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정권 강제징용 재판거래 실상...현대판 '을사오적' 일본 앞잡이 행각

김기춘/ 황교안/ 양승태/ 임종헌/ 차한성...그들은 21세기 판 ‘을사오적’이었다

선데이 저널 | 입력 : 2018/11/02 [22:57]

그들은 21세기 판 ‘을사오적’이었다

 

최근 한국에서는 이른바 사법농단으로 불리는 대법원과 박근혜 정권과의 재판거래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LA에서는 비교적 관심도가 떨어지지만, 당시 재판부의 재판거래 행태를 보면 과연 당시 정권과 사법부가 대한민국의 정부와 법원이었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특히 일본 전범기업의 배상책임을 따지는 판결마저도 뒤집으려고 하는 이른바 ‘강제징용’ 재판거래는 가히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박근혜 정권의 망국적 친일행각은 이미 <선데이저널>이 몇 차례 지적해왔다. 그 중심에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있고, 그가 외교부 관례를 깨고 자신의 친구를 주일대사로 부임시키며 일본 정부가 환영할만한 제스처들을 취해온 사실을 지적한 바 있다.

 

그런데 이번 재판거래는 본지의 우려를 넘어 그야말로 일본의 앞잡이들이 법원 요직에 자리 잡고 있었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시 한 번 김기춘 전 실장의 이름이 등장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야말로 21세기판 ‘을사오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과연 박근혜 정권 당시 청와대와 대법원이 어떠한 망국적 친일 행각을 해왔었는지 선데이저널이 보다 자세하게 취재했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이번 강제징용 재판에 대한 박근혜 정권의 친일 행각은 예상했던 것 보다 충격적이다. 지난 2005년 80대가 넘은 고령의 노인 4명이 한국에서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모두 일제강점기 때 강제징용을 끌려간 노인들이었다. 재판을 청구한 노인 중 한 명이었던 94세 이춘식 씨의 경우 77년 전인 1941년 17세의 나이로 구 일본제철의 가마이시 제철소에서 강제 노역을 했다.

 

이 씨가 법원에 낸 소장을 보면 그는 매일 12시간씩 고체 연료를 용광로에 넣고 용광로에서 나온 철을 가마에 넣는 중노동을 했다. 심한 먼지에 어지러움을 겪기 일쑤였고, 용광로 불순물에 걸려 넘어져 배에 상처를 입고 3개월간 입원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손에 쥔 돈은 단 한 푼도 없었다. 제철소는 “대신 저축해준다”며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1944년 일본군에 징집됐다가 해방을 맞은 이씨는 돈을 돌려받기 위해 제철소를 찾았지만,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된 공장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할아버지들이 젊은 시절 징용의 대가를 되찾기 위해 제철소의 후신인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소송을 시작한 건 60년이 더 지난 2005년 2월이었다.

 

법원이 사법제도 악용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문서가 2005년 처음으로 공개되며 일본 정부의 불법 행위에 대한 개인의 배상청구 권리가 살아있다는 법적 해석이 나왔기 때문이다. 1·2심 법원은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청구권이 소멸했다고 판단했지만 2012년 5월 대법원은 원심을 파기하고 할아버지들이 배상을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2013년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은 대법원 판시 내용대로 신일본제철이 1억 원씩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할아버지들의 감격적인 승소였다. 하지만 신일본제철은 대법원의 판단에 불복해 재상고했다. 한국 사법제도에 따르면 원고나 피고가 대법원의 판결에 불복하면 재상고를 할 수 있는데, 이 경우 대법관 13명이 모두 모여 합의를 하는 이른바 전원합의체를 통해서만 뒤집을 수 있다. 문제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언제 열려야 한다는 강제 규정이 없다는 점이었다.

 

신일본제철도 이 과정을 밟았다. 신일본제철이 재상고했고, 사건을 넘겨받은 대법원은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 불과 1년 전 대법원이 한 차례 판단을 내린 만큼 결론이 사실상 정해져 있는 사건임에도 차일피일 시간을 끌었다. 피해자와 유족이 빠른 판단을 촉구해도 대법원의 심리에는 이렇다 할 진척이 보이지 않았다. 무려 5년이 무의미하게 흐르며 소송 원고 중 생존자는 1명만 남았다.

 

쉽게 이해할 수 없던 대법원의 재판 지연은 이번 사법농단을 수사하는 검찰에 의해 그 단초가 드러났다.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의 고위 간부들이 2013년∼2016년 김기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 등 정부 인사를 수차례 만나 강제징용 소송의 재상고심 결과를 ‘피해자 패소’로 바꾸거나 소송 진행을 미루는 방안을 논의한 정황이 발견된 것이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이 사건이 대법원에 접수된 뒤 법원행정처 간부들은 외교부 간부들과 여러 차례 접촉했다. 2013년 12월 1일과 2014년 하반기에는 김기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의 서울 삼청동 공관에서 수상한 모임이 있었다. 참석자는 김기춘과 차한성(2013년)·박병대(2014년) 당시 법원행정처장, 윤병세, 황교안 등이었다. 이들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소송을 두고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자”는 계획을 세웠다. 박근혜가 추진하는 2015년 한일 정부 간 위안부 합의를 앞두고 있던 때였다.

 

 

 

또 다시 등장하는 김기춘의 이름

 

당시 박근혜 정부는 일본과의 위안부 합의를 위해, 법원은 양승태 대법원장의 숙원 사업인 상고법원 도입은 물론 판사의 해외공관 파견을 늘리기 위해 이 같은 ‘거래’를 한 것으로 의심받는다. 2016년 말 박근혜가 탄핵 위기에 처하며 이들의 계획은 중단됐다.

 

검찰은 이런 재판거래 의혹의 전면에 나선 판사가 법원행정처장이던 차한성·박병대 전 대법관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이라고 본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김 전 실장과 조윤선 청와대 정무수석, 윤병세 외교부 장관 등이 재판지연 의혹에 연루됐다. 검찰은 구속된 임 전 차장을 상대로 이 같은 재판거래 의혹에 윗선 개입 여부 등을 추궁하고 있다.

 

이런 재판 거래가 가능했던 것은 대통령을 위시한 정권 요직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수하의 법관들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인생은 물론이거니와 국가의 자존심마저 내팽개쳤다. 박근혜 정권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피해보상도 마음대로 합의했을 뿐만 아니라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재판도 거래했다.

 

이 모든 중심에는 김기춘이 있다. 김기춘이 철저하게 친일 행각을 했다는 의혹은 그의 고령의 친구를 주일대사를 앉힌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본지 취재 결과 김기춘은 이를 위해 자신의 친구를 주일대사로 보내는 무리수까지 뒀다. 두 사람은 서울대 법대 동기동창이자 오랜 친구였다. 2014년 7월 박근혜 정부는 유흥수 새누리당 고문을 주일대사로 임명했는데, 그는 당시 이미 77세의 고령이었다. 게다가 외교관이 아닌 정치인 출신이 한반도 주변 4개국 대사에 임명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일본 언론들 역시 유 대사의 일본 대사 임명을 반기는 분위기였다. 직업외교관으로는 풀기 힘든 한ㆍ일 문제를 청와대와 가까운 정치인 출신이 돌파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일본 언론들이 환영했던 것은 또 다른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이후 한일 문제는 철저하게 일본이 유리한대로 흘러갔다.

 

전범기업 변호 ‘김앤장’ TF팀 꾸려 대응

 

황교안 전 국무총리도 재판거래 과정에서 등장한다. 황 전 총리는 법무부 장관 시절 한일 관계에 미칠 영향 등을 고려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가 소송에서 패소하도록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대법원 판단을 앞두고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 공관에서 김 전 실장, 차한성 전 법원행정처장, 윤병세 전 외교부장관과 황 전 장관이 참석한 것으로 확인됐는데 검찰은 이 자리에서 재판 진행을 논의하고 청와대(박근혜 대통령 시절)의 요구를 전달했다고 의심한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앞서 언급했던 강제징용 재판 관련 대법원 판결을 놓고 사실상 김기춘 전 실장과 ‘빅딜’한 인물이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전반에 깊숙이 관여해온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일제 강제징용 재판개입 의혹에도 핵심적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지난 27일 임 전 차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 발부받아 사법농단 연루자 중 최초로 신병확보에 성공했다.

 

검찰은 230여쪽에 달하는 임 전 차장 영장청구서에서 일제 강제징용 재판개입 관련 혐의에만 27쪽을 할애, 범죄혐의 전반을 상세하게 적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대법원 선고결과에 따라 재판거래 의혹을 뒷받침하는 탄탄한 정황증거가 추가된 모양새다.

 

여기에 <선데이저널>이 2주 전 보도했던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의 1심 재판 변호사였던 차한성 전 대법관도 총리 공관 모임에 참석했던 멤버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다 박근혜 정부 시절 외무부 장관이었던 윤병세 전 장관까지 장관 재직 전까지 로펌에서 일본 기업 변호를 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2012년 대법원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전범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당시 대법원이 이런 결정을 내리자 일본기업 변호를 맡은 김앤장은 대응을 위해 TF팀을 꾸렸는데 여기에 당시 이 회사 고문이던 윤병세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윤병세는 2013년 3월 외교부 장관에 임명됐다. 검찰은 윤병세가 당시 TF팀에서 논의한 대응 논리를 외교부에서도 펼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한 나라의 대통령부터 국무총리, 대법원장 등 3부 요인이 모두 국익이 아닌 다른 나라의 이익을 위해 재판까지 거래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우리나라와 가장 민감한 관계에 있는 나라의 이익을 이해 국민의 자존심마저 짓밟은 것은 유사 이래로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다. 이들은 1900년대 초반 나라를 일본에 넘겼던 이완용 같은 ‘을사오적’에 가히 비길 만하다.

 

나라를 팔아먹은  ‘을사오적’(乙巳五賊)

 

을사늑약(을사조약)의 체결에 찬성했던 학부대신 이완용,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군부대신 이근택,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을 가리킨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는 11월 9일 이토 히로부미를 특파대사로 보내어 을사늑약이라고도 하는 ‘한일협약안’의 체결을 하도록 했는데, 고종이 반대하는 가운데 이들 다섯 명의 대신이 조약의 체결에 찬성했다. 이로써 을사늑약이 체결되었으며, 한일합병 후 을사오적은 모두 일제의 작위를 수여받았다.

 

선데이 저널 리차드 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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