조적인 눈엣가시인 판사들 뒷조사를 하는 등 그 혐의가 무려 47개나 된다.

 

그 혐의가 위중함에도 그에 대한 1심 재판이 두 차례밖에 열리지 못하는 등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의도된 ‘지연 전략’으로 불구속 재판과 국면 전환을 노린다는 분석이 나온다.

 

검찰은 소송 지연를 막기 위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사건을 따로 분리해 심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5일 열릴 예정이었던 제3회 공판기일이 전날 박 전 대법관 측이 건강상 이유로 갑작스럽게 기일변경 신청이 취소됐다.

 

이에 검찰은 박 전 대법관 측의 기일변경이 계속되면 재판이 지연되기 때문에 양 전 대법원장 재판만 따로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의 구속 기간은 오는 8월 10일까지다. 7일 기준으로 따지면 64일, 두 달 여 남았다. 양승태 변호인 측이 검찰 증거에 대부분 동의하지 않아 검찰이 증거 조사를 위해 신청한 증인은 211명에 달한다.

 

증인신문에 소요되는 시간을 고려하면 사실상 구속 기간 내 선고는 불가능하다. 추가 기소로 구속 기한이 연장되지 않는 한 1심 재판 중에 양승태는 석방될 가능성이 높다.

 

검찰은 양승태의 지연 전략에 거듭 우려를 표명해왔다. 재판부가 지난달 29일 첫 공판에서 “211명의 증인은 너무 많다”며 증인신문 계획을 변경하려 하자 검찰은 “이미 결정된 사안”이라고 반발했다. 계획을 바꾸는 데 추가로 시간이 소요될 수 있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한 1심 재판도 재판부 기피 신청으로 공전 중이다. 재판 초기부터 변호인이 전원 사임하는 등 임 전 차장은 재판부의 소송 지휘 방식에 갖은 불만을 표하며 시간을 끌어왔다. 지난달 31일에는 법원에 재판부 기피 신청서를 제출했다. 기피 신청 여부가 결론 날 때까지 해당 재판은 진행되지 않는다. 그만큼 시간을 번 것이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재판이 더디게 진행될수록 양 전 대법원장 등 ‘사법농단’ 피고인에 유리한 상황이 펼쳐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6일 “현실적으로 형을 정할 때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사법농단 사건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덜해질 때까지 시간을 끄는 게 상대적으로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피고인 양승태'는 법정에 없고 25분간 제왕적 대법원장의 자기 변명과 훈시만 나열

 

사법 농단으로 수감된 지 넉 달여 만에 열린 첫 재판에서 그는 여전히 제왕적 대법원장의 허울을 벗지 못하고 법정에 들어설 때도 재판부(형사35부, 재판장 박남천)를 향해 묵례를 묵살했다. 묵례 즉 재판부에 대해 말없이 고개만 숙이는 인사는 법원 재판을 존중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는 재판정을 외면한 채 시선을 정면에 고정하고 피고인석을 향해 걸어갔다. 그보다 먼저 기소돼 재판이 한창 진행 중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입정할 때마다 재판부를 향해 깍듯이 인사한 것과 대조가 되는 행동이다.

 

양승태가 입정할 때 피고인석에 앉아 있던 박병대·고영한 두 전직 법원행정처장과 변호사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들은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방청객들은 이 모습을 뜨악해했지만, 그는 당연한 듯 인사를 받았다. 그런 모습에서 피고인 양승태는 이미 법정에 없었다.

 

이날 한겨레신문에 따르면 그의 ‘대법원장 코스프레’는 피고인 모두진술 때 절정에 이르렀다. 검찰의 공소사실 낭독이 끝난 뒤 그는 작심한 듯 입을 열었다. “검찰이 말한 공소사실의 모든 것은 근거가 없는 것이고 어떤 것은 정말 소설의 픽션(허구) 같은 이야기다.”

 

검사 12명이 앉아 있는 검사석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그는 ‘사자후’를 토해냈다. “검찰의 공소장은 법률가가 쓴 법률 문서라기보다 소설가가 미숙한 법률 자문을 받아서 한 편의 소설을 쓴 것이라고 생각될 정도다. 공소장 첫머리에는 흡사 피고인들이 엄청난 반역죄나 행한 듯 재판으로 온갖 거래 행위를 획책했다고 하고는 결론 부분에 이르면 재판 거래는 온데간데없고 심의관들에게 문건·보고서를 작성하게 한 게 직권남용이라고 끝을 낸다. 용두사미라는 말이 있지만, 용은커녕 뱀도 제대로 그리지 못했다.”

 

그의 발언에 검사들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그는 검사들의 반응에 아랑곳없이 날 선 비난을 이어갔다. “삼권분립을 기초로 하는 민주 절차를 채택하고 시행하는 나라에서 법원에 대해서 이토록 잔인한 수사를 한 사례가 대한민국 외에 어디에 더 있는지 묻고 싶다. 법원에 대해 이런 수사를 할 지경이라면 대한민국 국민 누구한테라도 이런 수사를 못 하겠느냐. 비대해지는 검찰권 앞에 누구도 이제는 대적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는 프랑스 역사가 앙드레 모루아의 명언을 인용하며 말을 마쳤다.

 

“‘증오하는 권력에 대해서 공포심 때문에 복종하는 것만큼 비참한 나라가 없다’는 말이 있다. 나는 이번 재판이 우리의 앞날을 결정하는 재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원고도 없이 무려 25분 동안 이어진 그의 격정적인 진술은 공범과 변호인들을 고무했는지 몰라도 방청객들의 호응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

 

이날 방청석은 참여연대가 모집한 ‘사법 농단 재판 시민방청단’ 30여 명을 제외하고는 자리가 비어 있었다. 참여연대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이 불거진 2018년 1월 양승태를 검찰에 고발한 바 있다. 그의 진술이 이어지는 동안 시민방청단에서는 혀를 끌끌 차는 소리가 들렸다. 그의 당당한 모습에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낸 방청객도 있었다.

 

양승태의 검찰 수사에 대한 비난은 법원에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검찰 수사 결과를 토대로 그의 구속영장을 발부하고, 보석을 기각한 곳은 다름 아닌 법원이기 때문이다. 검찰은 재판 다음 날인 5월 30일 바로 반격에 나섰다.

 

검찰 관계자는 “양 전 대법원장의 보석은 지금 재판을 지휘하는 재판부가 기각했다. 피고인의 범죄 혐의가 중대하다는 점을 검찰이 충분히 소명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보석을 기각한 것이다. 재판부가 소명됐다고 인정한 수사 결과를 양승태 피고인이 ‘미숙한 법률 자문을 받아 쓴 소설’로 치부하는 건 검찰뿐 아니라 재판부를 모욕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매체에 따르면 검찰은 박병대 전 대법관의 주장도 조목조목 반박했다. 앞서 박 전 대법관은 5월 29일 재판에서 양승태에 이어 피고인 모두진술을 하면서 “법원행정처 심의관 등의 조서를 읽어보면 검찰에서 겁박을 당하고 훈계와 질타를 받았음을 행간에서 느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 관계자는 “임종헌 피고인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전·현직 법관들은 예외 없이 검찰에서 자유롭게 사실대로 증언했다고 말한다. 박 피고인이 말하는 그런 주장을 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반박했다.

 

양승태의 25분간이나 검찰 수사에 대한 날 선 비판은 그의 과거 판결에 비춰보면 더욱 황당하고 허망해진다. 그는 1986년 제주지법 부장판사 시절 조작된 간첩 사건으로 기소된 오재선 씨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오 씨는 2018년 8월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오 씨는 30여 년 전 공안 당국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으며 허위자백을 강요당했다. 공안 당국은 오 씨가 조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의 지령을 받아 간첩 활동을 했다는 내용으로 공소장을 꾸몄다.

 

오 씨는 법정에서 고문받았다고 진술했으나, ‘재판장 양승태’는 조작된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그는 오 씨 사건을 포함해 모두 6건의 간첩조작 사건에 관여했다. 재일동포 김동휘·이원이·장영식·조득훈 간첩조작 사건에서는 배석판사로, 오 씨 사건과 강희철 간첩 조작 사건에서는 재판장으로 관여했다. 이 6건은 모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이후에도 양승태의 사과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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